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군사 최강대국 대몽골제국군의 세계 정복사 - 0

0. 칭기스칸 이전의 몽골대초원과 세계 정세



세계 군사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군사 계승제국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칸국' 배경의 전쟁영화 中




0. 칭기스칸 이전의 몽골대초원과 세계 정세



몽골제국의 군사적 전신들이자 직계 선조들은 중앙아시아 몽골대초원의 흉노제국과 유연제국들이다. 그들은 각각 고대시대 때에 세계 초강대국을 건국했다. 흉노제국의 경우 세계 대무역로인 실크로드를 개척하여 로마제국까지 진출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고대 중국 한무제와 세계 패권을 두고 경쟁했으며, 유연제국은 먼 훗날 위구르 제국, 카라한 제국, 셀주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건설하게 될 튀르크계 대제국들의 직계 선조인 돌궐제국을 건국할 튀르크족을 피지배층으로 지배했으나, 이들이 반란을 일으키면서 유연제국은 쇠락하고 돌궐제국이 건설되었다.


그리고 유연제국의 패권이 사라진 중앙아시아의 몽골대초원은 돌궐제국과 위구르 제국, 거란제국 등의 군사적 패권이 작동하게 된다.


세계 군사 패권사(Global Military Hegemony History)의 정점에 섰던 대몽골제국을 건국한 주인공들, 즉 ‘중앙아시아의 몽골족 유목기병대’들이 세계사의 전면에 군림하여 전 세계 군사 패권 지배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기 시작한 시작점은 비단 12세기 ~ 13세기에 국한되지 않으며, 실상은 11세기 이전부터였다. 원래 몽골족 유목기병대들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살벌하고 혹독한 기후가 지배하는 북시베리아의 최상류, 즉 '흑룡강(현재 아무르강) 유역'에서 끊임없이 수많은 유목민족들을 군사적으로 정복하면서 패권 전쟁 및 유목 활동을 전개하던 몽골계 유목민족이었다.


이러한 ‘몽골(몽골어 : ᠮᠣᠩᠭᠣᠯ ᠤᠯᠤᠰ, Монгол Улс, Mongolia)’이라는 국명이 내포한 정의(뜻)는, 당시 그들의 군사적 세계 최강력과 끊임없는 정복전쟁에서 승전한 군인적 패권을 투영한 ‘세계 최강의 용맹무쌍한 군인’이라는 정의를 내세우는 뜻이었다.


실제로 11세기 이전의 '고대시대(Ancient Era) 때'부터, 몽골족 유목기병대들은 중앙 유라시아의 군사 패권의 최정점으로서 군림해 왔다. 예컨대, ‘흉노제국(匈奴帝國, 몽골-튀르크계가 군사 지배층이고 피지배계층은 이란계인 유목 대제국)’을 건국하여 고대 중국 한나라와 로마 제국까지 침략하여 멸망 직전까지 몰아 넣는 등 유라시아 대륙 전역을 군사 지배했으며, 흉노제국 멸망 후에도 ‘유연제국(柔然帝國, Róurán Khaganate)’을 수립하여 훗날 '오스만 튀르크 제국' 등의 '튀르크(Turk)'의 기원이 되는 ‘돌궐제국(突厥帝國, Göktürk Kağanlığı)’을 군사 식민지 지배(Military Colonial Rule)하에 두는 등, 고대시대 때부터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적으로 지배해 온 중앙 유라시아의 최강의 제국이었던 몽골계 유목 대제국들(흉노제국, 유연제국)의 군사적 영광을 보면, ‘몽골족 유목민’이 중앙아시아의 최상위 포식자이자 맹수인 ‘몽골 늑대’,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혈통인 ‘푸른 늑대의 후예(Börte Chino's Descendants)’라 불렸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몽골족 유목민들은 세계 최악의 ‘극한(極限)’의 ‘혹한(酷寒)’과 ‘동장군(冬將軍)’이 휘두르는 매서운 '칼바람'이 지배하는 ‘극저온 건조’한 시베리아 기후의 몽골대초원(Mongolian Steppe, '스텝지대(Steppe)'이기도 한 몽골대초원은 '초한파 현상[조드 현상, ᠵᠤᠳ / зуд / zud, dzud]'으로 인해 영하 70도까지도 내려가는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혹한의 추위로 악명 높은 지역)으로, 세계 최강의 기병대 전력을 이끌고 과감히 진출함으로써 세계 정복의 서막을 열었다.


몽골제국의 등장 이전 세계 정세는 뚜렷한 세계 패권국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세계 초강대국이었던 거란제국이 쇠락기에 접어들자, 거란제국의 수탈을 견디다 못한 여진족의 전쟁 영웅 완안 아구타(完顔阿骨打, 완옌 아구다)가 여진족 기병대들을 이끌고 거란제국과의 총력전을 개시했다. 12세기 초, 1114년 출하점 전투(出河店之戰)에서 마침내 그 막강한 거란제국군을 격파함으로써 1113년 10월 금나라를 건국하고 초대 황제 태조(太祖)에 즉위한 완안 아구타는 이후 금나라의 군사력을 꾸준히 강화시키며 남진을 거듭해 송나라와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두고, 송나라의 영향권을 장강(长江) 이남으로 밀어냈다.






한편, 금나라에게 패권을 빼앗긴 거란제국의 마지막 황제 야율대석은 거란군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하여, 현재 중앙아시아의 키르기스스탄에 위치한 '발라사군(한자 虎思斡魯朵 호사알로타, 튀르크어 Koz Ordu)'을 중심으로 한 '서요제국(카라 키타이 제국)'을 건국했다. 서요제국은 군사력이 옛 거란제국의 영광 때에 비하면 다소 약화됐음에도 과거 세계 초강대국이었던 거란제국의 직접적 후신답게, 1071년 8월 26일에 테마 아르메니아콘(테마 이베리아스) 만지케르트(현재 튀르키예 말라즈기르트[Malazgirt]) 인근에서 발발한 '만지케르트 전투(혹은 '말라즈기르트 전투'라고도 불림, Battle of Manzikert, Battle of Malazgirt, 그리스어 : Μάχη του Μαντζικέρτ)'에서 당시 서구의 최강국 동로마 제국을 박살내며 서아시아-중동-유럽의 패권을 차지한 셀주크 튀르크 제국을 1141년 9월에 서요제국이 침략하면서 발발한 '카트완 전투(Battle of Qatwan, 중국어 : 卡特萬之戰)'에서 대승을 거둔 서요 제국은 서아시아-중동-유럽의 신흥 패권국으로 급부상했으며, 동시에 셀주크 튀르크 제국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처럼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12세기 ~ 13세기부터 세계 군사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을 건국하고 세계를 정복하여 세계사를 주도했던 ‘칭기스칸’이 중앙아시아 몽골대초원에서 태어나게 된다.


당시 중앙아시아‑동북아시아의 군사적 패권국인 금나라는 자신들이 만주의 여진족이었던 시절 거란제국에게 받았던 군사적 압박들을, 이번에는 중앙아시아의 몽골계-튀르크계 유목민족들에게 그대로 가하고 있었다. 금나라는 일찍이 이 중앙아시아의 유목 기병들이 항상 전쟁, 군사 내전, 군사 반란, 암살로 서로 죽고 죽이는 치열한 군사적 전쟁들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전쟁터에서 '군사 영웅'이 등장해 그들을 통합한 중앙아시아의 통일제국이 건국되어 금나라를 정복할까 두려워 중앙아시아 몽골대초원에서 태어난 남아 중 일정 수를 제거하는 인구 제한 정책을 실시해 왔다.


중앙아시아 몽골대초원이 항상 전쟁터였던 이유는 여러 가지들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전쟁에 나서기 쉬운 환경, 몽골족이 원래 가지고 있던 ‘피의 복수’ 문화, 세계적으로 혹한의 추운 시베리아 기후, 그리고 금나라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라는 복합적 요인들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먼저, 중앙아시아의 몽골족 유목민과 튀르크족 유목민들은 모두 군인들이었다.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오로지 ‘군인’뿐이었다. 게다가 이들은 ‘중앙아시아계 북방 유목민’들이었기에 1명당 말을 수십 마리씩 소유하고 있었고, 하급 군인이라 할지라도 장거리 군사 원정용인 군 막사이자 바퀴달린 군용 마차인 ‘게르(ᠭᠡᠷ, гэр, ger, 유르트)’에는 수많은 각종 군용 도검(신월도), 무기, 갑옷들이 많이 있었다. 게다가 '게르(유르트)'가 이동식 주거라는 점까지도 감안하면 그야말로 모든 몽골족 군인들은 움직이는 무기창고를 하나 이상씩은 가지고 다니는 셈이었다.


또한 이들은 유목 생활로 항상 이동했고, 휴대용 육포를 늘 지녔기에 정복전쟁을 나설 때 별도의 ‘보급’이 필요 없는 순수 전투병으로 구성되었다. 늘 유목 생활을 하며 이동했기에 장거리 원정에도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먼 곳으로 모험을 떠나는 것은 몽골족 유목 군인들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 자체가 중앙아시아 몽골족 및 튀르크족 유목민 남성 전체를 최정예 ‘군인화’시켰고,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정복전쟁에 나서기가 수월했다. 예컨대 정주 문명들이었던 중국-로마-유럽 등은 전쟁을 일으키려면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었지만, 몽골족 유목민-튀르크족 유목민들은 전원 군인이자 게다가 보급병이 필요 없는 최정예 전투병들로만 이루어졌기에, 정복전쟁들을 개를 데리고 산책 나가는 것보다도 빠르고 수월하게 수행할 수 있었다.


몽골족 유목민.jpg


게다가 세계적으로 추운 기후 요인도 있었다. 세계적인 혹한의 시베리아 기후를 지닌 몽골대초원은 땅이 얼어붙은 얼음 땅이었고 영하 70도 이하로 내려갈 정도로 ‘맹렬하게 춥다’. 이런 극단적인 환경은 야생동물도 얼어 죽을 만큼 인간도 생존하기 어려웠다. 이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몽골족은 모두 강인할 수밖에 없었고, 생존한 자부터 그야말로 ‘전사’가 되었다. 나중에 몽골제국의 군사 원정대장 '바투''수베게테이 바가토르 장군'의 군사 원정대들이 세계 역사상 유일하게 러시아의 추위를 이기고 정복할 때도 애초에 러시아보다 더 추운 몽골대초원에서 생존했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도 있었다. 물론 애초에 몽골제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지녔기 때문에 러시아 정복에 큰 무리가 없었던 것이 정복 요인들 중 가장 강력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몽골제국의 군사 원정대는 혹한의 러시아 겨울에도 진군 속도가 오히려 빨라질 정도로 혹한의 추위에 엄청나게 강했다.


‘피의 복수’ 문화 또한 몽골대초원을 세계의 전쟁터로 만들게 했던 대표적인 요인들 중 하나였다. 중앙아시아의 몽골대초원은 강한 자가 정의인, 힘이 지배하는 세계였기에, 유목민족의 군대장들은 반드시 ‘피의 복수’를 수행해야 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복전쟁, 침략전쟁, 약탈전쟁, 수탈, 전쟁, 군사 내전, 군사 반란, 암살들이 일상이었던 몽골대초원에서 각 유목민족의 군대장들은 ‘피의 복수’까지도 수행해야 됐기 때문에, 중앙아시아의 유목 세계는 완전히 복수혈전들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맹렬하게 치닫게 되었던 것이다.

유교나 그 어떤 질서도 통용되지 않던 중앙아시아의 몽골대초원에서는 ‘의형제’를 중시하는 문화도 강했는데, 이는 삼국지의 의형제와 달리 오로지 ‘강한 군사력’만으로 맺어진 개념이었다. 쉽게 말해 ‘군사 동맹국’이다. 추운 얼음 땅에서 무기와 갑옷, 군사력만을 생존 수단으로 삼은 몽골족 유목민, 튀르크족 유목민들은 이 강한 군사력으로 정복전쟁, 침략전쟁, 약탈전쟁들을 벌여 전리품으로 유목 부족들을 운영하는 정복경제, 약탈경제 방식을 계속해서 대외적으로 폭넓게 이어갔었던 것이다.


의형제를 많이 맺는 것은 군사 내전, 군사 반란, 암살들이 워낙 빈번했던 유목 사회였기 때문이다. 서로 끊임없이 정복하고 약탈하는 전쟁들이 연속되자, 강한 군인과 장군들은 ‘의형제’를 맺어 다른 유목 군인들보다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려 했다. 몽골족, 튀르크족은 '군인 문화'이었기 때문에 거주지조차 군대식이어서 남성은 전원이 전부 다 실전으로 단련된 강력한 '군인'들이었고, 장군들은 각자 개인 군대를 통솔했기에 ‘의형제’는 곧 군사 동맹을 체결하는 것이기도 했다.


즉, 몽골족-튀르크족 유목 군인들에게 생존은 곧 정복전쟁이었다. 자신들이 평소에 적대감을 가지지 않던 국가나 민족이라 할지라도 몽골족-튀르크족 유목민들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타국들을 침략해 말살하고 전리품들을 약탈해야 됐다.


게다가 몽골족 유목 군인들과 튀르크족 유목 군인들은 ‘칼은 칼로 갚고 전쟁은 전쟁으로 갚는다’는 피의 복수 문화가 가장 강력하게 작동했다. 이 피의 복수 문화와 세계적인 시베리아 혹한의 환경이 결합해 끝없는 정복, 약탈, 전쟁, 암살의 반복이 끝없이 계속됐던 것이다.




이 정도만 봐도 중앙아시아의 몽골대초원은 오늘날 중동보다 훨씬 더 전쟁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는데, 게다가 여기에 더해 거란제국과 금나라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까지 펼치면서 가뜩이나 치열한 전쟁들이 훨씬 더 심해지도록 부채질해왔던 것이었다. 물론 이는 중세시대 때의 금나라가 처음 펼친 전략은 아니었고, 고대시대 때의 당나라, 송나라 때부터 펼쳤던 유구한 전통의 역사를 가진 유목 전략이었다.

금나라는 자신들이 만주의 작은 유목민족에서 시작해 군사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중국 북부까지 정복한 대제국임을 항상 상기(想起)하며, 언제든 자신들에게도 곧 군사적 패권 도전자가 나타날 수 있다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장 강력한 대상은 바로 중앙아시아 몽골대초원의 몽골계 유목민족, 튀르크계 유목민족들이었다.

이들이 언젠가 ‘영웅’의 등장으로 통합되어 대제국을 건국하면, 그들은 세계 최강의 실전으로 단련된 군인들이기에 금나라를 정복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중세시대의 대제국인 금나라는 고대시대 때의 당나라, 송나라, 그리고 중세시대의 이전 대제국인 거란제국들이 썼던 것처럼 중앙아시아 몽골계 유목민족-튀르크계 유목민족들에 대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지속적으로 강화했다. 군사적으로 강력해진 군벌 세력이 등장하면, 다른 군벌 세력들에게 군사적-기술적-경제적 지원들을 막대하게 제공해 그 다른 군벌 세력들로 하여금 강력해진 군벌 세력을 말발굽으로 짓밟게 하는 것이 이 이이제이 전략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생한다. 바로 그렇게 지원을 계속하면 어느 순간 그 군벌 세력이 강해지게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또 다른 군벌 세력들에 지원해, 이전에 지원했던 군벌 세력을 제거하도록 만들었다.


이 전략은 그들로 하여금 계속 서로 끝없이 전쟁하게끔 만들어 금나라를 넘보지 못하도록 했기에 당장에 강세(強勢)를 아주 잠깐 억제하는 데는 즉각적인 영향은 있었으나, 그럴수록 가뜩이나 항상 치열하게 전개됐었던 몽골대초원의 전쟁들이 더욱 더 치열해지게끔 완전히 가속화시켜 당시 세계 최대의 전쟁터가 되게끔 확산시키는 결과를 도출시켰다. 당시 세계 1위를 자랑하던 금나라의 선진 군사 무기와 기술들이 계속 중앙아시아 몽골대초원으로 유입되면서, 몽골 유목 군인 -튀르크 유목 군인들은 금나라의 세계 최강 군용 무기들과 갑옷들까지 손쉽게 획득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이이제이 전략으로 금나라에 대한 몽골-튀르크족들의 복수심이 폭발 직전인 상황. 이 요동치는 세계 정세 때, 칭기스칸의 세계 정복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