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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 di Aug 12. 2024

수고했다는 한 마디

어쩌면 이시대의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한 마디

꽤 몇 주 동안 무기력하게 살았던 것 같다.

일에 대한 의욕은 당연히 없을 뿐더러, 갖고 있던 동기는 온데간데 사라졌고,

모든 자극들에 지쳐서 잠시 동굴 혹은 아무도 없는 숲 속으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 마음도, 정신도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동시에 허리가 아작났다.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사회적 규범에 따른 나이 기준은 아니고, 그냥 나는 나 스스로 젊다고 생각한다) 허리가 아작 났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오래 앉아있는 것은 너무 고통스러웠고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에는 고통이 너무 커서 앞에 무엇이든 있으면 때려 뽑고 싶을 정도였다.


허리를 재활하기 위해 병원에 가던 길에 요즘 증상이 무엇인지 검색하는데 '번아웃 증후군'이 떴다.

(출처_심리상담센터 마음소풍_번아웃증후군 자가진단테스트 - 17가지 심리 자가진단테스트(무료) (maum-sopoong.or.kr))

1. 출근하는 생각만 해도 짜증과 함께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2. 직장에서 칭찬을 들어도 썩 즐거운 기분이 들지 않는다.

3. 직장생활 외에 개인적인 생활이나 시간이 거의 없다.

4.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든다.

5. 일하는 것에 심적 부담과 자신의 한계를 느낀다.

6. 충분한 시간의 잠을 자도 계속 피곤함을 느낀다.

7. 이전에는 그냥 넘어가던 일에도 화를 참을 수 없다.

8.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9. 현재 업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줄었다.

10. 주변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잦다.

11. 주변에서 고민이 많거나 아파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12. 성욕이 감소했다.

13. 나의 직무 기여도에 대해 스스로 매우 낮다는 생각을 한다.

14. 만성피로, 감기나 두통, 요통, 소화불량이 늘었다.

15. 주변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위의 내용이 번아웃 증후군 체크리스트 내용인데 하나같이 다 높은 점수라 결과지에서 나에게 '고위험군'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6월부터인가 급격히 체력과 건강이 나빠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수면 시간을 늘려서 7시간을 자도 건강 회복이 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나에게 피곤해보인다, 괜찮냐라는 질문을 자주 하였고, 나는 동시에 잦은 체와 소화 불량으로 식욕도 줄었었다. 점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실망이 늘어가고, 예전에는 화가 나지 않았던 동료의 작은 실수, 혹은 나의 작은 실수에 분노를 느끼는 나를 마주했다. 무엇보다 대학원생이다보니, 교수님께서 부르시는 그 시간이 모두 출근시간이기에 밤도, 새벽도, 아침도 항상 출근한 기분이었다. 내 시간이 전혀 없다고 느껴지니 점점 어딘가로 쫓기는 기분이었고, 일하는 것에 부담과 한계는 커졌다. 그리고 점점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 조차 남은 내 에너지를 사용해야하는 것이었기에 누구와도 연락하고 싶지 않았다. 어느순간 나는 아무도 없는 동굴이나 숲 속으로 들어가 잠시라도 누구의 연락을 받고 싶지 않았고, 폰을 꺼둔 채 잠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허리까지 망가지니 안 그래도 망가진 멘탈은 완전 나가버렸고, 집에 반강제로 누워있는 신세가 되었다. 한 3일 정도를 앓아 누워있다보니 조금은 멘탈이 나지는 가 싶었다. 병원 치료도 다니면서 허리도 나아지는 가 싶다.


얼마전부터 심리상담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가장 잘 맞는 선생님이 있었기에 다시 연락을 드려 시작하게 되었고, 오랜만에 선생님을 만난 순간 '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선생님, 저 진짜 성한 곳이 없어요. 몸도 멘탈도 완전 아작났어요."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만난 나를 선생님은 반가워하면서도 안타까워했다.


선생님이 내 일상을 차분히 들으시더니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여쭈어보셨고,

나는 "너무 고생많았다. 덕분에 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라는 말이라고 하였다.

선생님은 조금은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보며 "생각보다 너무 소박해서 조금은 놀란 것 같아요. 가장 듣고 싶은 말이 그것뿐이예요?"라고 물었다.


다시 생각해도 나는 단지 "고생 많은 걸 알고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고, 듣고 싶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단지 일을 돌아가게 하는 부속품이자, 고장이 나면 큰일 나는 부속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장이 난 내가 너무 싫었고, 고장이 난 내 스스로가 가치 없는 연구자가 된 것 같아 좌절스러웠다. 그래서 누군가로부터 나에게 "고생이 많지? 열심히 하고 있는 것 알아"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스스로는 이미 망가진 부품이라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하다보면 자주 혼나게 되는데, 정말 잦게 혼이 난다. 심지어 내가 잘못하거나 실수한 일이 아님에도 책임이 나에게 돌아오는 일들이 많다보니 내가 하지 않은 일에도 비난을 받기 일수이다. 그러다보니 내 멘탈은 너덜너덜해져갔고, 스스로를 '하자'가 있는 인간으로 여기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예전부터 내 상담을 담당하셨기 때문에 내 성격도, 환경도, 살아온 삶도 잘 아는 분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며, 연락을 줘서 고맙고, 다시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 같이 노력해보자고 이야기하였다.


돌아오는 길, 주말 동안 나에 대해 생각해보았는데, 나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은 "고생하고 있고,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다. 고군분투해줘서 고맙다"인 것 같다.


어쩌면 현대인들은 너무 각박학 사회 속에서, 세상 속에서 살아가다보니 스스로가 작게만 여겨지고 내 노력과 최선은 항상 부족한 것 같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충분히 열심히 살아내고 있습니다. 그간 고생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쉴 수 있을 땐 쉬세요. 당신은 기계가 아니라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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