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에 핀 길쭉한 꼬맹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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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첫 기억은 세 살 무렵, 보육원 화단에 앉아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장면이다. 보육원을 나와 학교를 다닐 때엔 막연히 다짐했다. “언젠가 성공하면, 그 화단의 아이들에게 든든한 빽이 되어주리라, 가족대신. “
세월이 흘러 마흔을 앞둔 지금, 성공이라고 부를 수는 없지만 성난 파도 같은 인생의 고락을 뚫고 무사히 어른이 되었고, 내 삶을 스스로 꾸려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력도 조금은 갖게 되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첫 기억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보육원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흙바닥이던 마당은 매끈한 아스팔트 주차장이 되었고 2층짜리 단출한 건물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7층짜리 건물로 커져 있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내가 그림을 그렸던 화단만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곳에는 여름동안 치열하게 피었다가 저물어가는 해바라기들이 서 있었다. 해바라기를 보니 어디론가 바라보기만 하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라 반갑고도 먹먹해졌다.
아이들이 지내는 환경은 예전보다 훨씬 좋아져 있었다. 물질적으로 풍족한 지원을 받는 듯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마음속 외로움은 지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보육원에서 지냈던 어린 시절, 주말마다 오던 대학생 봉사자 언니들이 봉사를 마치고 떠날 때마다 나는 울고 불고 매달렸다. 헤어지면 영영 보지 못할까 봐 두려웠다. 언니들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오지 않았다. 그 뒤로도 매번 마음을 다쳤다. 언제부턴가 아무리 새로운 봉사자 언니들이 친절하게 해 줘도 쉽게 마음을 열 수 없었다.
그래서 봉사 교육 시간에 들었던 안내말 하나가 명치에 박혔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까칠하거나 반응을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상처받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들 입장을 생각하며 꾸준히 나와 주세요.” 그 말에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첫 봉사가 끝난 뒤 다른 봉사자들은 아이들의 차가운 태도에 마음이 얼어붙었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동질감을 느꼈다.
세상은 그냥 숨만 쉬어도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 ‘그냥 어른’은 스스로의 앞가림만 하는 것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진짜 어른’은 다르다. 스스로를 사랑하면서 또 다른 한 사람 정도는 사랑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불혹”을 앞두고 용기를 짜내어 어려운 첫걸음을 뗐다. 왕복 아홉 시간을 걸려 운전하는 수고로움이 있더라도 앞으로 10년은 오늘 만난 아이들이 스무 살 어른이 될 때까지 곁에 서 있어야지 다짐했다.
나는 지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유튜브를 통해 그림 그리는 방법을 나누고, 브런치를 통해 내 생각을 기록한다. 글과 그림은 내 삶의 언어이자, 스스로를 견디는 도구였고, 이제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편지이길 바란다.
언젠가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 아이들에게 든든한 빽이자 그 자체로 삶의 증거가 되고 싶다. “엄마, 아빠가 없어도 꽤 괜찮은 어른이 될 수 있어. 스스로를 사랑하고, 누군가도 도울 수 있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어.” 아이들에게 그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날까지 내가 이곳 출신이라는 건 비밀이다. 10년 안에 아이들 앞에서 태연히 밝힐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랄 뿐이다.
이유가 늘어난 만큼 인생이 더 무겁게 느껴지지만, 다가오는 마흔의 파도에 떠밀리지 않고 우아하게 설 수 있으리라. 이제야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혼자 뚝 이곳에 떨어진 것 같지만 혼자 자란 해바라기는 없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