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오렌지와 빵칼>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들었지만 싫지는 않았던 감정이었다. 책을 다 읽은 순간 마법처럼 앞선 감정이 사라지고 편안한 마음만 남게 해 버리는 책.
"겁이 있어야 도덕을 지키죠."
어쩌면 도덕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꽤 불편함을 가져다주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인정하는 마음까지 드는 문장이다. 내가 그랬으니 말이다. 사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도덕적인 삶에 대해 많이 배워왔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올바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교육이 우리를 겁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건 아니었을까로 연결되는 문장. 이 마법 같은 문장이 이 책을 설명하는 가장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영아 역시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올바른 행실과 달리 내면에서는 불편한 무언가가 늘 꿈틀거리는 인물.
오.빵.칼의 호불호가 갈리는 순간이다. 주인공의 감정에 묘한 끌림을 느끼는 사람과 비판의 시선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명확하게 갈리는 부분이지 않을까. 나 역시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 책을 읽었던 건 아마 주인공에게 거부감을 느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 싫지 않은 감정이 책을 더 읽고 싶게 만들었다. 그렇게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알 수 있었다. 나도 같은 사람임을.
많은 사람들 아니 정확이 말하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고 있었다. 식당 직원, 버스 기사님 심지어 지나가다 멈춰주는 자동차까지 내가 하루를 살아가면서 한 번이라도 나를 접하는 모든 무언가에게 웃음과 친절로 답했다. 나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크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이라면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속이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나 역시 마음 한편에는 늘 불편함이 쌓여있었고 그걸 다른 곳에 풀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 대상이 가족이었던 어릴 적을 떠올리면 참 못난 아들이었다는 자책이 밀려오지만 말이다.
내가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가 어쩌면 겁쟁이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 이 책의 결말과 함께 나만 겁쟁이는 아니라는 생각으로 바뀐 건 아닐까. 겁쟁이라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겁쟁이의 삶을 선택한 나의 선택에 대해 고민하고 싶어지는 책이다.
"내가 싫죠? 오늘부터 확실히 싫어해도 돼요."
책 중간중간 나오는 사이다 같은 순간들. 그중에서도 단연코 속이 뻥 뚫리는 한 문장이다. 편집자님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에 뒤표지에 떡하니 쓰여있던 문장. 어떤 의미인지 몰랐지만 이 문장이 있는 내용을 읽었을 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짜릿함이었다. 어쩌면 나도 이런 순간들을 상상하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영아가 그 말을 해줬다.
4주간의 영아의 모습을 보면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 사람들 앞에서의 나와 내면의 내가 지배하는 나를 비교하는 순간들. 누구에게나 이런 모습이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과 내면의 것을 외부로 가져와도 괜찮다는 수많은 장면들이 주는 편안함. 나와 영아처럼 도덕적인 삶과 내면의 꿈틀거리는 이질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꽤 흥미로운 감정을 선사해 줄 것임을 확신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로워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자유로워질 수 없고, 모든 사람이 도덕적이기 전에는 그 누구도 완전히 도덕적일 수 없다. 또한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전에는 그 누구도 완전히 행복해질 수 없다."
영국의 철학자, 하버트 스펜서의 저서 "사회정학"에 나오는 문장이 등장했을 때 꽤 난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다시 이 문장을 보는 지금 이 문장이 마음에 와닿는 기분이 든다.
이 책을 읽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 시간은 꽤 즐거운 시간이지 않을까.
마침 그런 기회가 있으니 그날이 꽤 많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