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몽골제국군의 세계 정복의 전초전, 서하(Great Xia) 정복사
13세기 초, 세계 정복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에 앞서 칭기스칸의 몽골제국군은 군사적 목적상 당시 전 세계의 대무역로(貿易路)인 ‘실크로드’부터 완전히 장악해야 된다고 빠르게 군사적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를 위해 실크로드로 인해 세계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금나라 정복'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부터 금나라의 군사 동맹국이자 실크로드 상의 주요 국가였던, 1038년 티베트 계열 탕구트족 군인들이 송나라 서북쪽에 건설한 '서하(西夏) 제국'부터 먼저 확실히 정복해 ‘칭기스칸의 세계 정복로’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최전성기 당시 헬란산 서부의 요새화된 '서하(西夏) 제국'은 주변국들을 침략해 '세폐(歲幣)'를 수탈할 정도로 강력한 대제국이었지만, 역시나 세계 최강의 몽골제국군답게 서하 제국을 순식간에 정복해 버렸다.
몽골제국군의 본격적인 제1차 서하 제국 침략은 1209년에 전개되었으나, 그 이전에도 여러 차례 국경을 넘어 서하 제국을 침탈하여 초토화시키고 파괴한 적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1205년, 칭기스칸이 몽골제국을 선포하기 전, 중앙아시아의 패권 전쟁 중에 테무진 장군의 기병대들이 케레이트를 정복하면서 케레이트의 총사령관 토그릴 칸의 태자가 서하 제국으로 피신하여 망명을 요청하자, 테무진은 이를 명분 삼아 서하 제국을 침략해 국방 요새 '리킬리'를 파괴하고 수차례 약탈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듬해 1206년 세계를 정복할 '몽골제국'을 선포한 테무진은 군사 회의 '쿠릴타이'를 소집 대칸 ‘칭기스칸’으로 등극한 직후, 본격적인 서하 제국 정복을 계획하며 침탈을 계속했다. 이렇듯 계속해서 몽골제국군들이 서하 군대들을 대량 학살하면서 서하 제국 내부에서는 황제의 전쟁 실력을 의심하던 사촌 '리안추안(李安?) 장군'의 군사 쿠데타가 발발했고, 황위를 찬탈하여 '환종(桓宗)'을 강제 폐위시킨 후 '양종(襄宗)'이 즉위하는 등 대혼란의 정권교체기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이후에도 몽골제국군들은 1207년까지 오르도스 평원을 비롯해 황하 연안의 요새 도시 '우하이(烏海)성'을 함락하며 서하 제국 전역을 초토화시키는 다수의 대규모 침탈전을 전개했다. 물론, 아무리 세계 최강의 군대인 몽골제국군들이라 할지라도 금나라는 당시 전 세계 초강대국으로, 단번에 신속하게 정복하기에는 부담이 있었다. 근대 해양 패권국가인 '대영제국'이 '러시아 제국'이나 '나치 독일', '소련'을 정복하기 힘든 것이나, 오늘날 패권국 '미국'이 '러시아'를 정복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금나라는 군사 제도 ‘맹안모극제(猛安謀克, 여진어 : Miŋgan Moumukə)’를 기반으로 한 잘 훈련된 철갑기병대 '철부도(鐵浮屠)'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게다가 '1206년 '때의 '몽골제국'은 이제 갓 칭기스칸이 중앙아시아에서 통일을 완수하고 등장한 '정복 제국'이었기 때문에, 세계 초강대국 금나라를 정복하기에 앞서 준비 운동 차원에서 서하 제국부터 먼저 정복하기로 결정내린 것이다.
1209년, 칭기스칸이 이끄는 몽골제국의 군사 원정대의 제1차 서하 원정이 본격적으로 개시됐다. 서하 제국은 최정예 상비군으로 총병력 30만 이상의 대군들과 단단한 방어시설들까지 건설해 막강한 외세의 침략에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으나, 역시 세계 최강의 군대인 몽골제국군의 침략에서 버티기엔 불가능했다.
몽골제국군은 서하 제국 정복전쟁 중에 사로잡은 서하군 전쟁 포로들을 화살받이로 삼아 소모시키거나 '해자(垓子, moat)' 메우기에 투입해 해자를 메운 후 성벽을 파괴하고, 대학살을 자행하며 수도 '흥경성(興慶城)'까지 빠르게 정복해 들어갔다.
결국 몽골제국군이 수도까지 빠르게 진격하자, 멸망 직전의 위기에 처한 서하 제국의 양종 황제는 가장 강력한 군사 동맹국인 금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했으나 곧바로 거절당했다. 몽골제국군은 '헬란산(賀蘭山) 고갯길'의 최전선 국경 요충지인 '기문(祁門) 요새'를 공격하면서, 유인 작전으로 서하의 요새 방어군들을 밖으로 끌어내 순식간에 전멸시켰다. 요새를 빠르게 함락한 칭기스칸의 군사 원정대들은 15만 명 규모의 대군이 방어하는 '흥경성(興慶城)'으로 곧장 진격했다.
1209년 봄부터 본격화된 공성전에서, 칭기스칸 휘하의 사준사구들 중 하나에 소속된 쿠빌라이 장군은 흥경성을 초토화하기 위해 '수공(水攻) 작전'을 병행할 것을 작전 건의(作戰 建議)했고, 칭기스칸은 쿠빌라이 장군이 제안한 작전이 실현 가능하다고 판단해 즉각 실행에 착수한다. 칭기스칸이 수공 작전을 전개하면서 흥경성 인근 '황하(黃河) 강'의 제방을 쌓아 강줄기를 틀자 성벽 쪽으로 침투한 강으로 인해 성 주변의 평지들은 완전히 침식, 파괴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나라의 지원군 파병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자, 황제 양종은 1210년 초에 마침내 완전 항복을 결심하면서, 서하 제국은 그렇게 세계를 정복한 몽골제국의 첫 번째 군사 정복지이자 군사 식민지로 전락했고, 양종은 매년 '군사용 낙타, 군용매, 명주' 등등등의 공물들을 몽골제국에게 바치고 황족인 차카(Chaka)를 인질로 바치며 몽골제국에 군사적인 절대적 충성을 맹세했다.
이로써 칭기스칸은 '서하 제국을 정복해 식민지화함으로써 금나라의 군사 동맹을 제거하고, 세계 대무역로이자 전 세계적인 군사 전략적 요충지 실크로드를 완전히 확보해 제국의 군사적 재정 수입을 증대시킨다'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한 후 금나라 정복 전쟁에 돌입했다.
1210년까지 서하 제국은 몽골제국의 군사 식민지로 전락했으나 그나마 완전한 멸망만은 면할 수 있었고, 또한 ‘몽골제국의 군사 식민지 군대’로 전락한 '서하 제국의 군대'는 금나라 정복 전쟁에 군사 동원되기도 했다.
특히 1210년 몽골제국의 군사 명령에 따라 서하 제국은 금나라 침공을 감행해야 됐으며, 1211년부터는 몽골제국군의 금나라 정복 전쟁에도 투입되었으나, 칭기스칸이 서하 제국에 몽골제국의 주둔군인들만 주둔시킨 후 칭기스칸의 군사 원정대들이 호라즘 제국을 정복하느라 바쁜 틈에 독립 반란을 일으키면서 이 첩보를 빠르게 입수한 칭기스칸이 격노해 '호라즘 제국(خوارزمشاهیان)'을 순식간에 정복한 후 서하 제국까지도 영원히 지구상에서 삭제시키고 만다.
애초에 칭기스칸은 금나라를 정복하기 전에 ‘준비 운동’으로 서하 제국을 정복한 것이었기에 독립 반란만 일으키지만 않았어도 서하 제국은 군사 식민지로나마 존속은 이어갈 수 있었을텐데 결국 독립 반란을 일으키면서 서하 제국은 그렇게 영원히 세계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