아내의 수다는
헐거워진 삶을 채워주는 사랑입니다

오직 나만을 위한 사랑 이야기

by 지금

아내는 화젯거리 수집상입니다.

외출 후 빈손으로 들어오는 법이 없습니다.

별별 이야깃거리를 바리바리 들고 메고 이고 들어옵니다.

그리고 옛적 보따리장수 물건 풀어 호객하듯 이야기보따리를 하나 둘 풀어재낍니다.

그러면 강제 듣기가 시작됩니다.

한 번 시작된 아내의 수다는 본인의 입이 잠들 때까지 이어집니다.

아내의 이야기 듣기, 고역 중에 고역입니다.




오직 나만을 위한 사랑 이야기


아내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듣기 시험이 이보다 어려울까요?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습니다.

아내의 수다는 쉼표도 마침표도 없습니다.

아내는 행동 하나 표정 하나까지 점검합니다.

온몸이 쑤시고 머리가 욱신댑니다.


아내의 말은 가뭄도 타지 않습니다.

다물어진 입을 본 기억이 흐릿합니다.

아내의 입에서는 언제나 수다 거리가 샘솟습니다.


어젯밤 꿈 이야기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다시 꿈을 맞는 시각까지 계속됩니다.

아침 집을 나서면서 마주친 이웃집 아주머니의 직장 이야기, 시장에서 만난 상인 자녀의 시험 소식은 물론, 통화한 친구들을 모두 소환하고 그들의 친정과 시가 그들과 얽힌 이야기들을 이리저리 엮어냅니다.


농사짓는 친구의 고추밭 상황부터 이곳저곳 기웃대며 강의시간에 골머리 앓는 후배의 이야기, 삐걱대는 공장을 부여잡고 사투를 벌이는 사업가 선배, 언제 적 조강지처냐며 크고 작은 바람을 몰고 다니는 남편으로 까맣게 타들어 가는 이웃집 여자의 속 사정까지 영문도 이유도 까닭도 모를 이야기들을 줄줄이 늘어놓습니다.


여기서 그치면 다행입니다.

몇 동 몇 호가 이사했고 몇 호는 언제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문 닫은 가게는 어디이고 새로 문을 연 가게는 또 어디인지, 동네 식당 메뉴를 꿰고 메뉴에 대한 평가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뿐이 아닙니다. 위층 며느리가 언제 다녀갔고, 8층 아저씨 내외는 한 달 일정으로 스페인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까지…. 관심도 흥미도 마음도 없는 이야기들을 폭포처럼 쏟아냅니다.


그러다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내가 누구와 사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뱉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시간도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그게 함께 사는 이유라며 자신의 말 듣기를 강요합니다.




그러던 아내의 입이 묵언수행에 들었습니다.

아내의 입이 쉬니 세상이 조용합니다.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아내의 수다가 없으니 몸도 마음도 처졌습니다.

아내의 입이 멎으니 내 삶도 덩달아 멈췄습니다.


내 삶에 삽입되는 아내의 수다가 주저앉고 싶은 삶을 감싸주는 위안임을

삶 구석구석을 파고드는 아내의 수다가 헐거운 삶을 채워주는 사랑임을

발효와 숙성 과정 없이 날로 날아드는 아내의 수다가 어둑하고 그늘진 삶을 비추는 햇살임을

아내가 입을 다물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아내의 수다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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