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여행
아내가
때로는 불편했다.
걸림돌이기도 했다.
외출 소리에 말 없는 환호를 보낸 적이 수 없다.
내 시간의 권리를 사수하기 위해서다.
아내는 부지불식간 내 시간을 침범했고 공간을 점했다.
아내의 눈에 띄는 것은 아내의 시간 속으로 편입되는 것이었고
아내의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아내는 수시로 내 공간과 시간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아내와 공통의 조건으로 한데 묶이고 그대로 휘둘리는 신세는 서글프다.
아내가 생각하는 남편과 내가 느끼는 남편 사이의 간극이 너무 넓다.
그런데 아내가 없으면 아내가 느껴진다.
아내앓이를 한다.
아내의 여행
아내는 무시로 가방을 쌉니다.
‘어디 괜찮다더라’라는 지나는 말 한마디에도 아내는 주저 없이 짐을 챙깁니다.
아내가 가방을 싸는 날이면 가족은 술렁입니다.
아내의 마음이 달뜬 만큼 가족의 마음은 천 길 만 길 나락으로 가라앉고, 아내가 휘파람을 불며 달싹이면 가족의 한숨은 깊어집니다.
아내가 집을 나설 날이 다가오면 집은 조금씩 조금씩 빛을 잃어 갑니다.
그러다 아내가 집을 나서면 단박에 검은빛으로 변합니다.
아내 없는 집은 어둡습니다.
가족은 졸지에 콩가루가 됩니다.
어깨는 움츠러들고 입은 굳어지고 눈빛은 스러지며 귀는 서로에게 무심해집니다.
직장 동료들은 뭔 일 있냐며 위아래를 훑습니다.
옷은 구겨진 채 어깨에 아스라이 걸쳐져 있고
머리칼은 어수선하고 얼굴은 부스스 두어 달 가뭄 맞은 논밭을 닮아 갑니다.
저녁 시간 현관을 들어서는 애들의 발길은 사나흘 굶은 이의 발걸음을 닮았고
방에 들어선 아이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가방을 집어던지고 그대로 침대에 쑤셔 박힙니다.
아내의 손길이 사라진 집은
아내의 눈길이 지워진 집은
아내의 소리가 없어진 집은 황량합니다.
가족의 웃음 뒤엔 아내의 손길이 있음을 느낍니다.
어깨를 활짝 펼칠 수 있는 것도 아내의 손길 덕임을 깨닫습니다.
그래도 가방을 펼치며
그날, 그곳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끄집어내는 아내의 상기된 목소리가 좋습니다.
오늘도 아내는‘다음 행선지’에 골몰합니다.
아내의 충만한 삶의 의지가 부럽습니다.
이런 아내를 보면서
아내라는 존재의 피로와 부재의 우울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는지…,
고민이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