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군사 최강대국 대몽골제국군의 세계 정복사 - 3

3. 몽골제국군의 세계 초강대국 금나라(大金) 정복전쟁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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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년 가을, 최선봉대장인 칭기스칸은 약 7만 5천 병력의 몽골제국군들을 이끌고 서하 제국을 침략하여 서하 제국의 군대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기 시작했다. 당시 몽골제국의 침략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던 서하 제국의 군대들은 총 10만 명 이상의 병력들로 중갑기병대 및 중갑보병대(장창병과 석궁병)로 중원을 채우고, 양측에는 각각 2만 5천 병력의 경갑기병대를 배치한 중무장 진형으로 방어했다.


게다가 칭기스칸은 빠르고 날렵한 몽골제국의 경갑기병대들을 이끌고 적군 방진의 측면을 선회하여 집중 공격함으로써 보병대의 진형을 완전히 파괴하고 진격로를 사전에 차단했다. 이후 몽골제국군의 돌격기병대들이 일제히 측·후면에서 돌격하여 서하 제국의 기병대들을 전부 다 학살하자, 나머지 고립된 서하 제국의 보병대들은 대학살을 당하며 퇴각하기 시작했다. 칭기스칸은 서하 제국의 주력 부대들을 전부 다 학살한 후 곧바로 서하 제국의 수도성까지 진격했다.


계속하여, 칭기스칸의 군사 원정대에게 학살당하고 수공(水攻) 작전에도 휘말린 서하 제국의 군대는 결국 포위되어 항복을 선언했다. 1210년 초, 당시 서하 제국의 황제 이안환(李安撻)은 황족 사카를 전쟁 포로로, 그 외 군용 마(馬), 군사용 낙타, 명주 등등등 막대한 조공품들과 세금들을 매년 몽골제국에게 바쳐야 됐다. 이로써 서하 제국은 몽골제국의 공식적인 군사 식민지로 전락했다.






세계 최강의 군대 몽골제국군의 초강대국 금나라 침략



1206년,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직후 몽골 제국을 건국한 테무진은 군사 회의 '쿠릴타이'에서 대칸 '칭기스칸(ᠴᠢᠩᠭᠢᠰ ᠬᠠᠭᠠᠨ, Чингис хаан, 成吉思汗, 1162년~1227년)'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세계 정복에 착수하며 중국 북방의 금나라와 서하 제국 정복을 계획했습니다. 1210년, 칭기스칸은 서하(西夏) 제국을 빠르게 정복하여 군사적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1206년 중앙아시아를 정복한 직후, 몽골제국을 선포한 테무진은 군사 회의 ‘쿠릴타이’를 소집해 군벌 세력들의 막강한 추대를 기반으로 대칸 ‘칭기스칸(ᠴᠢᠩᠭᠢᠰ ᠬᠠᠭᠠᠨ, Чингис хаан, 成吉思汗, 1162년 ~ 1227년)’으로 등극했고, 빠르게 세계 정복에 착수하여 중국 북방의 금나라와 서하 제국 정복을 계획했다. 곧바로 1210년, 칭기스칸은 빠르게 서하(西夏) 제국을 빠르게 정복하면서 군사 식민지로 삼는다.


한편 금나라에서는 1208년 12월 29일, 금나라의 제6대 황제 ‘장종(章宗)’이 40세로 사망하자마자, 기회를 노렸다는듯이 그해 바로 삼촌인 ‘위소왕(衛紹王) 완안윤제(完顔允濟, 영제)’가 제7대 황제로 즉위하였고, 1210년 말기, 금나라의 새로운 제7대 황제 완안윤제(完顏永濟, 영제)는 곧바로 칭기스칸에게 군신 관계를 요구하는 사신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위소왕의 전쟁 실력을 잘 알고 있던 칭기스칸은 격노하며저딴 나약한 놈이 황제가 되다니, 금나라도 이제 죽었다.며 사신단에게 공격적인 협박을 가했고, 이 소식을 전령병을 통해 빠르게 알게 된 위소왕은 분노하면서도 혹시 모를 몽골제국군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오사보(烏沙堡)’ 등의 국경 요새들을 더욱 강화했다.


그리고 이듬해 1211년 초, 칭기스칸은 군사 회의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휘하 장군들을 집결시켜 ‘금(金)나라 정복’을 공식적으로 선언함과 동시에 빠르게 군사 작전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이미 서하 제국 정복이라는 준비운동을 완수한 몽골제국군은 90% 이상의 군인들이 금나라 정복 작전에 참전했고, 마침내 12만 이상 병력의 군사 원정대가 조직되었다. 칭기스칸에게 금나라 정복은 단순히 '세계 정복로(世界 征服路) 확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금나라는 칭기스칸의 부친 예수게이를 암살한 튀르크계 타타르족의 군부 세력들을 군사적·기술적·경제적으로 계속해서 지원하면서 가뜩이나 고대시대 때부터 항상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 침략전쟁, 정복전쟁, 암살, 군사 내전, 군사 쿠데타들이 일상이었던 중앙아시아의 모든 유목민족들이 전쟁들을 더욱더 치열하게 끝없이 반복하게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쓰면서 조종하여 중앙아시아에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통일제국이 건국되는 것을 막아왔을 뿐만 아니라, 칭기스칸의 머나먼 몽골-튀르크계 선조들을 전쟁 포로로 잡아 목마에 태워 말뚝으로 꿰어 처형한 철천지 원수들이었기 때문에, 칭기스칸에게 금나라는 지구상에서 반드시 말살해야 될 주적이었다.


그렇게 1211년, 서하 제국 정복을 빠르게 완수한 세계 최강의 군대 몽골제국군은 약 12만 병력의 최정예기병대(披甲鐵騎)들을 주축으로 한, 당시 세계에서 가장 고도로 잘 훈련된 경갑기병대들을 주력군으로 삼아 금나라 정복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로써 ‘세계 최강의 군대 몽골제국군의 세계 초강대국 금나라 정복전쟁’이 마침내 개시되었다.


칭기스칸은 군사 원정대들을 여러 군대들로 '분견대(分遣隊)'로 작전상 임시 조직하여, 자신은 본대를 친히 이끌고 금나라의 수도성(首都城)을 향해 진격했고, 서하 제국을 빠르게 정복하였으며, 훗날 호라즘 제국, 유럽의 조지아 왕국, 러시아, 폴란드 왕국, 헝가리 왕국 등등등을 정복한 세계 정복자 '수베게테이 바가토르(수부타이, ᠰᠥᠪᠡᠭᠡᠳᠡᠢ, Sübegedei)' 장군, 금나라, 서하 제국, 킵차크, 호라즘 제국 등등등을 정복한 수베게테이 바가토르 장군의 군 직속 상관이자 최고 사령관인 '제베(ᠵᠡᠪᠡ, 哲別)' 장군, 그리고 중국 대륙을 정복하고 식민지배한 군사 총독 '무칼리(ᠮᠣᠬᠣᠯᠢ, 木華黎)' 장군 등등의 먼 훗날 각자가 전부 다 세계를 정복한 세계 정복자들이 되는 장군들을 나머지 군대들의 군대장들로 임명하여 각기 다른 경로로 진격하여 최종적으로는 북서쪽으로 남진하여 각지 정복을 수행하도록 명령했다.


칭기스칸의 본대는 금나라 국경 요새를 방어 중인 군인들을 군용도검 신월도(偃月刀)로 베고, 계곡로(路)를 따라 베이징 방면으로 빠르게 진격하여, 사전에 첩보를 통해 입수한 대로 중앙아시아 에르게네쿤 출신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계열 두릴리킨 부족의 일파 ‘온기라트(Ongut)’ 부족의 군사 통치자인 튀르크계 ‘알라쿠시 티기인 코리 칸(Alaqush Tegin Quri, 중국 사서에는 阿剌兀思剔吉忽里로 기록)’을 기습 공격해 신속히 항복을 받아냈다. 그리고 알라쿠시에게 ‘오사보(烏沙堡)’ 등을 통과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하도록 협박한 칭기스칸은 몽골제국군의 주력 부대들을 이끌고 금나라 심장부로 빠르게 진격할 수 있었다.


알라쿠시는 본래 중앙아시아의 에르게네쿤 출신이었으나, 금나라가 온기라트를 정복한 후 황제가 하달한 군령(軍令)에 따라 만리장성 '북방 요새' 지대(음산산맥)를 경계(警戒)하는 임무를 강제로 수행하고 있었다. 1211년, 칭기스칸의 금나라 정복이 본격화되자, 칭기스칸은 금나라에 파견한 첩자들이 확보한 첩보들을 토대로 알라쿠시의 위치를 파악했고, 곧바로 기습 공격하여 항복을 받아낸 것이다. 북방 요새인 만리장성과 금나라 방어선의 지리를 완벽히 꿰뚫고 있던 알라쿠시는 칭기스칸의 몽골제국군 본대들이 신속하게 금나라의 방어선을 돌파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었다. 이는 세계 최강의 몽골제국군이 대회전에서 금나라의 주력군을 공격하기 전에 배후로 침투할 수 있게 한 결정적인 군사 전략적 이점을 가져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