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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력하는 나무늘보 Mar 27. 2023

편한 친구, 만만한 친구

선생님: 오늘도 수업 듣느라 고생했어. 잘 지냈니?

나: 네, 어제 체육 시간에 옆반과 한 피구 시합 너무 재밌었어요.

선생님: 다행이다. 투볼(two-ball) 피구로 규칙을 바꾼 건 처음인데, 친구들과 전략 잘 세워서 하더라.

나: 맞아요. 원래 하던 것보다 훨씬 흥미진진했어요. 아쉽게도 마지막에 이르러서 좋은 수비 전술을 생각해 냈어요. 날아오는 공을 잡고 있는 공으로 막으니 안정적으로 살아남더라고요.

선생님: 그걸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생각해 낸 것을 보고 조금 놀랐어.

나: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 용진이가 낸 전략이에요.

선생님: 그렇구나. 아무튼 다들 좋아한 것 같으니 기회 되면 다음에 또 해보자. 그때는 공격 전술도 한 번 생각해 봐. 공이 2개니까 재밌는 아이디어가 생각날 거야. 그러고 보니 체육 시간에 옆반 현우하고도 이야기하던데 원래 친한 사이였니?

나: 네, 그런데 용진이랑 옆반 현우 일로 고민이 있어요. 이건 제 입으로 말하자니 조금 쪽팔리는데, 상담 때라도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선생님의 조언도 구하고 싶고요.

선생님: 용기 내줘서 고마워. 걱정 말고 편하게 이야기해 봐.

친구 간에 친해지는 법

나: 저는 원래 현우와 용진이랑 예전부터 친구였어요. 그 둘은 얼마 전까지 서로 모르는 사이였고요. 은근 둘이 성격이 잘 맞을 것 같은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두 명이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셋이서 더 즐겁게 놀 수 있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죠.

선생님: 전혀 바보 같지 않은데? 오히려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멋있게만 느껴져.

나: 그런가요? 현우와 용진이가 친해지면 좋겠다는 것까지는 좋은 생각일 수 있죠. 그런데 그 방법을 잘 못 생각했어요. 원래 사람들은 친해질 때 공감대가 있으면 친해지기 쉽잖아요. 저는 그 둘의 공통점을 생각해 봤어요. 둘 다 저를 편하게 생각하고, 저를 놀리는 것을 좋아해요. 물론 악의적인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고 저도 웃으면서 받아줄 수 있는 선이었어요. 친구끼리 치는 장난 있잖아요,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셋이 있을 때, 일부로 저에게 장난치기 좋은 분위기를 유도했어요. 놀리기 좋게 바보 같은 표정도 지어보고, 오버 액션도 했죠.

선생님: 어떻게 보면 굳이 안 해도 되는 행동이지만,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거네. 반응은 예상대로 됐니?

나: 네, 둘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친해졌어요. 처음엔 제 의도대로 된 것 같아 내심 뿌듯하기도 했어요. 문제는 그 뒤로 셋이 모일 때마다 저에게 장난치는 거예요. 제가 원하지 않는 순간에도 저를 놀리는 거 있죠. 매번 웃으면서 받아주고 넘기니 점점 선을 넘어요. 약간 저를 만만하게 보는 느낌이에요. 차라리 둘이 몰랐을 때가 나았던 것 같아요. 행복은 나눌수록 배가 돼서 둘이 점점 친해지고, 불행은 나눌수록 반이 된다는데 다 거짓말인 것 같아요.

선생: 속상하겠다. 혹시 장난이 기분 나쁘다는 표현을 해봤니?

나: 안 했어요. 평상시에 잘 받아주다가 갑자기 화내면 이상하잖아요.

선생님: 네가 평상시에 잘 받아준 것이 아니라 참아 온 거 아닐까? 표현을 한다는 게 화를 내라는 뜻이 아니야. 화는 감정표현의 한 가지 방법일 뿐이지, 다른 방법도 많아. 아마 갑자기 화를 내면 상대방도 당황하고 싸우자는 뉘앙스로 해석될 수도 있어.

나: 부정적인 감정인데 화를 내지 않는다고요?

선생님: 부정적일수록 흥분하지 않고 말을 해야 해. 순간적으로 욱해서 실수할 수도 있거든. 이건 어려울 수 있어. 그래서 감정을 이야기해 보는 연습이 필요해.


감정 표현을 연습해 보아요.



선생님: 평소에 기분 나쁘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솔직히 표현하니?

나: 아니요. 보통 그냥 화제 전환하는 식으로 상황을 모면해요.

선생님: 왜 그렇게 하는지 말해줄 수 있니?

나: 아버지에게 들은 적 있는데,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할수록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안 좋아 진대요. 그래서 일부로 표현하지 않았고, 또 괜히 싸움으로 이어질 수도 있잖아요.

선생님: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지. 하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너만 일방적으로 참아주는 거야. 부정적인 말을 할수록 인상이 나쁘게 기억되는 것은 맞아, 그런데 그게 전혀 표현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야. 내면의 목소리를 계속 모른 척하면, 네 마음속이 스트레스, 답답함, 억울함 등으로 꽉 찰 수 있잖아. 외면하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 들어갈 곳이 없으면, 풍선 터지듯 터져버릴 수 있어.

나: 제가 딱 그랬어요. 혼자 책상 앞에 앉아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 적도 있고, 애꿎은 부모님한테 별거 아닌 일로 화냈어요. 부모님한테 소리 지를 게 아닌 거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도대체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요.

선생님: 사람은 어떻게든 응어리를 풀어야 하는데, 그 방법에 서툴러서 그런 것 같아. 일단은 생활 속 작은 일부터 하나씩 표현해서 익숙해져야지. 혹시 평소에 부탁에 거절 잘하니? 그러니까 사소한 거라도, 원하지 않는 건 확실하게 표현하는 편이니?

나: 아니요. 제가 그걸 정말 못해요. 교과서 빌려달라. 화장실 같이 가자. 지우개 빌려달라. 이런 말에 '귀찮다', '싫다',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라'처럼 말하고 싶은데 그냥 참아요. 이렇게 보니 저 거절 울렁증이라도 걸렸나 봐요. 정말 간단한 것조차도 거절할 용기가 없는 것 같네요. 

선생님: 그걸 스스로 인지했다는 것부터가 시작이야. 민호 말고도 관계를 좋게 유지하고 싶어서 거절을 힘들어하는 사람 많아. 그런데 반대로 거절은 진정한 친구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해. 네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아는 게 진짜 친구 아닐까?

나: 맞아요. 친구에 대해 잘 알아야 지킬 건 지키고, 장난칠 건 장난치면서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면, 결국 감정표현은 더 좋은 관계를 위해 필수적인 거야. 우선 거절이 필요한 순간엔 거절을 하되, 상대방의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하는 게 좋아. 예를 들어 친구가 하굣길에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하자. 여기서 바로 '싫어'라고 단호하게 거절하면 기분이 나쁘겠지?

나: 그건 기분 나쁜 걸 넘어 재수 없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선생님: 그렇지. 우선 거절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어. 계속 연습하다 보면 너랑 잘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처음에는 "바로 집에 가봐야 해서 안될 것 같아"처럼 돌려서 거절하거나, "어제 먹어서 별로 먹고 싶지 않아"처럼 조금의 거짓말을 섞어도 좋을 것 같아. 

나: 그렇게 말하면 서로 감정 상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겠네요.

선생님: 응, 그러다 감정 표현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불편한 장난이나 농담에 대해서도 말해보는 거야.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흥분하지 않고 차근차근 말하면 돼. 친구의 입장도 귀 기울이는 것도 잊지 말고.

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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