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아이들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은 말레이시아 페낭에 거주할 때였다. 첫째는 영국제 국제 학교에서 year 4 (만 9살)였고, 둘째는 year 3(만 8살)였다. 학교 교육이 주는 혜택과는 별개로 아이들의 성적이 좋지 않았고, 선생님들 역시도 동남아시아 특유의 릴랙스 한 삶에 충실한 듯 보였다. 그들이 열의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콘도 문을 열면 열대의 아름다운 트로피컬 날씨에 야외 수영장이 지천인 휴양지인 페낭에서는 방과 후 굳이 교재 분석이나 개개인별 학습 계획을 세우기는 것보다는 수영복을 입고 선데크에 누워 있는 모습이 더 어울리지 않는가 말이다. 그즈음 나도 아이들은 당연히 놀아야지, 생각하고 맨발이 새까매지도록 놀게 했다. 놀이에 집중할수록, 몰입의 즐거움을 깨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몰입의 즐거움이야 말로, 성인이 되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헌신하는 힘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연령별로 놀이와 몰입의 범위를 높여가야 한다는 믿음이 곧 생기기 시작했다. 연령에 맞는 수준의 책 한 권을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딸을 보고는 이제 학교를 그만둘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또래를 통해 세상을 만났으면, 글자를 통해 더 큰 세상을 만나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말이다. 언어라는 창문을 열어 아이들이 더 큰 세상을 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뇌의 사고가 증폭하는 시기, 그 시기에는 논리적 사고와 더불어 타인의 공감을 얻고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말할 서 있는 능력이 서서히 갖추어 지는 시기이다.
나는 공부를 놀이와 절대 따로 보지 않았다. 놀이를 통해서 세상과 만나서 몰입을 즐거움을 느꼈으면, 이제는 조금 더 크고 넓은 창인 언어와 사고라는 장난감을 통해 세상과 함께 즐겁게 놀아보자라는 턱없는 착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 착각 아래에는 집중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놀이 단계'를 마쳤으면, 이제는 사고의 범위를 '언어'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세상을 알아가자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 착각이 깨진 것은 바로 첫날, 첫 수업부터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를 타 와서 책상에 같았다. 그리고 영어책 한 권을 단어 한 자 한 자 빠뜨리지 않고 같이 읽었다. 여기까지는 그림이 좋아 보이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알렝드 보통이 말하는, 부모에게 복종하지 않는 어쩌면 다행인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내면이 건강한 아이들이었고, 엄마가 실망할까 봐 눈치를 보며 내게 맞추려 하는 애정결핍의 증후도 없었다. 심지어 너무나 건강하여 자기주장이 분명한 아이들이었다. 하기 싫은 것을 하기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강한 자기주장 말이다. 한 편으로는 안도했다. 너무나 다행인 일이기도 했다. 건강한 정신과 자립심, 분명한 자기주장은 내가 원하는 교육의 첫째 조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우리가 탄 홈스쿨링 배는 곧 좌초할 수밖에 없다는 예고탄이기도 했다.
이런 자기 주장이 강한 성향의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에 앉히는 것을 물론이거니와 앉혀서 책을 읽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더 가까웠고, 무엇보다 가장 불가능한 것은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끓어오르는 나의 ‘나의 화를 참아내기'였다. 첫 수업 때 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단순히 화를 내고 잔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넘어선 화를 뿜어내었다. 급기야 읽고 있던 책을 벽에 던져버렸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내 머리를 강타하는 질문에 대답할 겨를도 주어지지 않은 채, 던져버린 책을 다시 주워와서 우는 아이들을 달래야 하는 '우습고, 슬픈' 상황과 대면했다. 도대체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내가 이렇게 솔직하게 내 첫 홈스쿨링 시간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남들역시 적어도 스트레스에 관한한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가정을 할 수 있어서다. 이것은 단순히 힘든 일이 아니다, 정확히 말해, 불가능한 일이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남의 자식은 가르쳐도 내 자식은 못 가르치겠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아이의 눈물이 잦아들 즈음에서 야 나는 무언가가 너무나 잘못되었고, 이 잘못을 수정할 첫 노선을 어디서부터 잡아야 하나, 조금 논리적이고 전략적으로 분석하지 않으면, 감정의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매일 울고, 화내고, 달래고, 화내고, 울고, 달래 고의 악순환을 반복해야 할 수 도 있겠다는 위협을 느꼈다. 이 수위 높은 스트레스를 해결해야 하고, 나와 내 아이들 모두 구출해야 한다는 목표가 절박함을 넘어서 간절함이 되었다.
이제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터닝포인트로 삼고 방향을 돌리고 가야 할 때이다. 모든 기회는 위기에서 온다. 나와 아이의 첫 수업은 기억에 남을 만한 이벤트로 첫 단추가 채워졌다. 물론 실패였다. 그 실패는 곧 큰 깨달음과 배움으로 연결되었다.나는 나를 바꾸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나에 대한 책망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오히려 넘겨야 할 터닝 포인트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한 번의 실수는 실수이고, 그것이 악순환의 고리로 또 다른 나쁜 이벤트를 끌고 오면 그것은 결국 실수가 아닌 잘못이 된다. 이제 나의 감정에 대한 문제점을 알아차리는 일과, 그 일을 통해서 어떻게 아이과 소통하고 나아가 공부까지 시킬 것인가의 목표를 잡으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옛 글귀 중에 '넘어지면 동전을 주으라'는 말이 있다. 넘어져서 우는 일 대신, 넘어져서 동전이라도 줍고 일어서면 그 넘어진 일은 상처이고 실패이기 보다는 기회고 행운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첫 수업을 통해서 동전을 주웠다. 다시 나를 바꿔보고 세워보는 '나에 대한 성찰의 자세'라는 동전 말이다.
'너도 나의 아이로서의 삶이 처음이지? 엄마도 너의 엄마로서의 삶은 처음이야.'
이러한 마음 자세로 현재의 상황을 피하지 말고 인정하고, 또 계속 상기시켜가며 나를 교정하고 세우는 일을 다음 장에서 다룰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