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사고 후 치료 심리상담 기억을 소환해 봄
월요일 아침
평소 같으면 분주히 출근준비에 바쁠 시간인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벌써 3년 반이나 더 지나고 있는
명퇴 그리고 방황, 체념, 현실인정이라는 단계를 지나 오늘에 도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세상은 참으로 무심하다.
내 자리가 없어지니 지구가 돌다가 멈춘듯한 것처럼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아침저녁으로 일상화된 삶의 패턴은 퇴직하던 날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정지되었다.
앞뒤 전후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우선 나가고 보자는 판단은 그 속에 유리조각 같은 날 선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가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낼 것인가 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책상 앞에서 공허한 상념만이 머리에 가득했었다.
이래도 될까 그러다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ᆢ
끝없는 번민이 몰려왔었고 나는 그 물음에 답할 자신이 없었다.
무모한 결단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도무지 말도 안 될 법한 생각으로 자신의 미래를 망치고 있었다.
제2의 인생ㆍ취업전선 어떤 이에겐 절실한 현실이려니 하고 지나치지 못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나이 오십이나 육십 대에 평생 안 해 본일에 도전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어쩌다가 잘못 생각하여 가졌던 모든 것을 버리고 마침표를 찍고 했다 한들 그 누가 아니한 생각과 비현실적인 판단을 이해하고 어서 오세요 반겨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산업재해로 인해 두어 달 동안 심리상담을 지원하여 받아본 적이 있었다. 나는 상담사에게 매달리듯 애원하였다.
내 속에 있는 해묵은 쓰레기 같은 생각들을 상담 때마다 마구 쏟아내었고 상담사는 나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었다. 그 과정에서 퇴직의 고통과 후회를 가장 많이 털어놓았었고 또 기간제일의 힘듦도 많이 상담하였다.
두 달 동안 총 8 회에 걸쳐 상담받는 동안 조그만 위안이라도 되는 것 같았고 일을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호소할 수 있어 좋았었다.
상담 과정을 통하여 이것이다 싶을 정도로 많이 들은 말은 "충동적"이라는 단어였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자책과 후회를 이야기하다 보면 돌아오는 답은" 왜 충동적으로 그러셨어요"
이었다.
그랬었다.
지금에 외서 내가 한 일에 대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객관적인 의견을 들어보니 나는 충동적인 성격의 사람이었다.
상담이 종료되고도 나는 가끔 그 상담사와 나눴던 내면의 깊은 곳의 소리들이 산울림처럼 다시 들려오곤 했다.
그래서 상담의 효과가 조금 이도 있었던 것일까?
그 후로 나는 고여있던 둑이 터지듯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내면의 고요함과 정적이
찾아왔다.
충동적으로ᆢ
상담사가 줄곧 쓰던 단어는 내 머릿속에 남아서 혼란스럽던 생각들을 말끔히 정리해 주는 신기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이 있듯이 내가 직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면 그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었을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할 사람과 못 할 사람은 태도와 신념 의지에 있어 차이가 있을 거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설령 그것들이 여러 원인들로 인하여 복잡하게 얽히고 심지어는 왜곡되어 진실을 감추고 있었더라도
이번 상담을 통해 듣게 된 "충동적이다"라는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는,
나의 길고 지루했던 퇴직의 여정에 잔잔한 쉼표를 찍게 해 준 참 고마운 말이었다.
상담사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ᆢ
2026년 3월 23일
글쓴이. 김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