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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나노입자 May 03. 2023

한 달에 한 번, 하고 싶은 거 해볼래요

어떻게든 흘러간다 : 우당탕탕 울릉도 일기

2023년 4월, 독도를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에 울릉도 여행을 가기로 했다.


1박 2일간의 일정. 1일 차, 배멀미도 안 하고 울릉도에 들어가고 독도 입도까지 하면서 첫 울릉도 여행은 완벽해 보였다.


날씨가 안 좋으면 배편이 결항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2일 차, 포항으로 나가려던 배가 결항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울릉도 여행은 2박 3일로 연장되었다.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채로 숙소를 잡으려니, 남아있는 방들은 없었고 산속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하나를 겨우 예약해 잠 잘 곳을 구했다. 다음날 묵호항으로 가는 배를 겨우 구했는데, 울릉도에 비바람이 불더니 게스트하우스의 창문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았다. 설상가상, 오후 5시까지 출항여부도 확정이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입사한 지 2달도 안된 신입사원이었는데, 저 배까지 결항되면 다음날 출근을 못하는 상황이라 게스트하우스에서 밥도 못 먹고 배표만 알아보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언니, 오빠들께서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상사한테 문자라도 보내라고 해서 탁상에서 진짜 벌벌 떨면서 문자를 보냈다.


연락 후 2시간 뒤, 다행히 출항 예정이라는 공지를 안내받았고 다음날 아침에 항구에 갈 택시도 예약을 했다. 날이 밝고, 택시 기사님께서 항구에 데려다주시면서 정상 출항할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셔서 편안한 마음으로 배에 탈 생각 밖에 없었다.


이게 웬일. 9시 40분 출항 배였는데 9시에 탑승을 못하게 하더라. 알고 보니, 파고 높이가 출항 가능 기준보다 높아서 30분 후의 파고 높이를 확인 후 출항 여부를 결정한다고 하셨다.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울릉도 주민분께서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해서 당연히 믿고 있었는데, 너무 생각이 짧았던 것이다. 급하게 다른 항구로 가는 배표들에 예약을 걸어두었지만, 모두 대기자 명단이 긴 상태였다.

불안한 30분 뒤, 여전히 파고 높이가 높아 출항 불가 상태로, 30분 정도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대학교 합격 조회의 순간보다, 회사 최종 합격보다 무서웠던 30분이었다.


기적적으로, 30분 뒤 파고 높이가 출항 가능 기준 경계에 도달하였고 1시간 지연이 되었지만 무사히 출항하였다.

애증의 씨스타 1호

이제는 배가 떴으니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다. 런데 갑자기 도착 1시간 전, 안내방송이 울렸다.


" 동해 중부 앞바다에 풍량주의보가 발휘되어, 우리 배는 묵호항이 아닌 강릉항으로 도착지를 변경합니다.. "


이런 일도 있구나! 물론 묵호항까지 가는 버스를 승선사에서 제공해 주지만, 출발이 지연된 배와 멀어진 도착 항구 그리고 항구 간의 다시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묵호역에 예약한 KTX는 못 타는 시간이었다. KTX를 예상 배 도착시간보다 넉넉하게 잡았는데도 시간이 부족할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지, KTX를 취소하고 다시 끊으려는데 아뿔싸. 바다 한가운데서 통신이 잡히지 않아 아무것도 못하고 배는 높은 파고로 인해 심하게 흔들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멀미로 인해 누워있다.


이쯤 되니, 이런 상황이 놀랍지도 않아서 신호 잡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KTX표를 취소하고 강릉역에서 다시 예매를 하려는데 일요일 강릉역에서 돌아가는 기차표가 하나도 안 남아있더라.


뭐 어쩌겠는가. 그냥 입석해서 갔다. 청량리역에서 내려서 회사 기숙사까지 돌아갔더니 피곤해서 정말 손가락 움직일 힘도 없었다.


그래도, 다치지 않고 잘 돌아왔으며, 걱정한 점과 다르게 무사히 출근도 하지 않았는가?!?


울릉도 여행 경험은, 인생에 있어서 약간의 고민을 덜게 해 주었다. 결국 내 인생에 있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내 의도와는 다른 일들. 예상하지 못한 일들. 인생은 이런 일들 천지이다!


그러니 이번 여행을 계기로 너무 깊게 생각하는 버릇을 줄이려고 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들만 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인데,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집착을 좀 줄이기를 노력해보려고 한다.


돌고 돌아서 결국은 무사히 도착한 것처럼, 인생에 있는 수많은 일들도 어떻게든 해결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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