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탐합니다

아내가 참 좋다

by 지금

남편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후 제법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름표가 많이 낡고 헐었습니다.

늦가을 나뭇가지 끝에 걸린 나뭇잎을 닮았습니다.


이맛살이 접히고 볼살이 패일수록

소파에 엉덩이 자국이 선명해지고 리모컨이 손때로 번들거릴수록

전화의 침묵이 길어지고 요일감각이 무뎌질수록


아내를 탐하는 마음도 덩달아 거세집니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주변을 살핍니다.

작은 것일지라도 아내를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을 찾습니다.


아내 없는 마음은 울적합니다.

아내 없는 공간은 삭막합니다.

아내 없는 시간은 막막합니다.


아내

그냥 좋습니다.




아내가 참 좋다


외출준비를 하는 아내만 보면 가슴이 쪼그라듭니다.


아내 없이 보내는 시간은 어둡기 때문입니다.

먹어도 허하고 무엇을 해도 부실합니다.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손길은 허실 하고 발길은 길을 잃습니다.


아내가 집을 비우면 마음이 텅 빕니다.


처량하고 울적합니다. 답답하고 쓸쓸합니다.

아내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이내 사라집니다.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시계의 걸음만 연신 재촉합니다.

아내 없는 시간은 그렇게 길 수 없습니다.


이 방 저 방 모든 방을 방문하고,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이것저것에 괜한 시비를 겁니다.


배는 고프지만 먹고 싶은 마음 없고

힘은 들지만 앉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띠득 뜨득 찌르륵’


창밖 풍경이 어둠에 가려지고 뱃가죽이 등허리에 붙을 즈음 아내의 기척이 들립니다.

이보다 반가운 소리가 또 있을까요.


“밥은?”


아내는 보자마자 뱃속 안부를 챙깁니다.


‘아직’이라는 말에 언제까지 챙겨줘야 하냐며 반가운 마음에 찬물을 퍼붓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아내의 손길이 닿은 밥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니….


쉼 없이 퍼붓는 잔소리마저

아내 없는 힘겨움을 달래는 천상의 소리가 됩니다.


아내가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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