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수목원의 봄이 시작되었다.
깽깽이풀. 깽깽이풀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서도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비정상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깽깽이풀을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만큼 매혹적인 꽃이다. 모내기가 한창인 농사철에 깽깽이를 켜며 놀자고 유혹하듯 하늘거리며 꽃을 피운다고 바쁜 일손에 짜증 난 농민들이 천박스럽게 붙여준 이름이라는 재미있는 유래가 있다. 하늘하늘 연보랏빛 치마를 입은 아가씨 같은 꽃.
깽깽이풀은 꽃술이 보랏빛 꽃과 드물지만 이렇게 노란색인 꽃이 있다.
딱총나무. 줄기의 속이 독특하여 꺾으면 '딱!'하고 '총'소리가 나서 「딱총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재미있는 설도 있고, 딱총을 만드는 나무라는 뜻이기도 하다. 꽃은 5월에 흰색으로 피며, 열매는 9월에 붉게 익는다. 아직 꽃이 활짝 핀 모습도 초가을 붉게 익은 열매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인지 나는 딱총나무가 왠지 좋다. 좀 어이없지만 딱총나무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봄이면 딱총나무 곁을 서성이고 있다.
미선나무. 미선나무는 겨울에서 봄에 걸쳐 작고 향기로운 꽃을 피운다. 연분홍이나 흰색으로 핀다. 향기가 강해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꽃이다. 꽃말은 '영원한 사랑'이다. 미선나무라는 이름은 열매의 모양이 부채를 닮아 아름다운 부채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물이다. 미선나무는 흰색 꽃이 피는 것이 기본이다. 분홍색 꽃이 피면 분홍미선, 상아색 꽃이 피면 상아미선, 꽃받침이 연한 녹색이면 푸른미선, 열매 끝이 둥글게 피는 것을 둥근미선이라고 부른다. 미선나무의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솜나물. 대구수목원에서 가장 애정하는 꽃을 하나만 꼽으라면 어쩌면 이 솜나물일지도 모르겠다. 잠시 피었다가 사그라드는 꽃이어서 때를 잘 맞추지 못하면 몇 해 못 보고 지나기도 한다. 봄만 되면 하염없이 기다리게 된다. 향기가 강하고 특이해서 '솜향'이라고도 불린다. 바닥에 무릎을 굽히고 시선을 낮추어야만 볼 수 있는 꽃이다. 작지만 늘 제자리에서 피고 지는 꽃들은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대구수목원에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자작나무 숲이 있다. 비록 몇 그루 되지 않지만 그래도 갈 수 없는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보다 버스를 타고 잠시 달려가면 만날 수 있는 대구수목원 자작나무 작은 숲이 있어 좋다. 그렇지만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라고 불리는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언제든 꼭 한 번은 가 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다. 자작나무의 수피는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습기에 강하고 불에 잘 탄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나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대구수목원 자작나무 숲은 숲이라고 불리기에 어쩌면 민망할 만큼 작지만 그래도 종종 이름 없는 화가들의 이젤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길마가지나무. 은은한 향기를 가진 꽃이다. 진한 향기가 길을 가는 사람의 길을 막았다고 길마가지나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혹은 붉게 물드는 가을 열매가 소나 말의 등에 업는 길마를 닮았다고 그렇게 부른다고도 한다. '숲 속의 발레리나'라는 예쁜 별칭도 있는데 꽃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저절로 수긍하게 된다. 노란 토슈즈를 신고 사뿐사뿐거리는 발레리나 같다. 그래서 꽃말도 '소녀의 꿈'일지도 모르겠다.
뜰보리수나무.
할미꽃. 사연도 많고 사연도 애절한 할미꽃. 이름만으로도 먹먹해진다. 홀로 된 어머니가 세 딸에게 버림받고 죽어 꽃으로 피었다는 유래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할미꽃 중에서도 동강할미꽃은 미선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한국 특산종 중 하나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무게를 어쩌지 못해 고개를 떨군다. 할미꽃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채 애잔하게 봄을 살아간다.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간다는 말도 있던데 할미꽃 열매에 달린 너풀거리는 흰 털들은 세월에 맞서기 위해 익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노랑할미꽃. 순수함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꽃말은 '자유' 혹은 '기쁨'이다. 봄의 밝고 상쾌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꽃말이다. 노란색의 할미꽃은 짙은 붉은색 할미꽃과 달리 희귀하다. 어느 해 봄 이 노랑할미꽃 몇 송이를 본 것이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곧 다가올 이번 봄에는 혹시 볼 수 있으려나? 때맞춰 대구수목원에 가 봐야겠다.
크로커스. 봄에 피는 종을 크로커스라고 부르고 가을에 피는 꽃을 샤프란이라고 구분한다. 명확한 차이점은 샤프란은 크로커스에는 없는 길고 붉은 암술이 있다는 것이다.
3월 초, 꽃샘추위가 기승이던 이른 봄 한두 송이 피기 시작했던 복수초가 중순이 되면서 꽃밭을 만들었다. 생태환경이 변하는 건 야생뿐 아니라 수목원도 마찬가지인지 저렇게 개체수가 많았었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몇몇 송이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개암나무 암꽃. 꽃은 3월에 잎보다 먼저 핀다. 붉은 촉수를 가진 해변말미잘을 닮은 암꽃과 전혀 다른 모양의 수꽃이 한 나무에서 피는 것이 특징이다. 개암나무 열매는 흔히 헤이즐넛이라고 불리는 열매이다. 열매는 얼핏 보면 도토리를 닮았다. 도토리와 마찬가지로 다람쥐의 소중한 먹이가 된다. 다람쥐뿐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유용한 식재료로 쓰인다고 한다.
개암나무 수꽃.
국수나무.
제비꽃.
제비꽃은 결코 진달래를 부러워하지 않고
진달래는 결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정호승.
정호승 님의 「꽃들은 남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누군가를 부러워하지 않고 나의 페이스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의미한다. 더불어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되고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되고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듯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생은 없는 건데.. 우리는 왜 수없이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인생을 갉아먹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는 걸까요? 제비꽃은 비록 소박하지만 그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제비꽃이 가진 힘이다.
-대구수목원은 나의 작은 놀이터.
-어느 해 3월 대구수목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