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이따금씩 춥다고 느껴지지만, 저를 포함하여 길 위를 다니는 사람들의 옷이 얇아지는 것을 보아하니 봄이 오고 있는 듯합니다. 저에게 가장 싫어하는 계절이 언제냐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겨울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옷을 여러 겹 입는 것도 귀찮고, 눈이 오면 미끄러져 다칠 위험이 있으며, 이동하기도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이번 겨울은 작년에 비해 낮은 기온, 평소보다 유독 많이 내리는 눈으로 인해 몸이 많이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늘 겨울이 빨리 지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 중 한 명이었던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겨울의 끝자락을 보며 아쉬움을 느낍니다. 살이 찢어질듯한 추위, 더불어 생각보다 너무나도 오래 지속되는 코로나까지 겹쳐 살면서 겪어 왔던 겨울 중 최악이 될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다르게, 올 겨울은 내면화에 있어 저에게 풍요로움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1. 기부
월급을 받아 겨울 옷을 살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따뜻한 옷을 더 많이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아이쇼핑을 하던 도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옷을 여러 벌을 가지고 있는데, 옷이 충분하지 못한 사람들은 올 겨울을 어떻게 보내지?'
'이번 겨울은 너무나도 추운데, 몸이 약하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병원을 쉽게 방문하지 못하는 분들은 어떡하지?'
그래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일수록 몸도, 마음도 힘든 사람들은 그 힘듦이 더 크게 느껴지실 테니까요.
기부를 처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전에는 TV, 인터넷 등 매체에서 힘들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보며, 시각적인 자극에서 나타난 행동이었습니다. 그 어떤 시청각적 자극 없이 온전히 저 스스로 깨닫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여 기부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저는 백만장자가 아닙니다. 때문에 큰 금액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준 올 겨울에게 참 감사합니다.
2. 생각의 전환 : 눈을 통해
제가 겨울을 싫어하는 주된 이유 중 한 가지는 바로 눈입니다. 눈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챙기는 것도 싫고, 미끄러운 것도 싫습니다. 더군다나 교통이 마비되는 경우가 잦아 평소보다 서둘러 출발함에도 때때로 늦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눈이 오면 절대로 밖에 나가지 않았던 제가, 올해는 너무나도 눈이 잦게 내려 눈이 오는 날 외출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고 했던가요? 눈으로 인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는 눈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눈이 내리면 눈이 즐거워집니다.
첫째, 눈은 도시에서 쉽게 즐길 수 있는 자연물입니다. 도시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기란 참 힘든 것 같습니다. 특히나 뚜벅이에게는 더더욱. 일상에서 늘 보는 아파트나 건물, 울타리, 지붕이 눈에 덮일 때, 새롭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 속에 온 듯합니다. 이처럼 새로움과 아름다움, 신비로움을 동시에 선사해주니 이보다 매력적인 자연물이 어디 있을까요?
둘째, 아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추억을 쌓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눈이 오는 날이면 집 앞에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 눈사람을 만들고, 썰매도 타고, 눈싸움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아이를 매우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눈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는 왜인지 모르게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마 제 기억 속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눈으로 쌓은 추억들이 생각나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눈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다 보니, 이제 눈이라는 존재가 저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눈을 피할 수 없어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억지로 찾아낸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억지로라도 좋아하다 보면 훗날에는 진심을 다 해 좋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옷을 여러 겹 입어야 하고, 눈이 와서 이동하기 불편하고 미끄러져 다칠 위험이 있어 겨울을 싫어하던 과거 저의 모습을 보면, '저 자신'에게만 초점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보다 유독 더 춥고 눈이 많이 내렸던 겨울 덕분에 저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조금 더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즐거움에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에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합니다. 다음 겨울의 끝자락에는 지금보다 더 따뜻한 저 자신의 내면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학수고대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