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톡톡>
가스 안전밸브는 돌려놓았고, 전기 플러그는 다 빼놓았고……. 가만있자, 침대 스탠드를 확인하지 않은 것 같은데…… 설마 무슨 일 있겠어? 아니지! 불운은 호시탐탐 틈을 노릴 게 분명해. 발걸음을 돌린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현관문을 연다.
이런, 분리는 물론 전기선 처리까지 깔끔하다. 안도감 너머로 허망함이 밀려온다. 이삼 주 집을 비워야 하는, 여행 떠나는 날 아침은 그래서 늘 분주하다. 언젠가부턴 되돌아오는 시간까지 일정 계산에 넣었다.
가볍고 무거울 뿐이지 대다수 현대인에게 강박증이 있다. 타인이 언급하기 전까지 자신의 강박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다가 일상의 불편을 감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정신과 전문의를 찾게 되나 보다. 연극 <톡톡>의 여섯 캐릭터처럼.
스텐 박사를 만나려고 6명의 강박증 환자가 모였다. 저마다 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시끌벅적해졌다. 50년째 온갖 욕설을 시도 때도 없이 퍼붓는 뚜렛증후군 프레드(임기홍 분)가 먼저 자리를 잡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계산할 여지를 찾아내고 마는 계산벽 뱅상(민성욱 분)이, 무균실에서 살아야 본인의 폐활량 최대치를 알 수 있을 질병공포증 블랑슈(정수영 분)가 적당한 간격을 두고 등장했다.
둘의 관계가 셋으로, 관계망이 증폭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집을 머릿속에 담고 사는 확인강박증 마리(김아영 분), 같은 말을 되풀이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동어반복증 릴리(루나 분), 선을 밟는 공포에 시달리고 사물의 대칭에 집착하는 밥(정지우)까지 차례차례 병원 문을 두드렸다. 말하자면 여섯 명이 모여서 열다섯 개의 관계가 형성된 거였다.
소통의 잡음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얘기다. 욕을 먹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거나 선 좀 밟았다고 기절하는 타인을 바라보면서, 다들 다섯 빼고 난 정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저들과의 집단 치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간다.
공항에서 발이 묶인 의사는 좀처럼 도착하지 않고, 어쩔 도리 없이 함께한 시간이 쌓이고, 무료함을 없앨까 시작한 게임은 점점 집단 치료를 받는 듯 진행된다. 과감히 자신을 드러내다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다가, 서로를 배려하기에 이른다. 강박증의 여러 형태를 대변하는 여섯 배우는 케빈 베이컨 게임의 여섯 다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래,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세상 사람들을 다 아는 관계라고 볼 수 있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틈입하는 생각. 떨쳐낼 수 없는 생각이 끌어다 놓은 불안. 불안을 일시적으로나마 소거하기 위한 어떠한 행동. 강박적 생각은 강박적 행동으로, 반복 행동은 다시 반복 생각으로……. 누구보다 강박증에 시달리는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 온 마음으로 상대를 배려할 때야 비로소 나 자신을 내려놓게 되는 이들. 이 무대 작품은 그들이 함께 쥐고 있는 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하여 저마다 고유한 인물로 거듭나도록 유도한다.
2016년 초연 관람 후 다시 마주한 <Toc Toc>. 관객을 웃고 울게 하는 배우의 연기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으뜸은 군살 없는 플롯의 매력이다. 이는 이야기를 밀고 가는 힘으로 작용한다. 프랑스 극작가 로랑 바피의 필력을 온전히 느끼게 한다. 관객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선을 밟도록 부추긴다. Toc, Toc. 똑, 똑. 문을 열어주세요. 여섯 캐릭터의 조각들은 당신의 일부분이기도 하잖아요.
벌써 10만여 명이나 강박증 치료 권위자 로랑 바피에게 진료를 받았다. 그중 한 관객인 나, 세 번째 진료 시간을 예약할지도 모르겠다. 무지개 일곱 색깔의 중심인 초록을 좋아하는 밥의 캐릭터를 배우 윤은오는 어떻게 대칭적으로 소화할까. 그가 출연한 뮤지컬 <오즈>의 양철, <버지니아 울프>의 조슈아와 또 다른 ‘순수’를 찾을 수 있을지도. 그것은 정확하게 가운데 가르마를 탄 헤어스타일을 닮았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