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유(부제.INFJ)
얼마전 문득 MBTI 검사가 생각나서 했다.
대학원에 와서 성격이 많이 바뀐 것 같은데, 내 MBTI도 예전이랑 그대로일까?
특히나 박사과정 오고 나서부터는 이전이랑 성격이 많이 달라진 것을 스스로 느끼는 데 느끼고만 있었을 뿐 따로 시간을 내 탐색하지는 않았다.
연구실 출근하는 길에 MBTI 해봐야지하고 오랜만에 했는데, INFJ가 떴다.
내 주변에 없는 MBTI, 무슨 성격인지도 1도 모르는 MBTI. 나올 것이라 전혀 예상 못했던 MBTI라 어리둥절,,
ISFJ였던 나는, S와 N이 매우 비슷한 비율이었고, I랑 E랑 매우 비슷한 비율이었는데 큰 변화는 없었던 지라 그렇구나하고 살고 있었다.
'INFJ가 .. 뭐지?'하며 관련해서 찾아보니 설명을 보는 것 마다 맞아떨어져서 내 이마를 탁 쳤다.
한 영상에서 나온 비유가 정말 찰떡이었는데,
전쟁에 나온 군인이라면 (INFJ가), 보통 사람들은 내 팀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내 팀이 이기는 것이 옳다는 신념으로 전쟁에 임하지만, INFJ는 전쟁에 성실히 임하면서도 상대 국가의 국민들이 다치는 모습을 보면서 괴로워하고, 자신의 임무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악에 고통스러워한다는 존재하는 것이었다.
진짜 복잡하고,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는 스타일. 그 자체였다.
그냥 대학원 와서 사람이 참 복잡해졌다, 생각이 정말 많아졌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밤에 잠이 들기 전 마다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할까?'라고 고민했다.
내 마음 속에 선과 악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매일 마주하는데, 완전한 선을 갖고 싶지만 그러지 않은 나를 볼 때 자괴감을 자주 느낀다는 점도 이 MBTI의 특성이라는 것이 신기했다.
MBTI는 그냥 소개팅할 때 써먹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능통했다. 다 맞아떨어지지는 않아도, 어느정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는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선과 악이 공존하다보니, 주변에서 나에게 종종 "너무 착하다", "너무 친절하다"라고 말할 때 마다 나는 "아니요. 저는 인성 쓰레기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진짜로. 얼마 전에 다른 연구실 교수님께서 나에게 "인품이 너무 좋으시잖아요"라고 하시길래 "교수님.. 전.. 인성에 정말 하자있습니다.. 박사과정 와서 더 심해진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왜냐면 누가 화나게 할 때는 속으로 '진짜 왜 저러지?'로 시작해서 '내 앞에서 사라졌음 좋겠다'라는 생각도 하기 때문. 물론 그러다가 '아냐, 그래도 저 사람 저번에 (좋은 모습)한 걸 보면, 그래도 쓰레기라고 치부하긴 일러'로 결론이 지어지긴 하지만, 원채 내가 좋아하고 믿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크게 관련이 있고 싶어하지 않고, 딱히 친해지고 싶어하지도 않는 성격이다. 여하튼, 나도 사람 (매우) 잘 싫어하고, 잘 피하는 데 굳이 대놓고 그러지 않을 뿐이라 나를 착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오해를 하는 사람에게는 정정해준다. "전 안 착합니다"
선과 악의 공존은 괴롭다. 완전한 선은 당연히 어렵지만, 그럼에도 내 안에 악 보다는 선이 더 많기를 바란다.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선과 악이 싸울때가 굉장히 많다.
이 문제를 화로 해결할 것인가? 인내와 친절로 해결할 것인가?
이 사람을 내가 화로 조질 것인가? 인내와 사랑으로 한 번은 품어볼 것인가?
정말 답 없는 경우라면, 인내와 사랑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면 분노하지만 나는 많은 상황 속에서 인내해보거나, 사랑해본다.
어쩌면 이건 종교의 영향이 클 수도 있는데, 근래에 들었던 생각은 내 선에 의해서라기 보다 주변의 선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다.
최근 외부 연구진과 연구를 하면서 안 좋은 일이 일어났었다.
과정에서 나의 잘못 한 스푼, 상대방의 잘못 국자 10스푼이 있었는데 그 액체들이 섞여서 안 좋은 결과를 냈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이 나에게 불같이 화를 냈는데, 나는 화를 내기 보다는 일단 나의 잘못한 부분은 사과를 하고 친절히 최대한 이렇게 된 과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러나, 한 번 생긴 갈등은 잘 해결되지 않았고 더 커져만 갔다. 그 상황 속에서 나는 멘탈을 붙잡으며 건강히 소통하고자 하였으나, 점차 한계가 오고 있었다.
그때 내 곁에서 상황을 보던 지도 교수님은 나를 따로 부르셨다. 그리고 "00아,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모든 것들을 설명해주지 않아도 되고, 그러다보면 너만 소진이 와. 너 지금 몇날며칠 외부 연구진이랑 소통하면서 소진왔을 거 같아. 그리고 외부 연구진이 잘못한 게 맞아. 너가 잘못한 부분은 너가 충분히 사과했어. 그러니까 그만 사과하고, 그 연구진이랑 소통 잠시 멈춰. 내가 지금 이렇게 너를 따로 불러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뭐겠어? 외부 연구진이 걱정돼서? 그게 아니라 00이 보호하려고 그러는거야'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나중에 '00이의 안위와 건강이 우리 연구팀은 가장 소중하다'라고 하셨다.
그때 우리방 연구 선배가 함께 소통하며 갈등 해결에 도움을 주었고, 다행히 모든 오해가 잘 풀리고 마무리 또한 잘 됐었다. 당시 선배는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멍 때리고 있는 나에게 연락을 했다. '00아 너무 속상해 하지마.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건 당연한거야. 나도 사회생활하면서 점점 더 터득하게 된 거야. 너도 살아가면서 더 많이 배우게 될 거야. 이번에 넌 배운거야.'
교수님과 선배의 위로와 조언을 들었을 때 안그래도 눈물 많은 나는,, 울었다,, 아 물론 안 보이는 곳 가서 혼자... 그리고 '구구절절의 아이콘' 답게 구구절절 감사인사를 했다. 선배에게는 '사실 제가 너무 모지리같고 속상하다. 근데 선배 같은 분이 제 선배여서 너무 다행이고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답했다.
위의 일로 인해 나는 나에게서 나오는 선함은 결국 주변의 선함으로 인함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삐뚤어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내가 올바르고 지혜롭게 살아가길 원하는 지도교수님, 선배, 그리고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고 걱정없이 선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악하게 생각하고 계산하지 않아도 나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선함을 택한다는 것은 어렵다. 지금도 어렵다.
그리고 나또한 사람이기에 악을 택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내 안에서 선이 이기길 바라고, 선함을 행하고자 하는 이유는
내 주변에 선한 마음들이 내가 그 길을 가라고 지켜주고, 말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고 또 다음날 '나는 인성 쓰레기입니다'를 복창하고 있겠지만,,
오늘 한번 더 선을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