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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 di Aug 03. 2024

사람이 극한으로 힘이들땐

뇌의 전원을 끈다.

어제, 문득 더 이상 일을 하다가는 숨이 안쉬어질 것 같아서 무작정 집을 나가서 1시간 30분이 넘는 거리인 여의도 한강 공원을 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냥 머릿속에는 '도망치고 싶다'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집을 나와 버스를 탔다. 


웃프게도 버스에서 작은 일처리들은 계속 해야했지만,

중요한 일처리는 모두 끝내놓은 상황이었기에 그냥 나와버렸다.


빨간 버스에서 멍을 때리며 여의도를 향했다.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기 전이었고, 땀이 뻘뻘 났지만 그냥 걸었다.

그리고 한강이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멍을 때렸다.

그렇게 내리 4시간 정도 멍을 때린 것 같다. 땀이 나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냥 변해가는 하늘색을 바라보며 예쁘다 생각하거나,

한강에 와서 예쁜 추억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과 가족들은 바라보며 가끔 미소짓기도 했고,

그러다가도 다시 한강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근래에 너무 많은 책임에 부담을 느꼈다.

일에서도, 외부에서도 나를 찾고 나에게 문의하고 컴플레인을 하는 상황 속에서 온전히 내 일이었다면 조금 더 견딜 수 있었을텐데, 내 일이 아닌 것 까지 떠맡게 되면서 모든 것에 질려버렸다.

웃긴게 질려버린 나에게도 화가 났다. 왜냐면 모든 상황이 머리로는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탓할 곳도,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괜찮아하고 넘어갔었는데

내 속은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필라테스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필라테스 선생님이 내 명치를 만지더니 놀란 적이 있다.

사람의 내면 상태는 신체에 영향을 주는데 특히 화가 많이 쌓이면 명치가 엄청 딱딱해진다고.

근데 내가 필라테스를 시작한 1년 6개월 동안 이렇게 딱딱하고 아파했던 적이 없다며 혹시 근래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물으셨다. 한숨이라도 쉬면 좀 괜찮아지는데 한숨도 못 쉰거나며.


생각해보니 어느순간 한숨도 쉬지 않았고, 그냥 그려려니 했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화가 많이 줄어들었네, 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화가 줄어든게 아니라 내 속에서 썩히고 있었던 것이었다.


예전에 웃긴 짤은 본 적이 있다. '도망쳐 나왔어. 만사가 귀찮아졌거든'이었던 거 같은데

그때는 웃으면서 봤는데 어느때만큼이나 근래에 그 짤이 공감이 간다.


사람은 극한의 상황이 오면 도파민이 나와서 더 재밌게 임하게 된다는 스포츠의 논리는 일에는 적용할 수 없었다. 사람은 일에서 극한의 상황이 오면 뇌의 전원이 꺼진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것 같다.


이전에는 배터리 20%인 채로 일을 하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은 3% 간당간당한 채로 일을 하는 것 같다.

주말인 지금도 출근해 있는 걸 보면 충전할 시간도 부족한 것 같다.


나는 오늘 없던 일정이 생겼고, 그 일정 때문에 주말 약속도 취소한 채로 일을 나왔다.

화가 막 나다가도 화를 낼 수도 없어 그냥 그려려니 하는데, 지하철에서 아무생각없이 심리상담 앱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마음의 배출구가 필요한 거 같아서.


오늘도 한강가서 멍때릴까 고민중이다.


두서 없는 글인데

그냥 언젠가의 내가 다시 보면 이때 내가 이랬구나 싶기도 하고,

그냥 힘냈으면 좋겠어서. 나도 그렇고, 지금 과부화가 온 사람들도 그렇고.

시간은 지날테니. 다들 힘내자고.


우선 오늘 주어진 업무부터 잘 마무리 해보겠다.

주저리주저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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