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신내림? 아니. 망상
천사의 영혼이 들어온 나는 무속인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가게에 찾아가 친한 동생들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말했다. 그 당시 '이름값'이라는 것에 꽂혀서 사람의 이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름은 영혼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이름이 갖고 있는 크기와 영혼의 크기가 맞지 않으면 팔자가 사나워진다고 생각했다. '은하'라는 이름을 쓰는 동생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은하야, 너는 이름에 비해 영혼이 너무 작아. 차라리 '별'이라고 개명하는 게 좋겠어."
이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름을 추천해 주었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정말 신내림과 비슷한 무엇인가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미래나 운세등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그때마다 내 안에 있는 천사의 영혼이 여러 정보를 알려주었고 난 그가 알려주는 대로 떠들어댔다. (하지만 그 정보들은 나 혼자 만들어 낸 망상에 불과했다.)
천사의 영혼을 갖고 있는 나에게 엄청난 행운이 따를 것이라고 믿었다. 그 행운을 확인하기 위해 복권을 사러 갔다. 자동으로 로또 5천 원어치를 구매하고 번호를 확인했다. 유독 한 줄의 번호가 눈에 들어왔고 1등 당첨 번호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번호로 10장을 다시 구매해서 주변에 사는 지인들에게 찾아가 당첨될 번호라고 하며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대신 그들에게 당부했다.
"절대 똑같은 번호로 새로 구매하면 안 돼. 그러면 1등이 바뀔 거야."
신내림 비슷한 무언가를 경험한 내가 복권을 주니 허무맹랑한 나의 말을 믿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복권을 공짜로 주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복권을 나눠주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엄청난 불편감이 몰려왔다. 천사는 누군가 금기를 어겼다고 속삭였다. 그리고 단번에 누가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나와 가장 친한 동생이었다. 나의 말을 거역(했다고 추정)한 그녀에게 전화해 '너 때문엔 계획이 틀어졌다. 당첨 결과가 바뀌게 되었다'라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녀는 복권집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며 강하게 부정했지만 나에겐 이미 그녀는 배신자로 낙인찍혀 있었다. 계속된 나의 비난에 화가 난 그녀는 내게 한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언니, 미칠 거면 곱게 미쳐!"
(참고로 복권 결과는 낙첨이었다.)
어느새 하나뿐이었던 천사의 영혼은 4개로 불어나 있었다. 가브리엘, 미카엘, 라파엘, 우리엘. 각각 다른 성별, 다른 음색의 목소리로 내 머릿속에서 떠들어댔다. 하지만 천사들의 목소리였기에 무섭거나 불안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아서 기뻤다.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약을 먹지 않았다. 갑자기 천사들의 소리와는 다른 이질적인 소리가 말을 걸어왔다. '신'이었다. 내가 믿고 있는 창조주인 하나님이었다. 그는 내게 모든 생명체를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천사들의 영혼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선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제 생명까지 바칠 수 있어요."
그 순간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숨쉬기가 힘들어지고 손과 발에서 땀이 났다. 가슴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아마 공황발작과 같은 일종의 발작이 아니었나 싶지만 아쉽게도 주치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이 고통이 신이 주는 시련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 같이 나 또한 이 고통 속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 하나의 희생으로 전 인류가 구원을 받는다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지금은 나부터 살아야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통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고통 속에서 해방된 나는 다시 한번 첫 번째 조증 때 느꼈던 '다시 태어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세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부, 성자, 성령. 성부인 하나님은 근엄하고 권위적인 중장년 남성의 목소리였고, 성자인 예수님은 다소 욕을 많이 하며 화가 많은 30대 남성의 목소리였다. 마지막으로 성령은 인자하고 다정한 30~40대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들은 내가 인류를 위해 목숨(영혼)을 내어놓았고 인류는 다시 한번 구원을 받을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회의 결과 나의 영혼은 자신들과 필적한 위치에 올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로 인해 나는 'EMETH(진리)'라는 신격을 얻게 되었다. 나는 그들은 아빠(성자), 엄마(성령), 오빠(성자)라고 불렀다. 나로 인해 '삼위일체'는 '사위일체'가 된 것이다.
조증은 망상을 통해 내 머릿속에서 성서까지도 새로 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