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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크 Feb 26. 2024

소금성에서 카페인을 맛보다

커피부록(14)#오스트리아 ‘일부’ 카페

컨셉있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확실해진 게 있다. 유명 관광지라도 컨셉에 맞지 않다면 가지 않는다는 것. 예를 들면 이렇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인 프랑스 파리에선 커피라는 컨셉에 맞게 에펠탑 근처엔 가지도 않았다. 루브르 박물관과 센강은 카페를 찾을 때 스치듯 지나쳤다.


 이쯤에서 의아한 점이 생길 수도 있겠다. 앞서 올린 ‘오스트리아 빈의 카페’들을 소개하는 글에서다. 커피가 컨셉인데도 빈에선 오페라하우스를 가고 미술사 박물관을 갔다.


 뻔뻔한 핑계를 대자면, ‘원칙이란 깨라’고 있다는 점. 다만 원칙을 깨는 데 전제 조건을 걸기는 했다. 일정이었다.

 여행 일정이 넉넉하다면 ‘발품 컨셉’을 수행하면서 다른 곳도 둘러볼 여지를 남겨두기로 했다. 컨셉에 발목 잡혀 조급해하지 말고 숨통을 틔우듯, 숨 고르기 하듯, 여유를 주자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일정의 틈이 많다면 컨셉을 추가하기로 했다. 부컨셉, 또는 세컨드(2nd) 컨셉 개념이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선 ‘커피’와 함께 ‘나머지 숙제’라는 컨셉이 하나 더 있었다.

 오스트리아에서 빈 일정을 마치고 찾은 잘츠부르크와 할슈타트는 원칙을 깨도 되는 두 가지 이유에 모두 해당된 여행지였다. 숨 고르기와 나머지 숙제. 그럼에도 잊지 않았다. 여행의 메인 컨셉인 ‘커피’ 말이다.



“모차르트 동네의 ‘힙스터’ 카페”


유럽의 중심부에 있는 잘츠부르크는 수백 년 동안 부와 번영을 누린 도시였다. 부의 근원은 '하얀 황금'이라 불리던 소금이었다. 암염을 채굴해 소금을 생산하고 유통하면서 경제 도시로 성장하면서 이름도 소금(Salz)과 성(Burg)의 합성어에서 가져왔다. 잘츠부르크, 말 그대로 소금성이었다.

호엔잘츠부르크성에서 바라본 잘츠부르크 야경.

 소금 무역으로 얻은 수입으로 잘츠부르크는 이탈리아의 건축 양식을 가져와 주요 건물을 지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에서 마리아와 아이들이 도레미송을 부르던 미라벨 정원과 미라벨 성 등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도시를 채우면서 ‘북쪽의 로마’라 불리기도 했다.


 여기에 도시 중앙을 흐르는 잘차흐(Salzach)강, 적에게 단 한 번도 함락된 적 없이 9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호엔잘츠부르크성(Hohensalzburg)과 그 성이 있는 페스퉁스베르크산(Festungsberg), ‘알프스 관문’이라는 별칭에 맞는 운터스베르크 산(Untersberg) 등 자연경관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과 조화를 이뤘다.


 이제 잘츠부르크는 ‘하얀 황금’인 소금의 도시보다 ‘문화’라는 황금이 더 어울리는 문화도시가 됐다.

 문화도시의 정점엔 1756년 이곳에서 태어난 음악의 신동 모차르트가 있다. 참고로 20세기 클래식 황제 카라얀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곳곳에서 모차르트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오르간 연주자로도 활동했다. 대성당 옆 카피델광장엔 젊은 모차르트를 형상화한 슈테판 발켄홀의 작품이 설치돼 있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옆 카피델 광장(Kapitelplatz)엔 지구본처럼 생긴 황금색 구 위에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입은 남자가 서 있다. 2002년부터 잘츠부르크 도심 곳곳에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설치하는 ‘잘츠부르크 예술 프로젝트’ 중 하나인 독일의 대표적 조각가인 슈테판 발켄홀(Stephan Balkenhol)의 작품 ‘구(Sphere)’다. 


 ‘발켄홀 모차르트 공(Balkenhol Mozartkugel)’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의 황금색 구는 지름 5m, 무게 2t의 광섬유 강화 플라스틱 위에 금박을 씌웠다. 구 위의 높이 높이 9m, 무게 300kg의 청동상 남자는 젊은 시절 모차르트로 알려져 있다.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고, 그가 연주한 유럽에서 가장 큰 오르간이 있는 잘츠부르크 대성당이 있는 광장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구시가지의 모차르트 생가(왼쪽 위)와 그 앞에 있는 스타벅스의 철제 간판. 미라벨 궁에서 열린 모차르트 음악회(아래).

 모차르트의 생가와 잘츠부르크 대성당 등이 있는 구시가지 전체는 옛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구시가지의 중심 거리인 게트라이데가세(Getreidegasse)는 간판도 이색적이다. 장인들이 정성껏 빚어낸 철제 장식과 그림을 넣어 가게 주인의 철학을 드러냈다. 하물며 스타벅스까지도.


 연간 모차르트 관련 공연만 130여 개나 되고 식사와 함께 모차르트 콘서트를 즐기는 프로그램도 있다. 매년 여름이면 세계 최고의 음악 축제도 열린다. 40일에 걸쳐 열리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다.


 커피투어가 아닌 만큼 잘츠부르크에선 모차르트의 흔적을 찾고, 바로크 양식의 건물을 둘러보는 데 집중했고 카페를 찾을 때는 힘을 풀었다. 역사적 이야기를 담은 카페보다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에 주목했다. 숙소 직원에게 추천받은 곳과 잘츠부르크 길을 걷다 우연히 만난 카페다.


 잘츠부르크 구시가지의 모차르트 생가를 본 뒤 대학광장(Universitätsplatz)을 거쳐 잘츠부르크 대성당으로 가려면 건물과 건물 사이의 내부 같으면서도 외부인 듯한 공간을 지나쳐야 한다. 사면의 건물에 둘러 싸여 햇빛마저 걸리듯 들어오는 이 공간에서 묘한 카페 이름이 보인다.

 향수 이름으로 오해하기 딱 좋은 카페 넘버5(Café N°5)다. 전날 호엔잘츠부르크성에 가는 길에 본 이 카페를 하루가 지나서야 찾은 이유는 왠지 ‘오기’를 발동하게 하는 영업시간 때문이었다.


 전날 불이 꺼진 카페 앞 입간판엔 이런 안내가 적혀 있었다.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오전 9시(일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영업하고, 수 목요일은 휴무.

 

 철저히 현지인 위주였고 여행자들에겐 도전하기 버거운 영업시간이었다. 전날은 카페가 문을 닫는 목요일이었고, 다음날 금요일 재도전에 나섰다.

 공간은 작았다. 1층은 커피 바와 원두를 진열한 쇼케이스가 차지해 테이블은 단 두 개뿐이었다. 2층은 가파르고 비좁은 나선형 계단을 올라야 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손님들은 햇빛이 걸러 들어오는 외부 테이블에 앉았다.


 커피 바를 보기 위해 1층에 자리했지만, 2층 공간도 못지않게 흥미로웠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마주하는 공간, 다락방 같은 분위기 덕에 내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다. 2021년 리모델링하며 2층 공간을 채운 건 오래된 가구들이다. 의자는 대학광장이라는 위치를 반영하듯 인근 학교에서 쓴 오래된 의자에 페인트를 칠해 재사용했다. 황금색 테두리의 거울은 벼룩시장에서 구매했다.

 역사도 길지 않고 공간도 좁지만 카페가 추구하는 목표는 명확하다. 카페 사장은 “잘츠부르크에서 오스트리아의 커피하우스 문화를 이어가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카페의 핵심은 역시 맛이다. 2023년 ‘올해의 로스터리'로 선정된 와일드커피(Wildkaffee)의 원두를 사용한다(커피부록 13편 참조).


  ‘올해의 로스터리’는 커피 잡지인 ‘크레마(Crema)’가 전문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통해 매년 선정하고 있다. 와일드커피는 지난해 16번째 로스터리로 뽑혔다.


 카페 넘버5는 와일드커피를 선택한 이유를 홈페이지에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특별한 커피를 원했고 와일드커피에서 발견했다”고.


 와일드커피의 역사는 18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레온하르트 판홀저(Leonhard Panholzer)는 아내 마리아와 함께 독일 파르헬키르텐(Partenkirchen)에서 유제품을 유통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볶은 커피도 판매했다. 당시 유럽에선 커피 로스팅 기술이 일반화되지 않을 때였다.


 그의 가족들은 고급 커피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고 120년의 시간이 지나 증손자인 레온하르트 와일드(Leonhard Wild)가 아내 스테파니와 독일의 도시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Garmisch-Partenkirchen)에 커피 로스터리인 와일드커피 로스터리(Wildkaffee Rösterei)를 설립했다.

출처 : 와일드커피 홈페이지

 현재 레온하르트는 요제프 스탈트마이어(Josef Staltmayr)와 함께 고품질 생두 커피를 가공하고 있다.


 원두는 유명 커피 농가로부터 직접 구매하고 있다. 생두의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농장도 방문한다.


 2014년엔 고품질 원두로 만든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에 카페 와일드커피(Café Wildkaffee) 문도 열었다. 원두에 집중하기 위해 로스터리와 카페는 분리해 운영하고 있다.


 와일드커피가 원두와 함께 자랑하는 건 로스팅하는 기계다.


 최첨단 드럼 로스터는 프로그래밍된 컴퓨터와 연결돼 있어 온도부터 시간, 로스팅 곡선까지 모든 과정을 모니터링해 균일한 맛을 내고 있다.


 카페 넘버5는 와일드커피의 원두로 다양한 커피를 내리고 있지만, 디저트만큼은 카페만의 맛을 내고 있다.

카페 넘버5의 너트롤(왼쪽)과 아인슈페너.

 카페 사장이 할머니와 어머니 레시피를 기반으로 매일 디저트를 굽고 있다. 식재료는 걸어서 1분 거리인 대학광장의 그린마켓(Grünmarkt)에서 구매한다.


 카페 넘버5의 대표적인 디저트는 너트롤이다.

 카페 사장은 “아마도 세계 최고의 견과류 빵”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낸다. 입안에 너트롤이 들어오는 순간 그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결국 아인슈페너와 함께 너트롤을 다 먹은 뒤 포장까지 했다.

 다만 카페 넘버5에 갈 때는 영업시간과 함께 주의할 게 또 있다. 무조건 현금만 받는다는 점이다.


카페 레오폴트는 나비넥타이를 형상화한 로고와 가상의 웨이터 레오폴트씨가 손님을 맞는다. 출처 : 카페 레오폴트

 카페 넘버5가 숨은 공간에 있어 찾아가야 한다면 카페 레오폴트(Café Leopold)는 대놓고 대학광장에 있다. 커피하우스 문화를 지켜나가면서도, ‘나비넥타이’를 형상화한 카페 로고, 메뉴판 등 곳곳에 젊은 감각을 입혔다.


 카페의 캐릭터인 가상의 웨이터, 레오폴트가 설명하는 카페 이야기에서도  이런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비엔나에선 저를 레오폴트 씨(Herr Leopold)라 불렀어요. 나는 비엔나에서 왔고, 비엔나의 커피하우스 문화를 대표하는 웨이터거든요…


 내가 몇 살인지는 묻지 마세요.  아마 몇백 살은 됐을 거예요. 아직 나이가 많다고 느끼지는 않지만, 이제 젊어지려는 노력을 해야 할 때입니다.


 … 오래된 비엔나 커피하우스 문화를 현대적인 영감으로 재해석하고 준비하면서도 여전히 위대한 역사를 이어가는 커피하우스를 여는 것입니다. 매력적이면서 약간의 유머가 있는 곳– 바로 여기에요. 여기!”

대학광장에 자리한 카페 레오폴트는 오래된 건축물에 자리해 샤니가르텐 등 커피하우스의 전통을 지키면서 현대적 감각을 결합시켰다.

 레오폴트씨의 설명 그대로다.

 구도심에 위치한 카페 레오폴트는 오래된 건축물 구조를 그대로 살려 빈의 커피하우스처럼 고전미를 느낄 수 있지만 벨벳 의자는 없다. 대신 가죽 커버의 의자, 스탠드형 테이블을 갖췄다.


 커피하우스의 특징 중 하나인 샤니가르텐(야외 테이블)도 인조털을 깐 철제 의자와 테이블로 꾸몄다.

연유를 뿌린 애플 슈트르델과 비너 멜란지 등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카페 메뉴에 QR코드로 알려주는 와이파이.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요청했는데 카페 로고와 함께 QR코드가 인쇄된 액자 하나를 보여준다. 공간이 주는 예스러움과 묘하게 어울린다.


 추천 디저트는 애플 슈트르델이다. 웨이터가 슈트르델 위에 연유를 뿌리면 더 맛있다는 제안을 한다. 커피는 비엔나 커피, 비너 멜란지다.


 현지인 추천 카페 구도심에서 스타츠브루크(Staatsbrücke) 다리를 통해 잘츠강을 건너면 나오는 린처가세(Linzer Gasse) 근처에 있었다.

 린처가세는 잘츠부르크의 역사 지구를 통과하는 주요 보행자 통로다.

 1818년 대화재로 14~15세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사라졌지만 지역 상인과 주민들이 복원에 힘을 쏟으면서 지금은 독특한 부티크, 고급 레스토랑, 전통적인 호텔이 모여 있는 도로가 됐다.


 목적지가 있는 곳은 린처가세와 파리로드론스트라세(Paris-Lodron-Straße) 사이, 한적한 곳에 자리한 건축 단지였다.


 이 단지는 과거 잘츠부르크의 안전을 책임지는 장소였다. 1909년 적십자 구조대가 문을 열었고 1913년 지방 공공 기관으로 명명됐다. 

 

 적십자는 잘츠부르크시의 의용소방서인 브루더호프(Bruderhof) 소방서와 함께 구호 활동에 나섰다. 이후 잘츠부르크 사람들은 소방서가 다른 곳으로 옮겨졌음에도 건축 단지를 브루더호프라 불렀다. 

 브루더하우스 성 세바스티안 병원(Spital Bruderhaus St. Sebastian)과 세바스티안 묘지(Sebastiansfriedhof)도 단지 안에 있었다.

브루더호프 건축 단지로 들어가는 아치형 입구 왼쪽엔 다이닝어가 설계한 적십자 건물이 있다. 아치형 입구엔 ‘사유지’를 알리는 문구가 있다.

 현재 성 세바스티안 병원은 게스트하우스이자 학생 기숙사인 성 세바스찬 연구소(Institute of St. Sebastian)로 쓰이고 있다.


 파리로드론스트라세를 통해 건축 단지에 접근하니 단지의 시작을 알리는 아치형 문이 나타났다. 문 위로 자라난 덩굴이 단지와 세상을 분리하는 듯했다. 참고로 아치형 문의 왼쪽 건물은 1927년 적십자가 소방서와 분리되면서 지은 건물이다. 오스트리아 건축가 부니발트 다이닝어(Wunibald Deininger)가 설계했다.

한적한 건축 단지를 거닐다 보면 라이트자머 통로를 만난다. 통로의 이름이 된 라이트자머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다.

  ‘사유지’ 임을 알리는 문구를 부착한 아치형 문을 지나 건축 단지로 들어서니, 한적하다.


 좁은 통로도 보인다. 코르넬리우스 라이트자머(Cornelius Reitsamer)라는 이름의 통로다.


 라이트자머는 의용소방대 사령관이자 지방소방국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는 잘츠부르크의 소화 확산을 막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잘츠부르크 명예시민이 됐다.


 통로를 지나니 마당 같은 공간이 나오고 목적지, 카페 입구가 나온다. 

 직관적인 이름이다. 그냥 대놓고 커피하우스(Coffee House)다. 내부로 들어서니 카페의 공간은 꽤나 넓다. 같은 층이면서도, 두 개의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꾸몄다.

 

 입구 쪽 공간은 다양한 종류의 목재와 패브릭, 가죽으로 만든 가구들이 조화롭게 배치돼 아늑한 느낌을 준다. 이곳에 브루잉바가 있다. 디저트 쇼케이스에서 마음에 드는 디저트도 고를 수 있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새로운 느낌을 연출했다. 햇빛이 들어오는 천창 아래 와인바가 있고, 의자와 테이블은 기능에 집중해 간소화했다. 

 에스프레소를 요청하며 디저트 추천을 부탁했다.


 커피하우스는 1956년 설립한 이탈리아의 ‘패밀리 로스터리(Familienrösterei)’의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 이 로스터리는 과테말라, 페루의 농장에서 손으로 딴 원두를 가져와 로스팅한다.


 로스팅 형태에 따라 두 가지 유형의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순한 맛 ‘에스프레소 포르테’와 진한 맛 ‘크레마 돌체’다. 에스프레소 포르테는 라떼로 마셔도 손색없고 크레마 돌체는 블랙으로 마시는 걸 추천하고 있다.


 에스프레소를 원하는 손님을 위해 직원은 크레마 돌체로 내린 커피와 초콜릿 크림이 들어간 크로와상을 제안했다.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넓은 공간, 진한 에스프레소와 달콤 고소한 크로와상만으로도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아, 여기도 현금만 받는다.


 잘츠부르크를 찾으면 꼭 가야 할 카페지만, 가지 않은 카페도 있다.

출처 : 카페 토마셀리 홈페이지

 오스트리아 관광청이 독일어 버전 홈페이지에서 잘츠부르크에 가면 방문해야 할 카페로 추천한 곳,  카페 토마셀리(Café Tomaselli)다. 


 구도심에서 만난 카페 넘버5나 카페 레오폴트에서 도보로 1분인 지근거리에 있으니 충분히 갈 만한 곳이었음에도 잘츠부르크의 카페엔 딱히 주제를 두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리스트에서 빠졌다. 


 단 카페 토마셀리는 잘츠부르크를 또다시 찾는다면 방문지에 꼭 넣을 카페가 될 듯하다. 카페 홈페이지에 적힌 방문해야 할 이유 때문이다.


 “토마셀리는 아마도 유럽에서 커피를 마시는 나이만큼 오래됐을 것”이라는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에리히 케스트너(Erich Kästner)의 말을 통해서다.


 이 말에는 카페 토마셀리의 긴 역사가 함축돼 있다. 시작은 1700년 3월 31일이다. 프랑스에서 온 요한 퐁텐(Johann Fontaine)은 골드가세(Goldgasse)에서 초콜릿과 차, 커피를 제공하는 상업 허가증을 받았다. 퐁텐의 사망 후 이 상가는 여러 번 주인이 달라졌다.

출처 : 카페 토마셀리 홈페이지

 1753년 상가를 인수한 안톤 스테이거(Anton Staiger)는 11년 뒤 지금의 올드 마켓인 알터 마르크트(Alter Markt)에 있는 주택 하나를 샀다. 바로 지금의 카페 토마셀리가 있는 곳이다.


 카페 토마셀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 칼 토마셀리(Carl Tomaselli)가 이 집을 구입하면서부터다.


 제과업자였던 칼 토마셀리는 1852년 잘츠부르크 중심부의 카페 스테이거(Café Staiger)를 구입해 토마셀리의 커피하우스 전통을 만들기 시작했다.

출처 : 카페 토마셀리 홈페이지

 이후 카페 토마셀리는 지식인과 작가들이 만나 신문을 읽고 토론하는 장소이자 시민들이 체스를 두는 장소가 됐다.

 

 지역지인 잘츠부르크 차이퉁의 1860년 8월 22일 자에도 이런 내용의 기사(사진)가 실렸다.

 "시장 광장에 있는 우아한 토마셀리 파빌리온은 이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카페 토마셀리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잘츠부르크를 문화의 도시로 만드는데도 일조했다. 바로 세계 최고의 음악 축제로 꼽히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다.


 페스티벌이 열리기 전부터 카페 토마셀리는 음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그중에서도 모차르트와의 인연이 깊었다. 


 카페를 세운 칼 토마셀리의 아버지이자 테너 가수였던 주세페 토마셀리(Giuseppe Tomaselli)는 젊은 시절이던 1781년 밀라노에서 잘츠부르크로 이주해 궁정 테너로 일했다. 주세페가 잘츠부르크에서 가수로 활동할 땐 이미 모차르트가 빈으로 떠난 뒤라 두 사람의 만남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주세페는 모차르트의 가족과 친분을 유지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Leopold), 모차르트의 여동생으로 난네를(Nannerl)이란 애칭으로 불리던 마리아 안나(Maria Anna)와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포스터(왼쪽). 올해 잘츠부르크 오순절 페스티벌에선 '투토 모차르트'를 모토로 모차르트 작품을 선보인다. 출처 :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홈페이지

 모차르트를 통해 음악의 도시가 된 잘츠부르크는 1920년 8월 22일 잘츠부르크 대성당 광장에서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가 연출한 휴고 폰 호스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의 ‘에브리맨(Everyman)’을 공연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 연출가인 라인하르트와 시인이자 극작가인 호스만슈탈, 작가 헤르만 바르(Hermann Bahr)가 단골 카페에서 이야기한 게 페스티벌의 출발이 됐다. 1967년 일간지 ‘마담(Zeitung Madame)은 바로 그 단골 카페가 ‘카페 토마셀리’라고 했다.


 지금도 카페 토마셀리에 가면 토마셀리 가문이 160년간 이어오는 커피하우스 문화를 누릴 수 있다.


“나머지 숙제와 함께 커피 한잔”


 잘츠부르크에 도착하고 첫날 일정은 ‘나머지 숙제’에 할애했다. 사실 여행길에 오르기 수년 전부터, 일에 치여 삶의 재미를 잃었다. 누군가 일로 잃은 재미를 취미로 되찾아 보라고 권했고 일하던 곳에 있던 작은 동호회에 가입했다. ‘스케치’ 동호회. 

 그림은 '보는 거'라 생각해 오던 사람이 '그리는 걸' 도전한다는 건 웬만한 용기 없이는 할 수 없었다. 절실함은 없던 용기마저 내게 했다.


 강습 선생님은 매주 잠자리 자작나무 돌덩이 등의 사진을 건네주고 스케치하는 법을 알려줬다.


 스케치에 자신이 생기면서 스스로 그릴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뒤졌다. 백두산 천지를 그리고 기찻길을 그렸다. 그러다가 눈길을 끄는 풍경 사진 하나.


 설산에 둘러싸인 잔잔한 호수, 호숫가에 자리한 유럽풍 건물이 인상적이었다. 어딘지도 모르고 사진을 보며 그리기 시작했다. 연필의 검댕이와 지우개 가루를 날리며 완성한 그림에 만족감을 드러내며 사진을 찍어 소장했다.


 그러다 지인과 식사 자리에서 삶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재미를 찾기 위해 ‘스케치’를 시작했다는 운을 뗀 뒤 어설프게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보여줬다. 호숫가 마을의 그림을 보여주는 순간 지인이 오스트리아 여행 때 간 곳이라며 툭 던지듯 말했다. ‘할슈타트(Hallstatt)’.


 인터넷에서 그저 예쁜 풍경을 찾아 그린 곳이 할슈타트라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언젠간 ‘할슈타트’를 실물로 보리라는 다짐을 한 건 그때였다. 그리고 숙제가 됐다.


 이번 여행의 두 번째 컨셉 ‘나머지 숙제’는 2016년 어딘지도 모르고 그린 곳을 1년 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뒤에도 6년의 시간이 지난 뒤 하게 됐다. 할슈타트 가기였다.

잘츠부르크에서 할슈타트에 배로 들어가는 방법은 복잡하지만, 어렵지는 않다.

 그 지인이 알려준 방식대로 할슈타트에 가기로 했다. 배를 타고 호숫가 집들을 보면서 가면 좋다는 얘기였다. 방법은 꽤나 복잡했고 오고 가는 데 걸리는 시간만 6시간이나 됐다. 아침 일찍 움직여 잘츠부르크 기차역 앞에서 150번 버스를 타고 바트이슐(BadIschl)로 갔다. 그리고 바트이슐의 기차역에서 할슈타트행 기차에 올랐다. 간이역처럼 작은 할슈타트 역에 내리자마자 바로 옆 내리막길을 통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이제 배만 타면 할슈타트였다.

 

 오가는 과정에 번거로움은 있어도 어려움은 없었다. 많은 이들이 찾는 관광지답게 버스 시간에 맞춰 기차가 오고, 기차 시간에 맞춰 배가 왔다.

선착장에 부착된 가격표시판과 왕복 티켓(오른쪽).

 뱃삯은 현금만 받는다며 가격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보였다. 배 시간표도 붙어 있었다.


 호수 맞은편 저 멀리 할슈타트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어느새 배가 도착했다. 수백 년 동안 사람과 물자를 실어 나르던 배, 플래텐(Plätten)에 올라서니 호숫가를 굽어보는 집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다.


 할슈타트는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잘츠캄머구트(Salzkammergut) 지역의 대표적인 마을 중 하나다.

플래텐을 타고 할슈타트 호수를 건너면 할슈타트 마을을 마주하게 된다.

 잘츠캄머구트는 잘츠부르크 동쪽 일대 알프스의 한 지류로 산과 호수가 아름답게 펼쳐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소금(Salz)과 왕의 영지(kammergut)라는 뜻의 두 단어가 결합돼 만들어진 명칭에서 볼 수 있듯 소금이 상징적인 지역이다.


 이 일대의 암염 광산은 오래전부터 소금 생산을 해 왔다. 할슈타트를 포함해 바트이슐, 장크트 볼프강(st. Wolfgang), 장크트 길겐(st. Gilgen), 샤프베르크(Shafberg), 오버르트라운(Obertraun) 등 마을들이 모두 이 잘츠캄머구트 지역에 속한다.


 특히 할슈타트는 기원전 5000년경부터 광산에서 소금을 채굴했다. ‘맨인솔트(Man in Salt)’라 불리는 기원전 1000년경 미이라나 선사시대에 사용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계단 등이 발견되면서 고고학적으로도 중요한 장소다.


 할슈타트 호수와 고도 3000m에 달하는 다흐슈타인 산(Dachstein)이 둘러싼 지형 탓에 큰 도시로 발전하지 못했음에도 하얀황금인 소금을 유통하면서 풍요롭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로 남았다. 덕분에 소금이 더 이상 중요한 자원으로 취급받지 못함에도 지금은 산과 호수, 호숫가에 위치한 그림 같은 집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인기 관광지가 됐다.


 1997년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르기도 했다.

뮐바흐 폭포에서 떨어진 폭포수는 골목 곳곳을 지나 할슈타트 호수로 흘러간다. 폭포수 낙차를 이용해 운영한 제분소를 설명하는 표지판(오른쪽)도 보인다.

 이런 아름다운 마을을 해질녘까지 걸어 다녔다.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을 지나 마을 위 뮐바흐(Mühlbach) 폭포를 보고 폭포수의 낙차를 이용해 곡물을 가공하던 골목길 제분소도 지나쳤다.


 폭포수는 골목 곳곳을 흐르며 효과음을 내면서 할슈타트 호수로 흘러 들어갔다.


 주민들은 친절한 미소로 여행자를 맞이했다. 가파른 골목길에서 만난 어르신은 “(등산용) 막대기가 없으면 다니기 힘든 곳”이라고 말했다.

할슈타트 세계문화유산 박물관(왼쪽)과 할슈타트 납골당.

 12세기에 만들어진 납골당(Charnel House)은 할슈타트만의 장례 문화를 보여주며 묘한 감정을 줬다.


 돌산으로 형성된 마을인 탓에 할슈타트는 집을 지을 장소도 부족한 데다 짓기도 힘들었다. 그런 할슈타트에 맞는 장묘 문화가 납골당이었다.


 입장료를 내니 건네준 한글 버전의 설명문에 따르면 현재 납골당엔 1200여구의 해골이 안치돼 있다. 가장 최근에 안치된 것은 1995년이다.


 할슈타트 세계문화유산 박물관(World Heritage Museum)도 둘러봤다. 청동기 시대 사슴뿔로 소금을 캐는 모습, 7000년 전 할슈타트에 정착한 켈트족이 소금을 찾는 이야기, 1750년 발생한 할슈타트 대화재 등 할슈타트에서 일어난 사건과 사람들을 시대별로 알려줬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지의 할슈타트 사진 명소에 설치된 울타리 기사.

 그리고 드디어, 숙제의 마침표를 찍는 장소로 향했다. 선착장을 기준으로 마르크트 광장 방향과 정반대로 가면 나오는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약간의 걱정이 앞섰다.


 2023년 5월 유럽의 언론사들이 보도한 내용 때문이다. 할슈타트 사진 명소로 꼽히는 이곳에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마을 주민들이 소음공해 등의 피해를 입게 됐고 사진명소에 울타리를 설치했다는 내용이었다.


 ‘울타리’를 걱정하며 목적지에 가까워지는 순간, 걱정은 사라졌다. 울타리는 없었다. 관광객들은 소란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에 맞춰 울타리 없는 사진 명소에서 조용히 인증 사진을 찍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미뤄둔 숙제를 향해 렌즈를 갖다 댔다. 카메라 프레임 안으로 풍경이 들어오는 순간, 미뤄둔 숙제를 마무리한 듯 마음이 편해졌다.


 

 나머지 숙제 덕에 할슈타트에서의 커피와 식사는 말 그대로 ‘때웠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없었다.

 아침 겸 점심은 잘츠부르크 기차역 앞 스타벅스에서 텀블러에 담아 온 아메리카노, 바트이슐 기차역 매점에서 구매한 크로와상이었다.

잘츠부르크 기차역 앞 스타벅스(아래 왼쪽)와 바트이슐 역전 매점에서 구매한 크로와상은 할슈타트 풍경과 함께 근사한 식사가 됐다.

 식사 장소는 할슈타트를 찾은 여행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호숫가에 마련해 놓은 데크였다. 목재로 만든 난간에 커피와 크로와상을 올려놓는 순간, 난간 너머 하늘과 호수, 설산은 나만의 식당 뷰가 됐다.


 이 광경이 재미났나 보다. 독일에서 왔다는 한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자청했다. 이 여행객에게 ‘자연이 만들어준 나만의 식당’이라 말했고 그는 사진을 찍어준 뒤 ‘좋은 선택’이라고 평했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속담은 '풍경이 반찬'이라는 속담으로 바꿔도 될 정도였다. 늘 마시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역전 크로와상은 가성비 최고의 한끼였다.


 저녁은 돌아가는 배 시간을 고려해 선착장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에서 해결했다.


 ‘해결했다’는 표현에 걸맞게 카페 이름은 ‘호수 옆 잡화점(Die Gemischtwarenhandlung AM SEE)’이었다.

 관광지답게 가격은 과하게 비쌌지만 나쁘지 않은 기억을 남겼다.


 직원은 여행자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 줬고 제대로 답하지 못할 때면 미안함을 드러냈다. 건물 내부는 언제 지었는지 시점을 가늠할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잡화점이란 카페 이름답게 물건을 파는 매대도 한 켠을 차지했다.


 음료와 디저트를 주문할 때는 맛보다 효과에 집중했다. 추위와 피곤함을 해소시켜 주는 것. 

 덕분에 ‘대접’만큼 큰 잔에 넘치도록 준 아메리카노는 쌀쌀한 추위에 지친 몸을 녹여주기에 충분했고 달콤한 애플 슈트루델은 피로를 잊을 만큼 달콤했다. 


 만약 할슈타트와 바트이슐을 커피라는 컨셉으로 찾았다면, 아마 다른 곳을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바트이슐부터 말하자면, 할슈타트에 가기 위해 그저 지나쳐 가는 곳이 되지는 않았을 거다.

 이슐강과 트라운강으로 형성된 반도 바트이슐은 제국의 도시라는 별칭이 있다. 과거 프란츠 요제프 1세 황제와 아내인 시시 황후는 물론 합스부르크 가문이 사랑하는 여름 거주지라 붙여진 별칭이다. 다뉴브 군주제의 감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했다.

출처 : 카페 자우너 홈페이지

 이곳에는 황실에 디저트를 공급하던 제과점이자 카페가 여전히 영업 중이다.


 1821년 요한 자우너가 문을 연 자우너 제과점(konditorei zauner BadIschl)이다.


 그의 손주였던 빅터 자우너는 까페 발터(Café walther)를 인수해 개조한 뒤 1927년 카페 에스플러네이드 자우너(Café Esplanada Zauner)의 문을 열었다.


 현재는 자우너 가문의 7대 손인 필립 자우너(Philipp Zauner)가 자우너스 그랜드 카페(Zauner Grand Café)와 레스토랑 자우너 에스플러네이드(Restaurant Zauner Esplanade)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할슈타트 호수로 흘러가는 트라운강가에 야외테이블도 조성했다.


 할슈타트에선 잡화점 대신 브로이가스트호프(Bräugasthof)를 찾았을 듯하다. 할슈타트 호수 기슭의 150년된 밤나무 아래에 있는 브로이가스트호프는 카페라기보다 양조장이나 식당, 숙박업소로 보는 게 맞다.

출처 : 어퍼 오스트리아 관광 홈페이지

 어퍼 오스트리아(Oberösterreich) 관광 홈페이지에 따르면 1504년 막시밀리안 1세 황제는 할슈타트의 옛 광산 마을에 머물면서 집에서 양조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았다. 1907년까지 이 양조권을 행사한 곳이 브로이가스트호프다.


 현재 브로이가스트호프는 옛 여관의 아늑한 분위기와 함께 할슈타트 현지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EP.


 고백할 게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에펠탑을, 센강과 루브르 박물관을 스치듯 지나간 이유는 이미 여러 차례 방문했기에 가능했다. 혹여 컨셉만 강조하는 글 때문에 에펠탑과 센강, 루브르 박물관을 놓치는 분들이 계실까 싶어 털어놓는다.

 

 아울러 참고할 만한 내용도 공유한다. 할슈타트로 가는 선착장에서 안내된 뱃삯은 7유로였다. 이건 왕복 티켓 가격이다. 그래서 티켓도 두 장을 준다. 한 장은 돌아올 때 내야 하기 때문에 보관은 필수다.


 사실 그런 사실을 몰랐다. 두 장 중 한 장은 고객 보관용으로 주는 거라 여겼고 허술하게 보관하면서 어딘가에서 흘렸다. 덕분에 잘츠부르크로 돌아오는 길에 편도행 티켓을 다시 사야 했다. 만약 돌아갈 때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할 계획이라면 할슈타트로 들어갈 때 편도 티켓을 구매하면 될 거 같다.

 

 할슈타트 납골당 내부 사진은 경건한 마음으로 지켜봐 달라는 설명문의 요청에 따라 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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