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내일 아침, 눈 떴는데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어있었으면 좋겠다."
2013년, 유학을 시작한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던 생각이다.
그게 얼마나 허황된 소망인지 알면서도 늘 바란다.
당장 내일부터,
이론 입자물리학 랩에서 정식 연구를 시작하고 싶고,
풀마라톤을 6분 초반 페이스로 가볍게 완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박사 지원서를 쓰다가 나른해진 오후 2시,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10년 전 오늘'이라며 앱이 사진 한 장을 띄워줬다.
싱가포르에서 막 유학을 시작했을 때,
어정쩡한 미소를 짓고, 아직 친해지지 못한 친구들 사이에
어색하게 서있는 내 모습.
'나는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
학업도, 관계도, 언어도, 체력도
하나하나 다 달라져 있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16살의 내가 바라던 '10년 뒤의 나'가 된 것일까?
얼추 그런 것 같았다.
이론물리학을 전공으로 공부했고,
영어로 편하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혼자만의 시간도 깊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내 몸을 더 잘 이해하고, 체력이 내 꿈을 지탱해 줄 수 있도록 가꿔가고 있다.
막연히 그렸던 여러 모습들, 떠오르는 건 대부분 이뤄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것.
16살의 내가 상상했던 미래는 모양도, 상황도 참 여러 가지였지만, 하나만큼은 늘 같았다.
미래의 나는 늘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꽤 먼 길을 돌아왔다,
7년 전, 친구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몰라, 정답에만 메달리기도 했고,
5년 전, 보기 좋은 외모를 가지고 싶어, 무리하게 운동하다가 몸을 상하게 하기도 했고,
3년 전, 원하는 타이틀을 가지려고, 스스로를 혹사시키다가 마음의 병을 얻기도 했고,
1년 전, 완벽한 내가 되려다가, 오히려 배움의 기회를 스스로 닫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난,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시련 하나를 넘으면 그만큼 나도 달라져 있었다.
눈을 떴는데,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어있었다.
한 번은 아니었지만,
아마 한 수천번쯤 눈을 감았다 떴더니, 어느새 다른 삶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눈을 깜빡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