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군사 최강대국 대몽골제국군의 세계 정복사 - 1

1. 칭기스칸의 몽골제국 선포



대몽골제국 긴칼 소년병.jpg




1. 소년병 테무진과 군대장 '예수게이' 암살 공작(工作)



중세시대 12세기 때, 중앙아시아의 몽골 보르지긴 부족의 군대장 '예수게이(ᠶᠢᠰᠦᠭᠡᠢ, 1134년 ~ 1171년)’가 휘하 군대들을 이끌고 나가 튀르크계 유목민족 ‘타타르족(تاتارلار)’ 군대들과의 전쟁에서 승전할 때였다. 그때 용맹하게 싸운 적군의 장군의 이름이 ‘테무진(ᠲᠡᠮᠦᠵᠢᠨ, Тэмүжин)’이었는데, 예수게이는 비록 패전했으나 용맹하게 싸운 그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그 이름을 부여하게 된다. 애초에 중앙아시아는 ‘강한 군사력만이 곧 정의인 패권의 세계’이다 보니, 아무리 적군이라도 강한 군인이라면 존경해주거나 자신의 아군으로 고용하는 문화가 굉장히 강했다.


각설(却說)하고, '테무진(ᠲᠡᠮᠦᠵᠢᠨ, Тэмүжин)'이라는 이름은 ‘강철(鋼鐵) 정복자’ 혹은 '강철 군인'이란 뜻으로, 그야말로 테무진이라는 세계 역사상 최강 정복자의 정체성을 극명(克明)하게 보여주는 이름이다.


중앙아시아 몽골 보르지긴 부족의 군대장 '예수게이'


앞서 전술했듯, 몽골대초원은 피의 복수가 끊임없이 작동하는 전쟁터였다. 어린 소년이었던 테무진이 13살이 되던 해, 부친 ‘예수게이’는 튀르크계 유목민족 타타르족에 의해 암살당했고, 테무진은 순식간에 부족의 군대장으로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13세 어린 소년이었기 때문에, 몽골 보르지긴 부족의 군인들은 13세 소년은 군대를 지휘할 능력이 없다고 즉각적으로 판단하였고 그 즉시 3분의 2 이상의 군인들은 그를 냉혹하게 버리고 더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다른 유목민족으로 떠나버렸다.




그러자마자 예수게이가 암살당했다는 첩보를 받은 보르지긴과 같은 몽골계 유목민족인 '타이치우트족'이 순식간에 군대를 이끌고 침공해 보르지긴 유목민족을 기습 공격하여 수많은 군인들이 전사하고, 어린 소년이었던 테무진은 전쟁 포로로 끌려간다. 부친 예수게이가 암살당하자마자 휘하 군인들이 이적행위(利敵行爲)를 하여 떠나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른 유목민족 군인들이 순식간에 침공하여 강력한 차기 군대장에서 적군의 전쟁 포로로 하루아침에 전락하게 된 테무진이었다. 이때부터 테무진의 행적들을 보면, 중앙아시아 유목 세계의 모든 전쟁, 군사 내전, 군사 반란, 암살과 이적행위(利敵行爲)를 제일 최선봉에서 정면으로 돌파해야 됐기에 옛날에 자신에게 이적행위(利敵行爲)를 했던 혈연 따위는 단칼에 베어냈고, 오로지 ‘강한 군사적 실력만이 정의’라는 사실을 이 어린 나이 때부터 진작에 뼛속 깊이 깨우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전쟁 포로 생활을 수년간 지속하던 테무진은 기회를 틈타 어느 날 방심한 보초 하나를 제압해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세계에서 말을 제일 잘 타는 존재들이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이라는 것은 세계사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기본 상식 중의 상식이다. 그렇기에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의 추격대는 척후병, 전령병, 추격병, 첩보병을 세계에서 가장 잘 운용하기로 악명이 높다. 따라서 테무진이 아무리 열심히 탈출한다 해도 광활하고 드넓은 중앙아시아 대초원지대에서 몽골계 유목민족의 추격대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말을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더 이상 추격대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한 어린 소년 테무진은 순간 발견한 작은 호숫가에 기습적으로 뛰어들어 눈만 간신히 내밀어 바깥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그런데 추격대원 중 한 명인 ‘치라운’ 혼자만 호수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나타났는데, 그는 호수를 발견해놓고도 못 본 척하며 회군하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테무진도 목격했다. 여기서 테무진은 자신의 ‘목숨’이라는 카드를 걸고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역으로 자신이 그를 추격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이대로 13세 어린 소년인 자신이 혼자 이 작은 호숫가에 방치되어 있어봤자 전쟁이 일상인 중앙아시아 유목 세계에서 주변에 어떤 전쟁이라도 발발하면 또다시 전쟁 포로가 되거나, 야생 늑대들의 먹잇감이 되거나 추운 중앙아시아의 시베리아 기후에서 얼어 죽거나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결국 테무진은 역으로 치라운을 추격해 들어갔다.




그리고 치라운은 타이치우트족에 '반기(反旗)'를 들었던 막강한 반란세력이었는지 어린 소년병이었던 테무진이 후퇴하게끔 지원해줬고, 날카로운 판단력과 강력한 용맹무쌍함을 지닌 테무진은 목숨을 건짐과 동시에 치라운이라는 위대한 군인을 휘하로 두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후 늑대와 독수리들과 싸우며 앞으로 전진해 나가며 전 재산과도 같은 '군마(軍馬)'들을 되찾는 과정에서 만난 늑대 사냥꾼 '보르츠(Bo’orchu)'의 군사적 지원으로 유목 부족의 말 도적단들을 소탕하는데도 성공했다. 보르츠는 아무런 사례도 바라지 않고 테무진에게 군사적 충성을 맹세하였고, 이처럼 어린 소년 시절의 테무진은 날카로운 카리스마와 재빠른 결단력으로 자신들의 휘하 군인들을 모으며 차츰 군사적으로 성장해 나갔으며, 그들은 훗날 모두 칭기스칸의 세계 정복의 주역이 될 주인공들이기도 했다.


참고로, 세계 군사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이 세계 정복을 하던 시대, 동유럽까지도 정복하며 세계 정복의 주인공으로 등극했던 ‘수베게테이 바가토르(수베테이, 수부타이, ᠰᠥᠪᠡᠭᠡᠳᠡᠢ, Sübegedei)’ 장군의 군대 직속 상관(直屬上官)이었던 ‘제베(몽골어: ᠵᠡᠪ ᠡ ǰebe, 한자: 哲別) 장군’ 역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칭기스칸의 휘하에 소속되게 되었다. 수베게테이 바가토르 장군처럼, '칭기스칸의 최정예 친위군대인 사준사구(四駿四狗, 4마리의 군마와 4마리의 군견을 뜻함)'들 중 사구(四狗)에 소속되게 된 몽골제국의 제베 장군은 원래 칭기스칸을 암살하려던 적군이 보낸 ‘암살자’였으나, 제베의 저격으로 칭기스칸 대신 군마(軍馬)가 사망했음에도 매복 중이던 그는 퇴각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칭기스칸과 그의 군대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군마(軍馬)를 저격해서 죽인 게 바로 자신이며, 자신의 목표는 군마가 아니라 테무진이었기에 테무진을 암살하려던 암살자는 바로 자신이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한다. 칭기스칸은 그의 용맹함과 강인함을 높이 보고 그에게 '강력하고 빠른 활'이라는 뜻의 '제베(몽골어: ᠵᠡᠪ ᠡ ǰebe, 한자: 哲別)'라고 이름을 임명한 후, 비록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적군이지만, 자신의 휘하로 소속시켜도 절대 이적행위(利敵行爲)를 하지 않는 강인한 군인이 될 것이라 판단하여 제베를 휘하 장군으로 편입시켰다.


칭기스칸의 판단은 백발적중했다. 제베는 세계 정복전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죽는 날까지 칭기스칸에 대한 충성을 절대로 이적행위(利敵行爲)를 하지 않았고, 게다가 자신의 휘하 ‘수베게테이 바가토르(수베테이, 수부타이)’ 장군을 혹독하게 군사 훈련을 시켜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세계 정복자'로 배출시키기까지 했다.


이후 중앙아시아의 각종 전쟁터들에 하급 소년병으로 참전하게 된 테무진은, 강해지기 위해 수많은 전쟁터들을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철저하게 전쟁으로 단련된 어린 소년 테무진은 칼의 교훈을 깨달으며 이 때부터 드디어 '각성'하게 된다.




2. 전우(戰友), 자드란 자무카 연합군과의 전쟁



세계정세.jpg 칭기스칸이 전쟁하던 중앙아시아 유목 세계 지도. 출처 : [토크멘터리 전쟁史] 28부. 칭기즈칸의 정복전쟁


테무진이 청년으로 성장할 무렵, 중앙아시아의 유목 세계는 카마그 몽골 대 타타르 대 메르키트 대 케레이트 대 나이만이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군세들 중 타타르, 메르키트는 튀르크계 유목민족으로, 몽골족 유목 기병들과 가장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던 철천지 원수이자 적대 군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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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에, 메르키트족 유목 기병대들에게 테무진의 약혼인인 보르테(Börte)가 납치되는 사건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사실 이건 대단히 계획적인 테러 공격이었는데, 메르키트족 유목 기병대들은 원래 테무진의 부친 예수게이가 휘하 군대들을 이끌고 메르키트 여성 호엘룬을 납치해 데려간 일에 대한 복수를 위해 칼을 갈고 있다 보르테를 노린 것이었다. 남성우월주의 사상이 워낙 강한 몽골족 사회에서는 고대시대 때부터 여성을 일종의 전리품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대단히 강했는데, 게다가 무엇이든 약탈로 해결했던 중앙아시아 몽골대초원 유목 세계에서는 혼인도 ‘약탈혼’으로 해결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전쟁 기술이 강력한 유목민 군인이 정복 대상이 삼은 이민족 여성을 ‘약탈’해서 장가를 가는 것이 오직 강자들의 세계인 중앙아시아 세계의 기본 룰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현재까지도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일부 남아 있으며, 대표적으로 몽골-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그 약탈혼 문화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음이 외신 보도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어찌 됐건, 이때 테무진은 예수게이의 '군사적 혈맹(의형제 = 안다, Анда)'이었던 튀르크계 정확히는 키르기스계 케레이트 유목민족의 '토그릴(Wang Khan) 칸'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고, 조혼 직전에 선물한 시베리아 담비 가죽을 대가로 토그릴 칸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했다. 토그릴 칸은 테무진의 소년 시절, 그를 버리고 떠났던 보르지긴 군인들을 다시 집결시키는 데 영향을 행사하겠다고 맹세했고, 그 이전에 테무진에게 2만 명 규모의 병력을 지원했으며, 테무진은 어린 시절 때부터 같은 소년병으로 수많은 전쟁터들을 함께 누비며 고군분투한 끝에 전우(戰友)가 된, 최고의 ‘죽마고우(竹馬故友)’였던 몽골계 '자드란' 유목민족의 군사령관 ‘자드란 자무카(ᠵᠠᠮᠤᠭ ᠠ, Жамуха, Jamukha)’에게도 보르테 구출 작전에 연합 전선을 형성하도록 협력을 요청했다. 이 연합 작전에서 '테무진의 군대–케레이트 토그릴 칸의 군대–자드란 자무카의 군대''연합군'을 형성하여 '메르키트족의 군병대들을 빠르게 격멸'하고 보르테를 구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토그릴 칸 및 자드란 자무카와의 연합군 형성은 테무진이 전쟁터에서 그의 군대 지휘 능력과 전투 실력을 직접적으로 인정 받는 계기가 되면서 몽골계의 수많은 유목 민족 사회에서 그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복전쟁, 침략전쟁, 약탈전쟁, 군사 내전, 군사 반란, 그리고 암살과 피의 복수들이 난무하는 중앙아시아 유목세계에서는 영원한 전우도, 영원한 죽마고우도 없었다. 이후 수많은 전쟁에서 연전연승하며 승승장구하자 중앙아시아 세계의 수많은 몽골계 유목 군대들이 차례로 테무진 휘하에 소속되었고, 그로 인해 군세가 빠르게 강대해졌다. 군대 내 명성이 강화되자 튀르크계 유목민족인 케레이트족의 토그릴 칸은 물론, 테무진이 소년병 시절부터 수많은 전쟁터를 함께 누빈 최고의 전우인 자드란 자무카조차 칼을 뽑아 테무진을 죽이기 위해 토그릴 칸과 군대를 연합하게 되었다. 즉, 메르키트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연합했던 자드란 자무카와 토그릴 칸이 이제는 테무진을 전사시키기 위해 군대를 연합한 것이다.


게다가 테무진의 충성파 군인 포섭 방식과 막강한 군세 팽창은 기존의 군인 귀족층들의 강력한 반발까지 불러왔다. 이윽고 1201년, 자드란 자무카 휘하 군대와 케레이트, 타타르, 거기에 적대 군 세력이던 메르키트까지도 연합하여 테무진 암살을 논의하기 위한 연합 군사 회의인 '쿠릴타이(ᠻᠦᠷᠦᠯᠳᠠᠶ, Хуралдай, Quriltai)'를 소집하고, 즉각 자무카를 새 황제(칸)로 선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군사 회의에서 황제로 추대된 자무카는 테무진과 완전히 군사적 대립을 시작했고, 곧 메르키트–케레이트 연합군과 테무진 연합군 사이에 치열한 대규모 전쟁이 연달아 발발했다.


1203년 초, 케레이트–나이만 연합군이 새벽에 은밀히 테무진의 군대에 암살, 기습공격을 개시하며 ‘굽타산의 깃발 전투’의 서막이 시작됐다. 때마침 그때 보초병 몇몇이 적군들을 발견하고 즉시 테무진에게 보고하면서, 테무진과 휘하 군대는 모조리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으로 연합군에 포위되어 길목이 차단당하자, 테무진은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전투를 개시되었다.




3. 발주나 호수의 피의 맹약



전투가 속행된 상황에서 테무진은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휘하 군대 소속의 직할 군인들 중 중앙아시아 몽골-튀르크계 만기트(ᠮᠠᠩᠭᠤᠳ, Мангуд)족 군인 ‘기르다르’에게 적군대들을 돌파하여 굽타산 언덕 꼭대기에 테무진 군대의 '군기(軍技)'를 꽂으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몽골대초원 같은 중앙아시아에는 지형의 기복이 거의 없고, 모두 기병전으로 전투가 펼쳐지므로 평지에서는 승패를 파악하기 어렵다. 특히 테무진의 군대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이 전투에서, 만약 전략적 후퇴 명령이 하달될 가능성이 있었다면 휘하 군인들은 더욱 혼란에 빠질 것이었다. 그러나 군기를 언덕 위에 꽂음으로써 '절대 후퇴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는 명령을 시각적으로 하달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르다르가 언덕에 군기를 꽂자, 케레이트–나이만 연합군은 그 신호의 뜻을 단번에 파악했는지 언덕으로 돌격했다. 이에 기르다르를 포함한 몇몇 테무진 휘하 군인이 언덕을 사수(死守)하기 위한 필사적인 사수전(死守戰)을 벌였다. 이런 최악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언덕의 꼭대기에 '군기(軍技)'를 꽂으라고 명령을 하달한 테무진의 날카로운 순간 판단력, 몽골족은 아니지만 테무진의 명령 하나를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 죽음까지 각오한 휘하 충성 군인의 결의, 또한 군기를 포착하고 끝까지 맹렬하게 전투에 임한 몽골족 군인들.

중앙아시아의 모든 유목세력들이 연합하여 기습공격하였기 때문에 이 굽타산의 전투에서 테무진의 몽골족 군대는 대군의 총공세 앞에, 그것도 새벽의 예상치 못한 기습공격이라 끝끝내 비록 이 전투에서 테무진의 군대들은 완전한 승리는 거두지 못했으나, 막강한 전우애와 대단한 가능성을 가져왔다. 그리고 곧 이는 테무진 군대의 엄청난 전술적 각성의 계기가 되었다.


그 후로도 테무진과 그의 군대는 항상 소수였고, 늘 대군의 추격을 받는 처지였기에 테무진은 ‘전술로 적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진리임을 뼈저리게 터득했다. 또 적은 군대 병력으로 항상 자신들보다 많은 규모의 적군들을 학살해야 됐으므로, 테무진의 군인들은 일당백의 실력을 갖추어야 했으며, 군인 개개인이 ‘세계 최강의 군인’이 되어야만 했다. 이는 칭기스칸이 되어 세계를 정복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칭기스칸과 후대 대칸들의 세계 정복을 보면, 몽골제국은 결코 군대 병력 규모에서 더 많지 않았다. 당시 몽골족의 총인구수가 100만 명도 채 안 되었고, 몽골군의 최정예 군대 병력은 약 30만 명이었다. 물론 전체 인구수가 5,000만 명이던 로마제국의 총 병력 규모가 30만 명이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30만 명 병력도 결코 적은 규모의 병력들은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30만 명으로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서는 한 군인이 수백, 수천, 수만의 적을 상대할 만큼 전투력과 전술적 숙련도를 갖춰야 했고, 그 결과 몽골제국군은 ‘세계 최강의 전술’들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세계 최강의 군인'으로 군림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술적 자각 이전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대시대, 중세시대 때에 ‘강한 군인’‘전술’ 개념이 도입된 나라는 거의 없었다. 그나마 고대 중국과 로마가 있긴 했으나, 정주문명 국가였던 그들의 전술 연구는 한계가 뚜렷했다. 고대 중국 당나라 시대 때의 정예 군대, 고대 로마의 잠깐의 정예화 또한 몽골제국의 세계 최정예화에 비하면 미미했으며, 당나라와 로마는 정주문명의 특성상 군대가 금방 무뎌지기 쉬웠다. 그로 인해 훈족의 로마 침략, 거란제국(요나라), 여진제국(금나라)의 침략으로 송나라가 무너진 것도 있고 말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전술적 각성을 통해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은 세계 역사상 최초로 ‘세계 최정예화 군인’을 등장시킨 제국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베게테이 바가토르 장군(수베테이, 수부타이)의 군사 전술들은 당시 몽골제국군의 군사 원정군들의 기본 전술이 되었고, 몽골제국군이 240년간 러시아를 식민지배하면서 그 전술이 동유럽 전역에 정착되었다. 이후 근대시대 때 소련이 이를 상비군 기본 교리로 채택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연구하여 전 세계 군사 전략에 통용되었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칭기스칸의 세계 정복의 전술만 알면 세계사의 모든 전술을 다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베트남 전쟁, 한국 6·25전쟁 참전용사이자 전투기 조종사, 공군 장교, 펜타곤 컨설턴트이자 군사 연구가인 '존 리처드 보이드(John Richard Boyd, 1927년 1월  3일  ~  1997년  3월  9일, 향년 70세)' ‘패턴스 오브 컨플릭트(Patterns of Conflict)’라는 군사 강연에서 몽골제국군의 기동전술을 핵심 예시로 들며, 「몽골제국군은 관측(O), 정향(O), 결정(D), 행동(A) 과정들을 적군보다 압도적으로 훨씬 더 빠르게 주도해 세계 최강의 군대로 군림했으며, 적군의 OODA 루프를 전부 다 파괴했다」고 분석하였고, 즉, 「몽골제국군처럼 군사 전술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만 있다면 전 세계의 모든 적군들을 다 이길 수 있다.」며, 또한 보이드는 「(몽골제국군처럼) 작은 소수의 군 병력만으로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확실한 장소에 군대들을 투입하라」


라는 전략적 대원칙을 강조했다. ‘세계 최강이었던 몽골제국군의 기병전술, 기동전술, 전격전술, 정복전술, 학살전술, 파괴전술, 돌격전술, 야전술, 포위 섬멸 전술, 초토화 전술, 대회전술, 추격전술, 기만전술, 군대 지휘 통솔 능력 등 전쟁의 핵심 요소’들을 모두 몽골제국군 전술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격전 자체가 중앙아시아 유목민에 의해 등장한 전술 개념이기도 하고 말이다.




4. 차키르마우트 전쟁 승전과 칭기스칸의 몽골제국 선포



테무진은 자신들의 19명의 군사령관들을 이끌고 발주나 호수로 데려갔다. 그리고 19명의 군사령관들은 테무진에게 절대적 충성을 피로 맹세하였으며, 테무진도 자신이 앞선 굽타산의 깃발 전투에서 보여줬듯이 아무리 불리한 전투를 하게 될지라도 휘하 군인들과 함께 전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군인을 위해서 같이 전사할 각오를 강화한 '발주나 호수의 피의 맹약(Baljuna Covenant)'을 맺고 이들은 서로에게 절대 칼을 겨누지 않기로 맹세했다. 이렇게 발주나에서 세계적으로 추운 시베리아 겨울을 다같이 이겨낸 후 테무진과 19명의 전사들은 각성하여 주변 수많은 유목민족들에게 자신의 결의를 선포했고, 그러면서 더욱 더 수많은 군세들이 합류했다. 군세가 재결집한 테무진은 1203년 가을에 강력한 보복작전을 단행하여 튀르크계 유목민족 케레이트족의 군대들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이 전쟁의 완전한 승전으로 테무진은 튀르크계 케레이트의 군사 지배자 토그릴 칸을 축출하고 중앙아시아 몽골대초원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마침내 1204년, 테무진이 칭기스칸이 되기 위한 중앙아시아의 마지막 최종 결전인 '차키르마우트 전투(Наху гүний тулалдаан)'가 발발하면서 테무진은 군대를 거병(擧兵)하여 진격에 나섰다. 이 중앙아시아의 최종 결전에서 테무진은 나이만족의 군사 지도자 타양 칸과 자드란 자무카가 이끄는 대연합군들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전쟁은 엄청나게 맹렬했으며, 적군의 군대장인 타양 칸은 전쟁 중 전사했으며, 테무진의 어린 소년 시절 때부터 전우이자 죽마고우였던 자드란 자무카는 테무진의 군대에 의해 전쟁 포로로 잡혀 참수형되었다. 이로써 중앙아시아의 모든 군대 세력들인 메르키트-케레이트-나이만-자무카 등등등의 모든 막강한 몽골-튀르크계 유목 부족들은 모두 테무진에게 정복당하면서 몽골대초원은 완전히 하나로 '통일'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206년, 테무진은 몽골대초원 전체의 대군사회의인 '쿠릴타이(ᠻᠦᠷᠦᠯᠳᠠᠶ, Хуралдай, Quriltai)'를 소집하여, 자신 스스로에게 '세계의 황제', '세계의 대제'이자 '대칸(대제, 大帝)'인 '칭기스칸(Chinggis Khan)'으로 군림한다. 이로써 테무진은 명실상부한 몽골제국의 군사 대제로 등극했고, 중앙아시아의 모든 유목민족들 간의 귀족, 혈연 질서들을 초월한 공정한 '군법(자사크)'를 기본으로 몽골제국의 군사 개혁을 단행했다.


이제는 기존의 귀족 계급이든, 혈연이든 상관없이 오로지 '전쟁'만 잘하는 막강한 군인이면 몽골제국의 최고위층 군사령관, 장군, 귀족이 될 수 있는 영예와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중앙아시아의 유목세계를 통일한 칭기스칸은 본격적으로 '세계 정복'을 전개했다.






가문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 때 부친을 잃고


유목 부족에서 쫓겨났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작은 국가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었고


군인으로만 십만. 백성은 소년, 노인까지 합쳐


200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가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모두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스칸이 되었다.




- 칭기스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