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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an 24. 2024

정상피로

당연하게도 피곤한 삶, 그것이 지닌 가치.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고맥락-저맥락 문화'

 한국은 몇 안 되게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만한 고맥락사회 입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과 생활할 때 눈치코치가 많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고저가 미개함과 우월함을 말하는 건 아니고 단지 수치상 높고 낮음을 뜻합니다. 뭐 한국에서 살아보면 알잖아요. 얼마나 사람들이 눈치를 많이 보는지.


 한국인은 남 눈치를 많이 본다. 질문을 잘 안 한다. 너무 공동체 중심적이다. 버스킹 문화가 적다... 한국만의 경직된 느낌은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진짜 솔직히 질문할 때 눈치 보이잖아요.

(남들 시간 뺐는 거 아냐? 이상한 질문 했다고 욕먹는거 아냐? 강사님은 피곤하지 않으신가?... 외 다수)


 저는 그걸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런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보기엔 남 눈치 보느라 사회가 너무 경직된다 말할 수 있지만... 제가 볼 땐 젠틀하고 매너 있는 거라 생각하기도 하거든요. 남을 배려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않나요?




 고맥락 저맥락은 좋다 나쁘다 개념보다는 라이프 스타일 차이에 가깝습니다. 부정적으로 보면 부정적이고 긍정적으로 보면 또 긍정적일 수 있으니까요 . 동양권의 고맥락 사회가 저는 어느 정도 사회 발전에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보면 결국 일 잘하는 사람들은 다 눈치 빠른 사람들입니다.


 물론 단점도 있죠. 제가 볼 때 고맥락 사회의 최고 단점은... 개개인의 스트레스. 눈치 보는 게... 편안한 일은 아니잖아요. 눈치가 도덕인 세계. 말로 하니까 되게 폭력적인 느낌이네요.


 아무래도 고맥락 사회에서의 삶은 쿵짝이 잘 맞으면 이렇게 좋을 수 없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기에 어느 정도 피로를 동반합니다. 한국인들이 항상 피로에 절어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도 있지 않나 싶어요. 열심히 일하면서도 눈치 보고 집 갈 때도 눈치 보고 집 가서도 눈치 보는 것. 고맥락 사회인 한국이 보통은 저에게 살기 편한 편이지만... 지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 그게 제 만성피로의 원인이겠죠. 뭐 어디 가나 일도양단이 있는 법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고단할 때가 많긴 합니다.  피로가 우리나라의 장소성이라면 좀 슬프긴 하네요.


 근데... 살다 보면 여기 한국에서도 되게 신기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체력이 어떻게 저렇게 많을까. 피곤함을 전혀 느끼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 뭐 나쁜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눈치가 있는 편이라 느낀 적은 없었네요. 혹은 억지로 눈치를 안 보려고 노력하는 게 느껴지는 사람. 딱히... 배려를 할 수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체력좋은 사람이 틈만 나면 내뱉던 '힘내면 힘이나'라는 말을 듣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사람 지친다는 개념이 뭔지 모르는구나. 그럴만하죠. 제가 술자리에 앉는 순간 느껴지는 수백 개의 정보들이 그 친구는 느껴지지 않을 테니. 누군가의 한마디에 별의별 생각을 할 필요도 없고. 피곤할 이유가 있겠어요? 무엇인가 잔뜩 깔린 컴퓨터보다는 한컴과 파워포인트 그리고 인터넷만 띡 있는 컴퓨터가 훨씬 빠르고 전력소모도 적고 오래갈 수밖에요.


그런 사람을 보면 참 편하겠다 생각을 합니다. 처리해야 할 일이 한참 줄어들 테니... 뭐 그렇게 부럽지는 않습니다. 저는 모르는 게 더 공포스러운 편이라. 대부분의 일은 모르는 게 약이지만. 약이 싫으면 별 수 있나요. 맛없잖아요.



 저는 언제나 피곤에 찌들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그만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들이 너무 싫다가도 없으면 죽을 것 같기도 합니다. 눈치는 보통 길러야 한다고 하죠. 저는 아무래도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사랑받기 위해서 어울리지도 않는 뇌 근육을 기른 건 아닌가 생각을 가끔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눈치보는 제가 싫진 않는 것 같아요. 제 기준에선 눈치 없는 사람이 더 싫거든요. 


 하고 싶은 말은 그겁니다. 요즘은 되게 눈치 많이 보는 게 손해처럼 말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알파메일'이라든지 혹은 무기력감을 깨우는 수많은 자기 개발 영상들... 사실 저는 다 웃길 때가 많습니다. 그냥 여기선 피로한 게 정상이거든요.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그건 이어질 것이고... 저는 그걸 너무 나쁘지 않게 생각했으면 할 뿐입니다. 그만큼 분명 더 편한 것도 있거든요. 베푼 배려는 10년이 걸려서라도 돌아온다 생각하기 때문에. 체력이 좋은 사람들은 아무래도 총량이 큰 것도 있겠지만... 남을 신경쓰지 않으니 소모 값이 적은 것도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본일을 중시하는 일. 개인의 성취를 위해서라면 좋을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함께하는 사람들과 같이 가고 싶습니다. 그게 평생 저를 쫓아다니는 검은 외로움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길이니까.


 요즘 느끼는 게 좋고 나쁜 건 잘 없는 것 같습니다. 단점이 크게 느껴지나 장점이 크게 느껴지나 차이 정도. 저 역시 그냥 맥락의 장점을 더 크게 느낄 뿐이겠죠. 남 눈치 안 보고 사는 것도 자유지만. 고맥락 사회에서 손해 보는 건 감수해야 한다 생각해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이 이동할 순 없으니까요. 세상이 잘못된 게 아니라. 단지 당신이 조금 다를 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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