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하게 생각했던 순간
31살이 내가 두 번째로 겪는 사춘기 같았다.
‘무슨 일 하세요?‘. ’ 빵 만들어요.’라고 말하는 순간이 때로는 초라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의 두 가지 유형이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같아 부럽다. 거나 초라한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무심한 대답들. 애초에 남의 대답에 기준을 삼는 게 아닌데 그때는 열등감이 똘똘 뭉쳤다. 이 일을 잘 해내는 나를 칭찬해주진 못할 망정, 더 좋은 직장이나 연봉을 받는 사람들에게 나의 직업을 소개할 때 특히 내가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좋은 직장이 뭔지 모르겠다. 그리고 고액연봉자들 중에 능력에 비해 과대평가된 사람은 없다고 느낀다.)
하여튼, 그런 열등감에 똘똘 뭉친 어린 20대를 보냈다. 그래도 줄곧 일하고 싶었던 회사에서 일하며 그 정도에 만족했다.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관심사가 같은 사람을 만나면 질문 지옥에 가둬버리고 안놔준다. ‘쟨 친구는 있을까‘ 싶겠지만 요식업의 친구들이 나의 일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난 일친구로부터 자리를 제안받았다.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기 위한 선발 주자로. 생각해 보면 형체도 없는 상태에서 나는 뭐 때문에 그 일을 하고 싶었을까? 직전에 안정적인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톡톡한 수당으로 제빵 업계에서도 꽤 괜찮은 돈을 받을 수 있었고, 회사의 형태라 개인 시간에 사이드잡을 해도 될 정도로 워라밸이 갖춰졌는데 말이다. 그 단조롭고 편안함에서 오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걸까.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배가 불렀다, 덜 굶었다 같은 말을 했지만 0부터 시작해서 매장과 그곳에서 판매할 빵들을 만들고, 새로 이사한 집을 꾸미듯이 이 집을 잘 지켜줄 것 같은 친구들과 매장을 채웠다. 정신없이 반년이 지났을까?
또다시 찾아온 직업적 회의감.
함께 시작했던 일친구와 마찰이 커지면서 심리적으로 많이 지쳤다. 체력이 좋지 않은 이 몸은 이미 지쳐있었지만 모른 척하다가 이 순간에 충돌한다. 이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을 매일 해내는 건 수련 같았다. 그래서 이 일을 존경하지만, 높은 가치로 평가될 미래가 있는지는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요즘 편의점에서 바이럴 되는 디저트를 만드는 공장의 기계는 시간 대비 사람 1명의 생산량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매일 같은 레시피를 수없이 반복하면 신입 제빵사도 제품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 않다. 기계나 나보다 낮은 월급을 받아도 똑같은 걸 만들어낼 수 있는 대다수의 제빵사가 날 대체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럼 창업을 해야 하나? 어떤 신문에서 20대 여성이 가장 꿈꾸는 일에 ’ 인플루언서’ 이전엔 ’ 카페 창업’이 있었다. 난 그걸 볼 때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창업은 달콤한 꿈이 아니라 사업이잖아. 목적은 ‘이 돈 받고는 도저히 못살겠어요! 뭐 해서 먹고살지 모르겠어요.‘ 같은 현실적인 고증을 안고 도박 같은 미래를 시작하는 거 아닌가. 지독하게 영업 이익을 일으켜야 하는 일에 밥은 무슨,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을까 싶은 생각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생각이 나를 가득 채워서 어느 순간 일을 하고 있는 내가 기계 같았다. 처음으로 친언니보다 많은 월급을 받았는데도 기쁘거나 삶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에게 10년쯤 일했던 이 일을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오만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직장을 관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