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엄마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되어가는 아내

by 지금

엄마가 돌아가신 지 십수 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엄마는 기억 속에만 존재합니다.

모습도, 소리도, 향도 그리고 엄마의 웃음도 그렇습니다.


추억의 흔적이 진한 계절이 오면 엄마의 향은 더불어 진해집니다.

엄마의 소리도 모습도 훨씬 가깝게 다가옵니다.


엄마의 향에 코끝이 찡해지고, 엄마의 소리에 가슴이 뜁니다.

그러다 엄마의 모습에 눈물을 왈칵 쏟아집니다.


...


인기척도 없이 덜컹 문이 열립니다.

눈 끝에 남아 있는 눈물자국에 아내는 살포시 안아줍니다.


“엄마 만났구나!”


아내의 품에서 엄마를 느낍니다.




엄마가 되어가는 아내


간혹,

아내에게서 엄마를 봅니다.


무릎이 아프다며 걷기를 주저하고

저녁마다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 관절을 주무르면서도 아이들을 걱정하고

채널을 고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리모컨을 든 채 TV 앞에서 좁니다.


가끔,

아내에게서 엄마의 향을 맡습니다.


땀에 흠뻑 젖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가족에게 먹일 상추를 다듬고

외출에서 돌아오는 손엔 으레 식구들이 좋아하는 먹거리가 들려있고

미용실에서 잠깐 만난 누군가의 삶의 속살을 일일이 늘어놓습니다.


때로,

아내에게서 엄마의 소리를 듣습니다.


아침에 돌린 빨래를 널지 않았다고 소리치고

먹을 만큼 덜어 먹지 않고 그릇을 통째로 놓고 먹었다고 잔소리고

며칠을 궁리한 구실을 달아 떨리는 손을 내밀면 청구금액을 반으로 잘라 내밀며 땅 파면 나오는 돈이 아니라며 혀를 찹니다.


며칠째 아프다고 끙끙대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야단인 아내


언제부턴가

아내가 엄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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