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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뛰르 Jun 24. 2024

강물이 이야기처럼 흘러, 나다운 곳으로

뮤지컬 <버지니아 울프>, 뮤지컬 <브론테>

ⓒ할리퀸크리에이션즈


  4월 23일.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같은 해, 같은 날에 사망하여 날짜 정하는 데 이견이 없었을 ‘세계 책의 날’이다. 국내 창작 뮤지컬 <버지니아 울프>의 초연 개막일은. 부여한 의미가 강물을 떠다니다 햇살을 만난다.


  주머니 가득 돌을 집어넣고 강에 투신자살한 애들린 버지니아 울프. 극에서는 죽지 않고 새로운 시공간으로 이동한다. 쓰러진 여인을 조슈아가 발견하고 그의 방으로 데려간다. 인쇄소에서 해고당한 상황이라 누군가를 도와주기가 곤란한데 깨어난 여인은 정신까지 이상하다.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해댄다. 뭐, 전쟁 중이라고?


  가까스로 애들린은 자신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 속 세상으로 들어왔음을 깨닫는다. 그러니까 여기가 1927년 런던이란 말이지? 쟤는? 소설 속에서 자살한 셉티머스의 대자이자 에반스와 레치아의 아들? 직접 등장한 적은 없다.


  2인극. 그들이 처음 함께 부르는 넘버는 ‘불길한 기대감’이다. 작가지망생인 조슈아는 전형적인 삼류 로맨스 소설에 나올 법한 현실을 바라보고, 고난이 닥친 인물의 조력자가 바로 쓸데없이 마음만 약한 자신임을 한심해하면서도 둘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로 한다.


  무심코 펼친 여인의 소설만으로 그녀가 대작가임을 확신 조슈아는 글쓰기를 가르쳐달라고 조른다. 뒷걸음치다가 그의 절실함을 읽어내고 진지하게 다가서는 애들린. ‘원고지 앞에 필요한 것’에서 애들린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노래한다. 이윽고 소설만으로 크나큰 도움을 주는 소설가를 호명한다. 제인 오스틴, 토마스 하디, 브론테 자매.


  브론테 자매를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이야! 그들을 앞서 만났다. 그러니까 벚꽃이 한창인 이른 봄,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세 자매 작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곳으로 대학로 링크아트센터는 기억 창고에 자리를 잡았다.


  글쓰기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겼던 빅토리아 시대에 가난한 목사의 딸로 태어난 자매는 글이 자유를 선물해 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지어낸 남성 이름을 방패 삼아 자비로 첫 책을 출판하면서 금단의 영역에 발을 내디뎠으나 반응이 싸늘했다. 어떤 절망이 찾아와도, 어떤 비난이 쏟아져도 멈추지 않는 자매의 열정. 요크셔 벌판에서 유일한 행복은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독자이자 비평가가 되어 때로는 비수를 던지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유로웠다. 글을 통해 숨을 쉬었으므로.


  이러한 서사에 선율을 입힌 노래가 울림으로 다가오고, 작가의 책상 서랍을 열어보는 듯한 이미지가 인상적인 무대에서 배우들이 그림자극을 만드는 연출도 돋보였던 뮤지컬 <브론테>. 그 여운을 끄집어내어 이어준 <버지니아 울프>.


  샬럿의 『제인 에어』,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 등의 글은 태생적인 차별을 뛰어넘고 반세기를 살아남아 애들린으로 하여금 남성 중심 영국 문단의 견고한 유리벽 앞에서 좌절을 견디게 했을지도. 창작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했을지도.


  자신이 쓴 소설 안으로 들어간 작가는 허구 인물을 만난다. 고단한 삶을 내려놓으려던 작가는 허구 인물의 꿈을 잡을 수 있는 별로 만들면서, 허구 인물은 작가의 의지대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응원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애들린과 조슈아는 이렇게 이야기 안에서 새로운 삶을 창작한다.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의 원형 무대 가장자리는 강줄기다. 보이지 않는 강물이 이야기처럼 흐르고 있다. 존재하려면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애들린 역의 박란주와 그녀의 존재를 활자인 양 새기는 조슈아 역의 윤은오, 두 배우가 함께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수면에 햇살을 뿌린다. “이야기의 결말은, 그가 내게 되물었어요. 어디로 흐르고 있느냐고, 난 대답했죠. 난 가장 나다운 곳으로 흐르고 있다고. 쉼표도 마침표도 온전한 나의 의지로 찍겠노라고.”


  마지막 순간까지 본인의 의지로 선택한 작가의 삶에 상상을 밀어 넣으며 접근한 뮤지컬. 개막일에 부여한 의미가 반짝이는 탓에 꽤 많은 관객이 작가의 책을 펼칠 것 같은 예감.       


ⓒ네버엔딩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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