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군사 최강대국 대몽골제국군의 세계 정복사 - 4

4. 몽골제국군의 세계 초강대국 금나라(大金) 정복전쟁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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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골제국군의 금나라 야호령 요새 정복



1211년, 금나라 황제 '위소왕(衛紹王) 완안윤제(完顔允濟, 영제)'는 칭기스칸이 이끄는 몽골제국군의 군사 원정대 주력군이 만리장성으로 빠르게 진격해 오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현재 중국 하북성(河北省)에 위치한 '장가구(张家口, 장자커우시[張家口市], 요새를 지킨 장군의 성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는 전설이 있음)'와 근접한 '완취안구(萬全區)'의 북서부 산악지대에 건설된 '야호령 요새(野狐嶺要塞)'에, 총 50만 병력의 지휘권을 가진 금나라군 총사령관 '완안승유(完顔承裕, 본명은 완안호사[完顔胡沙]이나 여진식 이름을 한자어로 음차[音借] 표기한 것으로 본명은 따로 있음) 장군'을 신속히 급파(急派)하였다. 본래 '야생 여우의 고개'라는 뜻을 지녔을 정도로 일부러 척박하고 험준한 산악지대에 건설한 '야호령'은 기병이 침투할 수 없게 설계된 천혜의 난공불락의 '전쟁 요새'였기에 고대시대 때부터 북방의 막강한 중앙아시아계 유목제국들이 정복하기 가장 어려운 요새였고, 금나라 황제도 그 점을 노려 완안승유 장군을 일부러 야호령에 급파한 것이다.


애초에 금나라도 만주의 유목민족 출신인 여진족의 대영웅 '완안 아구타(完顔阿骨打, 완옌 아구다)'가 거란제국과의 전쟁에서 승전한 후 중국 대륙 북부를 정복하고 건국한 대제국이었기 때문에 중앙아시아계 유목 기병대의 강점과 약점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금나라 황제가 한 가지 놓친 사실이 있었으니, 몽골제국군은 이전까지 등장한 북방의 모든 유목제국들 따위들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로 막강한, '세계 최강의 군대'였다는 점이다.


칭기스칸이 이끄는 몽골제국군의 군사 원정대 주력군이 속전속결로 진격하며 남진하자, 금나라군의 총사령관 '완안승유(完顔承裕)' 장군은 휘하의 야전 사령관 '완안규견(完顏糾堅, 혹은 완안구근[完顏九斤, 12세기~1211년])' 장군에게 신속히 군령을 하달하여, 금나라가 정복한 거란계 출신 하급 군인 '석말명안(石抹明安, 거란식 이름을 한자어로 음차[音借] 표기한 것으로 본명은 따로 있음)'을 몽골제국군의 군사 진영에 보내 칭기스칸을 암살하도록 했다. 그러나 석말명안은 몽골제국군의 군사 진영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투항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칭기스칸에게 야호령 요새의 치명적인 약점 등 군사 기밀들을 제공했다.


카트완 전투.jpg 1141년 9월 거란계 서요 제국군(카라 키타이 제국군)의 셀주크 제국 및 그 속국인 카라한 칸국 침략로(侵略路)


애초에 옛날에는 세계 초강대국으로 군림했던 거란제국(요나라)을 대영웅 완안 아구타가 이끄는 여진족 기병대들이 정복하여 멸망시키자, 거란제국 최후의 황제 '야율대석(耶律大石)'은 잔당 군인들을 이끌고 서아시아, 중앙아시아를 정복하여 튀르크어로는 '코즈 오르두(Koz Ordu)'로도 불리는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와 이식쿨호 사이에 위치한 '발라사군(튀르키예어 : Balasagun)'을 수도로 삼아 '서요(大遼, 대요, 카라 키타이) 제국'을 건국하였다. 당시 유럽 최강의 제국인 '동로마 제국(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말라즈기르트 전투(그리스어 : Μάχη του Μαντζικέρτ,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박살낼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한 '알프 아르슬란(آلپ ارسلان)'이 지휘했던 튀르크계 대제국 '셀주크 튀르크(Büyük Selçuklu İmparatorluğu) 제국'을 침략한 거란계의 서요 제국군에 의해 사마르칸트 북쪽의 '카트완 대평원'에서 '1141년 9일 카트완 전투(Battle of Qatwan, 중국어 : 卡特萬之戰)'이 일어났고 수많은 셀주크 제국군들을 대량 학살하며 서아시아·유럽·중동의 패권을 장악한 거란계 서요제국이었으나 동시대에 동북아시아에서는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패전 후 전쟁 포로로 잡힌 거란제국군 패잔병들은 금나라의 화살받이나 적군의 사령관을 암살하는 암살자, 적대국가의 군사 기밀을 캐내는 간첩 등으로 이용당하는 신세로 전락하여 서요제국의 패권적 영광에 참전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금나라의 전쟁 포로가 되어 화살받이거나 되거나 적군을 암살하는 암살자, 적군의 군사 기밀을 캐내는 간첩 등으로 소모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거란군 전쟁 포로들 입장에서는 금나라는 반드시 복수해야될 대상이었고 마침 그 기회가 찾아왔으니 석말명안은 오히려 칭기스칸의 몽골제국군의 주력군이 야호령 요새를 빠르게 정복할 수 있도록 야호령 요새에 대한 정보나 금나라 군대의 배치 정보 등등의 모든 군사 기밀까지 칭기스칸에게 전부 다 넘겼다.


그렇기에 금나라의 전쟁 포로가 되어 화살받이로 쓰이거나 적군의 사령관을 암살하는 암살자, 적대국가의 군사 기밀을 캐내는 간첩 등으로 소모되다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거란군 전쟁 포로들 입장에서는 금나라는 반드시 복수해야 될 철천지 원수였었고, 마침 그 기회가 찾아오자, 금나라 군대에 강제 편입된 거란계 하급 군인 '석말명안'은 오히려 칭기스칸에게 바로 투항하여 몽골제국군의 주력군이 야호령 요새를 빠르게 정복할 수 있도록 야호령 요새에 대한 정보들이나 금나라 군대의 배치 상황 등등의 모든 군사 기밀들을 칭기스칸에게 전부 넘겼다.


완안승유 장군은 야호령 요새 바깥의 도시들을 파괴하는 등으로 청야전술을 쓰거나 요새 바깥의 도시에 있는 군량미들을 모두 요새 안으로 옮기는 등으로 몽골제국군 특유의 현지 보급을 차단했다. 칭기스칸은 거용관 근처의 야호령 요새를 함락시키기 위한 군사 작전에 돌입해 사준사구 소속의 수베게테이 바가토르 장군, 제베 장군, 무칼리 장군들을 선봉장들로 임명해 국경요새 '오사보'를 공격하도록 군령을 하달했고, 완안승유 장군은 휘하 '독길사충(獨吉思忠)' 장군에게 군령을 하달해 이를 막도록 했으나 무적의 수베게테이 바가토르 장군, 제베 장군, 무칼리 장군은 순식간에 독길사충 군대를 학살한 후 빠르게 야호령 요새로 진격하자, 완안승유 장군은 모든 주력군들을 야호령 요새로 총 집결시켰다.


완안승유 장군은 야호령 요새 바깥의 도시들을 파괴하는 등 청야전술을 쓰거나, 요새 바깥의 도시에 있던 군량미들을 모두 요새 안으로 옮기는 등으로 몽골제국군의 현지 보급을 차단했다. 이에 칭기스칸은 거용관 근처의 야호령 요새를 빠르게 함락시키기 위한 군사 작전에 돌입하여, 사준사구 소속의 수베게테이 바가토르 장군, 제베 장군, 무칼리 장군들을 선봉장으로 임명해 국경 요새 '오사보'를 공격하도록 군령을 하달했다. 한편 금나라군의 총사령관 완안승유 장군은 휘하 '독길사충(獨吉思忠)' 장군에게 군령을 하달해 이를 막도록 했으나, 무적의 수베게테이 바가토르 장군, 제베 장군, 무칼리 장군은 순식간에 독길사충 군대를 빠르게 학살한 후 야호령 요새로 진격했다. 이렇게 전황(戰況)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자 결국 완안승유 장군은 모든 주력군들을 야호령 요새로 총집결시켰다.


세계최강대국대몽골제국.jpg 금나라의 돌격기병대 '철부도(괴자마)'


1211년 8월, 수베게테이 바가토르 장군·제베 장군·무칼리 장군 등을 선봉대장으로 임명하여 세계 최강의 몽골제국 경갑기병대 10만 병력들을 이끌고 야호령 요새로 진격 중이던 칭기스칸은, 험준한 산악 지대였기에 기병대가 침투하기 어려운 야호령 요새의 지리적 이점을 역이용하는 군사 작전을 계획하여, 휘하 사준사구들 중 사준(군마[軍馬])에 하나인 무칼리 장군에게 신속히 군령을 하달했다.


무칼리 장군의 기동대는 칭기스칸의 군령에 따라 '군마(軍馬)'에서 내려 도보로 산악 지형을 행군하여 우회했으며, 그때 칭기스칸의 몽골제국군의 주력군은 야호령 요새에 주둔한 금나라 군대의 중앙을 공격해 유인하여 밖으로 끌어낸 후, 배후에서 기습공격을 가해 전방·후방 양쪽에서 협공하는 '포위 섬멸전(包圍 殲滅戰)'인 '양동 작전(陽動作戰)'을 전개했다.


칭기스칸의 몽골제국군의 주력군과 무칼리 장군의 기동대는 금나라의 돌격기병대 '철부도' 25만 병력과 보병대 25만 병력, 총 50만 병력의 최정예 군단을 중앙·우익·좌익으로 각개 격파하여 전멸시켰고, 그 결과 최소 20만 명 이상의 병력을 대학살하는 세계사적 대전과(大戰果)를 기록했다. 이 야호령 전투는 사실상 몽골제국군의 금나라 정복의 분수령이 되는 일방적인 대학살극이기도 했다.


야호령 전투(野狐嶺戰鬪)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금나라군의 총사령관 완안승유 장군은 패잔병들을 집합시켜 인근 회하보까지 빠르게 퇴각하여 그곳에 주둔한 병력과 합류해 군대를 재정비했다. 그러나 칭기스칸의 몽골제국군의 주력군이 빠르게 남진하여 완안승유 장군의 잔존 병력들을 전부 다 대학살함으로써, 금나라의 최정예 군단 50만 병력은 전부 전멸했다.


그렇게 성과 요새, 대도시들을 파괴하는 초토화 전술을 전개하며 남진을 계속하던 몽골제국군은, 북쪽으로는 '연산'과 서쪽으로는 '태항산'이 연결된 협곡 지대 위에 건설되어 천혜의 난공불락 요새인 '만리장성(萬里長城)'이 지키는 금나라의 군사적 수도성 '중도대흥부(中都大興府, 중도[中都, 여진어 : ʤuŋ du], 현재의 베이징)'까지 진격하기 위해, 먼저 만리장성의 첫 번째 관문인 '거용관'부터 속전속결로 함락시키기로 결정했다. 참고로 '거용관'은 금나라의 군사적 수도성 '중도대흥부''만리장성'을 연결하는 중요한 관문이기도 했다.


기병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지면에 설치한 냉병기 때 최강의 지뢰 마름쇠는 철질려(鐵蒺藜)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금나라의 군사적 수도 '중도'를 지키는 최후의 요새인 '거용관'답게 거용관 앞 100리 지점까지 지면에 마름쇠들이 설치되어 있어 도저히 군마(軍馬)를 탄 기병이 진군하는 게 어렵게 됐고, 철두철미한 군사 작전에도 세계 최강이었던 정복자 칭기스칸은 미리 포섭(包攝)해둔 이슬람 상인 '자파르'에게 거용관으로 향하는 숲의 우회로(迂廻路)를 안내하라고 명령했고 선봉대장들 중 하나인 제베 장군의 기동대가 이슬람 상인 자파르의 길안내를 받아 이 침투로(浸透路)를 따라 거용관까지 빠르게 진격했다. 그리고 거용관 근처까지 도착후 매복하여 새벽 시간에 거용관의 경계병(警戒兵)들이 경계근무(警戒勤務)를 교대하는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거용관을 기습공격하여 함락시켰다.


거용관을 함락시키자마자 제베 장군의 기동대는 드넓은 화북 평야로 진출했고, 더 나아가 순식간에 금나라의 군사적 수도성 '중도대흥부(中都大興府)'까지 정찰하여 각지의 대규모 지원군들이 계속하여 중도대흥부로 집결하고 있다는 중요한 군사 기밀을 알아낸 뒤 만리장성 이북으로 잠시 말발굽을 돌렸다.


그와 동시에 칭기스칸의 아들들인 '주치 장군(그의 아들인 바투 칸[ᠪᠠᠲᠣ ᠬᠠᠨ, 불패의 군인이란 뜻의 이름]이 동유럽을 정복후 식민지배한 킵차크칸국을 건국, 주치 장군의 후예들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전신인 카자흐 칸국[Казахын Хант Улс]을 건국,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전신인 우즈베크 칸국[خانات ازبک]을 건국, 오스만 제국의 군사적 동맹국인 크림 칸국[Крымын ханлиг, قريم خانلغى‎]을 건국)', '오고타이 장군(세계 최강대국 대몽골제국의 2번째 대칸)', '차가타이 장군(중앙아시아, 서아시아를 정복하여 특히 티무르 제국의 근원이 되는 차가타이 칸국을 건국)'은 각각 선봉대들을 이끌고 서경 인근의 전쟁 요새들을 전부 다 파괴하였다. 또한 몽골제국군이 만리장성 이북의 군마 목초지들을 기습 공격해 군마(軍馬)들을 약탈하면서 기병 전력이 훨씬 증강되었다.


이후 칭기스칸은 금나라 본대를 한 번에 전멸시키기 위해 '산시성 대평원(山西省大平原)'으로 총집결시키도록 유인 작전을 전개해 군사적으로 유도했고, 마침내 칭기스칸의 몽골제국군의 주력군 대 금나라 본대 간의 진검승부인 '대회전(大會戰)'이 전개되었다.


산시성 대평원에서 전개되는 대회전에서 몽골제국군의 경갑기병대들이 선제 공격을 하면서 일제 사격을 가해 금나라 보병대를 격멸시켰고, 금나라는 당시 세계적으로 막강한 기병대였던 돌격기병대 '철부도'를 출격시켜 이에 대응했다. 귀족 군인들로만 조직된 금나라의 최강 정예 특수부대인 '철부도'는 마갑으로 철갑을 착용한 '군마(軍馬)'에 올라 긴 검신의 군용검과 장창을 들고 돌격하는 돌격기병대이자 중갑기병대로, 고구려의 개마무사와 같은 돌격형 기병대였기에 파괴력은 당시 세계적으로 막강했으나 기동력과 기병 돌격력은 기병 돌격을 주력 전술로 삼는 몽골제국군의 철갑기병대가 압도적으로 세계 최강이었다. 참고로 몽골제국군의 기병대는 금나라 정복전 때까지 경갑기병대가 주력을 차지했으나 유럽을 정복할 때부터는 주력 기병대가 금나라의 철부도보다 훨씬 더 견고하고 강인한 강철 갑옷과 마갑을 착용한 돌격기병대로 변경되었다.


'여진족 기병대 군인 1만 병력만 조직되도, 전 세계에 이길 제국이 없다.(女直兵若滿萬, 則不可敵, 금사 2권 본기제2[金史 卷二 本纪第二])'라는 기록에 등장하는 여진족이 바로 '철부도'인 셈이었다. 그만큼 돌격기병대 철부도는 금나라의 모든 부들대 중 가장 최강의 특수부대였다.


칭기스칸은 휘하 몽골제국군 철갑기병대들을 이끌고 기병 돌격을 감행해 철부도를 공략하는 한편, 대회전 개시 전에 미리 수베게테이 바가토르 장군의 3만 기병으로 조직된 기동대를 1군·2군·3군으로 나눠 우회로를 따라 진격시켜 산시성 대평원을 크게 우회하여 칭기스칸의 몽골제국군 철갑기병대가 금나라의 철부도와 격돌하는 순간, 시간차를 두고 금나라 군대의 배후를 기습 공격하라는 군령을 하달했다. 그리고 정오가 되자 갑자기 배후를 기습 공격한 수베게테이 바가토르 장군의 3면 기병의 기동대에 의해 금나라 군대는 야호령 전투 때처럼 중앙·우익·좌익에서 사방으로 각개 격파당하며 순식간에 전멸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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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거란계 군인들의 이적행위와 동요국의 군사 반란



몽골제국군이 만리장성 이북의 군마 목초지들을 기습 공격하여 군마(軍馬)들을 모조리 약탈해 가자, 금나라 황제 위소왕은 여진족 기병대들이 정복한 거란족들을 약탈해 군마(軍馬)들을 강압적으로 징수하기 시작했다. 칭기스칸은 자신들이 금나라의 군마들을 약탈할 경우 금나라가 거란족의 군마들을 강압적으로 징수할 것을 미리 철두철미하게 계산 하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칭기스칸의 몽골제국군의 주력군대가 금나라를 계속 정복해 갈 때 일부 군인들을 요동 지역에 파병하여 금나라 황제의 폭력적인 이민족 통치 행위에 분노하여 당장이라도 군사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계획 중이던 거란족 유목민들을 포섭해 몽골제국의 간첩으로 삼으려는 회유책을 함께 구사했다.


게다가 금나라는 거란족뿐만 아니라 한족 등의 수많은 이민족들도 피지배층으로 지배 하에 두고 있었고, 황제 위소왕은 특히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들을 가장 강압적으로 통치하면서 거란족 기병들에게 지배층의 권한을 부여하는 한편 기존 권한을 축소하는 양날의 검 같은 통치 정책을 행했다. 이에 거란족 유목민들은 지배층으로 군림했음에도 권한이 축소된 데 분노했으며, 황제 위소왕은 위소왕대로 감히 황제인 자신에게 이적행위(利敵行爲)를 하고 몽골제국 군인들에게 포섭당한 거란족 유목민들에게 분노해 그들을 적군과 공모(共謀)했다는 '군법위반(軍法違反罪)'으로 부족장을 참수형에 처하고 휘하 거란족 유목민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등 이전보다 훨씬 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통치 정책을 펴 거란족 유목민들에게 중국·북한보다 훨씬 더 고강도의 감시와 탄압을 가했다.


이에 가장 분노가 폭발한 군인은 거란제국(요나라)의 황족 출신의 '야율유가 장군(耶律留哥, 1165년 ~ 1220년)'으로, 그는 금나라 군인들의 서슬퍼런 감시를 피해 거란계 군인들을 조직하여 만주의 '융안'으로 대이동을 감행하여 '동요국(東遼國)'을 건국하고 사신단까지 파견해 칭기스칸에게 앞으로 모든 협동 작전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국제적으로 선포했다. 이에 격노한 금나라 황제 위소왕은 당시 막강한 군벌인 포선만노 장군을 60만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완안승유 장군의 군대와 연합해 동요국을 침공해 멸망시키라는 군령을 하달했으나, 칭기스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소규모 기동대를 요동 지역에 파병해 금나라가 탈환하지 못하도록 동요국에 강력하게 군사 개입했다.


그렇게 금나라 군대와 거란군이 함평부 근처에서 격돌할 때 칭기스칸이 파병한 소규모 기동대에 의해 금나라 군대는 완전히 패전했고 완안승유 장군은 퇴각했다. 그러나 포선만노 장군은 금나라 황제에게 이적행위(利敵行爲)를 하고 휘하 군인들을 이끌고 중국 동북부, 즉 만주 지역과 러시아의 연해주 및 시베리아 일부를 정복하여 '대진국(大眞國, 후에 대하국[大夏國]으로 국명 변경. 동하국[東夏國]이라고도 함)'을 건국했다.


물론 이렇게 세계 정복자 칭기스칸에게 적극 협력한 동요국이나 금나라에 대한 이적행위(利敵行爲)를 한 군인들이 시베리아에 건국한 동하국도 결국 몽골제국이 금나라를 정복한 이후 정복(몽골제국의 동요국[東遼國] 정복 : 1226년, 몽골제국의 동하국[東夏國] 정복 : 1233년)되어 몽골제국의 군사 식민지들로 전락했음을 보면, 중세시대의 세계 정세는 날카로운 칼날 위를 걷는 것처럼 냉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