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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난별난 Oct 24. 2024

10월의 날씨

스치는 가을날들

*

가을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나는 어디일까.

어젯밤엔 알 수 없는 꿈을 꾸었다. 프러포즈를 받는 꿈이었다. 이런 류의 생생한 꿈은 참 오랜만이었다. 전에도 후에도 인생의 어느 부분을 돌이켜 봐도 프러포즈를 받은 적은 없다. 누구에게도 받지 못했던 프러포즈를 해주는 사람은 누구일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창가에서 푸릇하게 자라나는 고무나무와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선상 위 어딘가에서 흘러오는 노랫소리와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어우러져서 내 귓가를 간질거렸다. 배 위에는 익숙하지만 오랫동안 맡아보지 못했던 고소한 향기가 아지랑이처럼 넘실거렸다. 눈앞에서 바다가 너울너울 사랑의 춤을 췄다. 가슴이 저릿 거리면서 괜스레 따스한 눈물이 차오르는 이상한 꿈이었다. 그래서 깨고 나서도 한참 동안 눈을 꾹 감고 가만히 숨을 죽였다. 눈을 완전히 뜨는 순간, 눈앞에서 푸르게 빛나던 바다가 사라진다는 걸 알기에.

10월은 정말 많은 사건과 소식들이 몰아쳐 오는 달인 거 같다. 노벨문학상이라는 한국에서 나올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강의 수상소식도 들리고, 북한의 러시아전 파병소식은 수많은 죽음을 예견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어딘가에선 수많은 전갈자리들이 태어나기도 하는 시월, 탄생과 죽음이 어우러진 그런 달이다. 주지 못한 선물과 전하지 못한 마음들이 답답한 상황에 잔뜩 가로막혀 있다. 축하해,라며 웃을 수도 없는 이런 게 전쟁이구나 싶다.  

나는 일 년이 지나면서 많은 것이 정리되었고, 또 정리하지 못한 채 떠밀려 와 있다. 정말 떠밀려 왔다는 게 맞는 표현인 거 같다.

이렇게 비가 올 때면, 피난민처럼 쌓아 둔 작업실의 물건들이 다 젖어 버리진 않을까 청개구리처럼 걱정하고, 바람이 서늘하게 불면 허전한 손과 어깨를 홀로 웅크리며 잠을 청한다. 햇살이 한 줄기라도 내게 닿는 고마운 날에는 그래도 입꼬리를 올려 강의를 나가고 더듬더듬 그림을 붙잡는다.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한강작가님 덕분에 책이라는 작은 화두가 머릿속에 다시 떠올랐고, 다시금 무언가 그려내는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이 꿈처럼 불어온다.


꿈처럼 다시 행복한 순간들을 맞이할 수 있을까.

꿈처럼…


10월의 날씨가 소란스럽게 오늘을 스치고 지난다.

너무 소란스러워서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꿈을 끌어안고 망연히 축하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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