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목원의 봄이 시작되었다.
▣봄이라고는 해도 아직은 포근한 봄바람보다는 꽃샘추위의 기세가 드세다. 옷깃을 여민채 종종 걷다가 문득 걸음을 멈춘다. 어디선가 달큼한 향기가 언뜻언뜻 코끝을 스쳐 지난다. 매화 향기다. 드디어 매화가 피는구나!
홍매화. 초록 바탕에 자잘한 꽃무늬가 있는 예쁜 테이블보가 덮인 협탁에서 티타임을 즐기는 그림을 꿈꾸게 한다. 파스스 잘 말린 꽃송이를 물에 띄우면 포롱포롱 봄이 춤춘다. 공기 틈새에 스민 꽃향은 몸과 마음을 나른하게 만든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봄의 왈츠'도 감기는 눈을 어쩌지는 못한다. 어느 새벽 통도사에서 이르게 핀 홍매를 담으며 느꼈던 떨림이 고스란히 나에게 소환되는 순간이다.
수양매화. 수양매화가 흐드러진 봄이다. 꽃을 볼 때는 매화나무, 열매를 볼 때는 매실나무라고 부른다. 즉 목적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다르고 나무를 관리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생강나무꽃. 대구수목원이 나의 작은 놀이터가 되고 그곳의 꽃들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담으면서 생강나무꽃을 알게 되었다. "산수유와 비슷한데 산수유는 아니고 무슨 꽃이지?" 이 의문을 시작으로 열심히 찾고 또 찾았던 꽃. 지금이야 스마트 렌즈로 사진을 찍으면 90%의 정확도로 꽃이름을 실시간 알려주지만 10년, 20년 전에는 사진을 찍어와서 네이버 검색창에 수많은 키워드를 바꿔가면서, 혹은 연관검색어를 랜덤 타고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꽃이름들을 찾아내곤 했었다.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꽃 앞에서 흔히 알고 있는 산수유라고 부르곤 한다. 내 입장에 본다면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잘못된 상식을 고쳐줄 수는 없다. 속상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니까. 빠르게 포기한다. 생강나무꽃은 꽃자루가 없고 원가지에 붙어 다닥다닥 피는 게 특징이다. 자생지도 공원 등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수유와 달리 야산에서 볼 수 있다. 이른 봄 산길을 걷다가 노란 꽃을 보다면 아마도 생강나무일 것이다. 잎이나 가지를 자른 단면에서 생강냄새가 난다는 생강나무의 꽃말은 수줍음, 사랑의 고백이다.
생강나무꽃과 산수유.
돌단풍. 고대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문화에서 이 꽃은 강한 애정과 변치 않는 우정을 상징해 왔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이 꽃은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나타내며 그래서 결혼식 같은 특별한 행사에 자주 사용된다고 한다. '희망', '강인한 생명력'이라는 꽃말은 아마 돌단풍의 생태환경에서 유래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름처럼 돌단풍은 바위틈에서 잘 자란다. 잎이 단풍잎을 닮았다고 돌단풍이라고 부른다. 돌틈에서 자라는 나리꽃처럼 예쁜 꽃이라고 '돌나리'라는 별칭도 있다. 연한 분홍의 꽃봉오리가 꽃이 피면서 흰색으로 변하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산수유꽃. 파란 하늘 위에 노란 산수유 꽃밭이 펼쳐졌다. 봄의 시작. 겨우내 지쳐있던 마음이 기지개를 켜고 마음에 묵은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한다. 그 모든 일련의 행위에 가작 적극적으로 임하는 주자는 산수유다. 노란색 옷을 입고 캐러멜 팝콘처럼 톡톡 봄보다 먼저 피어 봄을 알려준다.
사랑한다, 나는 사랑을 가졌다.
누군가에게 말해주긴 해야 했는데
마음 놓고 마래줄 사람이 없어
산수유꽃 옆에 와 무심코 중얼거린 소리
노란 산수유꽃이 외웠다가
따사로운 햇빛한테 들려주고
놀러 온 산새에게 들려주고
-곽재구.
미치광이풀. 꽃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치광이'다. 독성이 강하여 먹으면 미치광이가 된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꽃이 피면 자줏빛 종이 대롱대롱 매달린 모양이 꽤나 예쁘다. 노랑미치광이풀도 있다는데 아직 접하지는 못했다.
조팝꽃. 하얀 꽃송이들이 기척을 시작했다.
작은 소리를 크게 들을 줄 아는 사람
행복한 사람입니다.
나뭇가지에서 피어나는 작은 꽃잎을 보고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정용철.
히어리. 봄이면 서둘러서 봄을 시작하는 꽃 중 하나이다. '히어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잎이 나오기 전에 벌집처럼 생긴 꽃들이 올망졸망 매달려 핀다. 전라북도 지리산 지역에서 서식한다. '송광납판화'라고도 불리는데 맨 처음 송광사에서 이 나무가 발견되었고 꽃잎이 밀랍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꽃말은 애정이나 친밀감이다. 중국에서는 특히 사랑과 우정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른 봄 노랗게 피는 꽃도 앙증맞게 예쁘지만 잎이 특히 예쁜 히어리다.
꽃만큼 예쁜 히어리 잎.
처녀치마. 겨울에도 잎이 시들지 않는 몇 안 되는 초본류 중 하나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 처녀들이 입는 화려한 치마를 닮았다고 '처녀치마'라고 부른다는 설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일본에서 잎이 바닥에 사방으로 둥글게 퍼져 있는 모습이 일본 전통 치마와 비슷하다고 '조조하카마'를 직역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나는 전자에 비중을 두고 싶다. 일단 눈에 보이는 게 화려한 색감의 꽃이고 그 꽃이 핀 모양이 치마처럼 보인다. 꽃말은 '절제'이며 봄에 피는 보랏빛 야생화다. 언젠가는 이렇게 수목원이 아닌 야생에서 진정한 야생화로 보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대구수목원에서도 2006년 이후 처음이자 마지만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한 귀한 꽃이다.
-대구수목원은 나의 작은 놀이터.
-어느 해 3월 대구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