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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Jun 10. 2024

스페인의 한국 여인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국립오페라단


  4년에 한 번 생일이 돌아오는 2월 29일생. 양파와 같은 체형의 대식가. 도니제티, 벨리니와 더불어 벨칸토 오페라 삼총사인 조아키노 로시니.


  모차르트가 다시 태어났다는 풍문이 돌았다. 그가 죽은 이듬해, 로시니의 몸을 빌려서 말이다. 음악 천재에 대한 찬사가 지나치지 않았음을 작곡가는 오페라 작품으로 입증했다. 스물을 넘긴 나이에 한 달도 채우지 않고 완성한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카탈루냐 음악당 객석 내 옆자리에서 콘서트 오페라 <리날도>를 관람하던 여인. 이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반가움과 선호하는 음악까지 겹쳐 우연히 마주친 동창처럼 대화를 나눴다. 런던에 거주하면서 여유가 생길 때마다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바르셀로나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 첫날 카탈루냐 음악당 일정을 잡은 이유는 지난 여행 때와 같이 시간에 쫓겨 놓치는 상황을 일찌감치 차단하기 위해서라고.


  검객이 확실하다고 판단되자 그녀의 칼이 궁금했다. 가장 아끼는 칼이 무엇인가요? 잠깐의 고민도 없이 로시니를 꼽았다. 밀라노가 선물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단다. 별 기대 없이 눈에 띄는 극장에 무심코 입장했을 뿐인데 유쾌함의 끝을 보고 나올 수 있었단다. ‘스페인의 한국 여인’이 말한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다는 오페라를 마침 예매했던지라 기다림은 자기 장기가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시간을 더디 가게 만드는 재주는, 탁월했다.


  2024년 국립 오페라단 첫 작품이 바로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국내 초연이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2월 22일부터 4일, 4회 관객을 찾았다.


  제목에서 이미 말하고 있다시피 알제리 배경이다. 태수 무스타파의 궁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태수는 늙은 마누라 엘비라를 처치하지 못해 고민하다가 좋은 수를 떠올린다. 이탈리아 젊은 노예 린도로와 결혼시키면 엘비라도 싫지 않겠지. 난? 평소 꿈꿔왔던 이탈리아 여인과 결혼하고 말이다, 하하! 해적 출신 신하 할리에게 명령을 내린다. 당장 이탈리아 여인을 찾아오라고.


  일이 잘 풀리려고 그랬는지 해안의 난파선에서 이탈리아인이 탈출하고 있다. 이런, 어여쁜 이탈리아 여인도 있다. 그렇게 이사벨라는 무스타파와 대면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웃음을 참을 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은 미모에 감탄하여, 다른 사람은 못생긴 얼굴에 기겁하여 서로를 바라보며 부르는 2중창과 이들의 속마음을 노골적으로 노래하는 환관들의 합창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인터미션을 앞둔 1막 마지막 장면에서는 대놓고 웃지 않을 수 있도록 참는 연습을 더 해야 한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을 배려하고 싶다면. 


  자유를 준다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린도로는 엘비라와 줄마(엘비라 시녀)를 데리고 이탈리아로 떠나려는데, 태수가 새로 맞이할 신부가 자기 애인임을 알게 된다. 이사벨라 또한 자기 애인을 태수가 아내에게 줘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센 언니’로 급부상하려는 캐릭터는 저를 아내로 맞으려면 저 남자를 내 노예로 달라고 떼를 쓴다. 이탈리아 여인과 어서 결혼하고픈 무스타파와 기지를 발휘해 애인을 곁에 두어 탈출 계획을 세우려는 이사벨라. 발만 동동 구르는 린도로와 남편이 야속하기만 한 엘비라, 이를 안타까워하는 줄마. 이사벨라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닐까 즐거운 의심을 시작하는 타데오(난파선에서 함께 탈출한 이탈리아인, 이사벨라의 삼촌이라고 속인다)와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는 할리의 7중창.


  극의 주요 인물이 모두 등장하여 함께, 또는 제멋대로 각자의 노래를 부르면서 난장판을 완성하고 있다. 후반에 이르러서는 틈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는 것 같아, 망치질을 하는 것 같아, 띵띵띵 ̄ 딱딱딱 ̄ 의성어 잔치까지 벌인다.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도 들리는 것 같고…….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저마다 자기 사정에 빠져서 정신없어 보이나 묘하게 하나로 모여지는 앙상블. 로시니 크레센도에 따라 점점 커지는 웃음. 아니 포복절도.


  포도를 올려다보면서 저건 신 포도야, 라고 자기합리화하는 여우는 무스타파이기도 했다. 이탈리아인이 도망간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탈리아 여인은 다 소용없다고 화를 낸다. 여장부 이사벨라의 계략으로 애인뿐만 아니라 억류된 이탈리아인까지 구해서 조국으로, 잠깐 한눈판 태수 무스타파는 엘비라에게 다시 돌아갔다. 관객 역시 일상의 제자리로 돌아갔다. 오페라 부파의 기준을 한껏 끌어올리고.


  로시니의 유쾌함은 서곡에서부터 크레센도!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리기 시작하는 선율에 활기를 얹으면서 거세지기로 작정하더니, 지금 웃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치마로사의 <런던의 이탈리아인>, 모차르트의 <후궁 탈출>을 떠올리며 새로운 오페라를 구상했을 로시니. 이사벨라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린도로 역의 테너 이기업, 무스타파 역의 베이스 전태현, 엘비라 역의 소프라노 이해원 등과 지휘자 이든,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국립합창단 등이 합심하여 무대에 올린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 1813년 초연을 마친 직후의 시끌벅적함을 되살려 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작곡가를 향한 열광을 감추지 않았을 베네치아 산 베네데토 극장 분위기를 상상하면서,


  스페인의 한국 여인처럼 나도 엄지를 치켜올렸다.



               

●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이사벨라 역 메조소프라노 키아라 아마루와 린도로 역 테너 발레리 마카로프 캐스팅과 국내 오페라가수 캐스팅을 두고 고민하였으나 국립오페라단이 해결해 주었다. ‘오페라 미리 보기’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이탈리아 두 성악가의 음색과 성량으로 무대를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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