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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쥬쥬 May 13. 2024

4. 아이는 즐거운 던젼 VS 엄마는 불편한 휴식

드디어 던젼 입성이다. 유치원안에 들어가면 바깥의 어두운 기운과 반대다. 친구들은 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오늘의 놀이를 계획하며 와글와글 떠든다. 설렘가 반가움의 기운이 유치원안을 따뜻하게 만든다. 등원 때의 긴장감은 사르르 녹아 버린다. 보통 오전 시간에는 괴물이 없다. 몽글몽글 밝은 분위기가 괴물화를 막아준다. 


"띠링"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쥬쥬는 유치원에 오자마자 잘 놀고 있다고 한다. 믿어지지 않는다. 좀 전까지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했는데... 선생님이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일 수 있다는 의심이 든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오자마자 괴물로 변해 돌아다니는 친구가 있다. 괴물이 된 그 친구는 형상이 흐려져 유령처럼 떠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다. 나는 이 괴물에게 벙어리 괴물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벙어리 괴물은 해가 되지는 않는데 말을 안 해 답답하게만 한다. 벙어리 괴물은 그냥 놔두는 편이다. 어차피 내가  마법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풀린다. 언제는 잡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몸에 형태가 뚜렷해지더니 꺄 소리를 지르며 말을 했다. 정리시간에도 눈 깜작할 사이에 괴물화가 풀려 장난감의 바른 자리를 친구들에게 가르치고 있었다. 


별수 없이 집에서 쥬쥬를 기다린다. 쥬쥬가 돌아오면 일에 진행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미리 빨래며 집안 정리, 설거지를 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쉬는 것도 해 둬야 오후부터 아이가 잠들 때까지 쉼 없어 몰려오는 일들을 해낼 수 있다.


난 유치원에서 오자마자 괴물들과의 싸움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기 영역으로 가 마법 도구들을 만든다. 주로 마법지팡이, 배지등을 만든다. 배지를 만드는 방법은 종이를 찢거나 오려 그 위에 그림을 그리면 끝이다. 그것을 친구들에게 붙여 주거나 지니게 하면 괴물화를 미리 막을 수 있다. 만들기를 하거나 다양한 유치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다 보면 점심시간이 된다. 나에게 가장 힘든 시간이다. 점심시간은 나에게 다양한 미션이 주어진다.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기, 모든 반찬을 한번 이상은 다 맛보기, 입안에 음식이 있을 때 말하지 않기, 손으로 먹지 않기, 너무 빠르게도 느리게도 먹으면 안 된다. 이 미션들을 성공시켜야만 선생님의 괴물화를 막을 수 있다.


집안일을 얼추 해놓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남을 집안일을 하다가 시계를 확인한다. 작은 바늘이 2를 가리키면 하던 것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쉰다. 


오늘도 아슬아슬하게 선생님의 괴물화를 진행시키지 않고 점심시간을 끝냈다. 점심을 먹고 나서 개인 물컵에 물을 마신 후 물컵에 남아있는 물기를 바닥에 턴다

"쥬쥬! 잠깐 선생님한테 오세요."

선생님이 왜 나를 부르시지? 느낌이 안 좋다. 선생님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초리가 매섭다. 나는 선생님에게 천천히 걸어간다. 선생님은 내가 물을 바닥에 버렸다고 하신다. 아니다. 난 그냥 물기를 털었을 뿐이다. 갑자기 눈물이 눈앞을 가린다. 선생님의 말을 정정해 주고 싶지만 말이 안 나온다. 내가 울기 시작하면 선생님은 꼭 괴물로 변해 버린다. 눈물을 참아야 하지만 멈출 수가 없다. 선생님은 왜 우느냐고 물어보시고 나는 말이 없다. 십여분이 지나자 선생님의 미소 짓고 있는 입꼬리가 귀까지 찢어지고 눈썹은 일자가 되고 눈은 옆으로 벌려지면서 낮아진다. 괴물이 된 것이다.


피곤해서 한숨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어젯밤 쥬쥬가 깨서 잠이 안 온다고 칭얼거리며 내 잠자리로 와 같이 잤다. 난 잠귀가 밝고 예민해서 옆에 누가 있으면 잠을 잘 못 잔다. 밤새 잠이 안 온다고 등을 두르려 달라고 하기도 했고 쥬쥬가 잠들어도 불편해서 선잠을 잤다. 졸릴 것 같은데 이상하게 더 정신이 또렷하고 민감해진다. 소중한 휴식시간의 낮잠은 잘 성사되지 않는다.  


"왜 울어요? 울지 마세요."

나는 눈물을 흘리면 멈추는 방법을 잘 모른다. 울다 보면 왜 우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냥 내 몸에 저장된 눈물양을 다 쏟아내야 멈춰진다. 괴물은 '왜 울어요? 울지 마세요'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다. 내가 아무 반응도 없이 울기만 하니까 흥미를 잃었는지 '왜 울어요? 울지 마세요'를 말하면서 교실로 들어간다. 괴물이 나한테 멀어지자 내 눈물이 잦아졌다. 지금이 기회다. 아까 만들어 두었던 배지와 비장의 무기인 마법의 편지를 꺼낸다. 편지는 공주 그림을 그리고 '사랑해요, 고마워요'라고 적어 놓은 것이다. 먼전 괴물에게 다가가 배지를 달아준다. 잠시나마 괴물의 힘을 약화시켜줄 것이다. 괴물은 반복적으로 하던 말을 멈추고 가만히 서있는다. 이제 반으로 접혀있는 마법의 편지를 건네준다. 괴물은 편지를 펼쳐본다. 괴물의 얼굴이 서서히 원래의  선생님 얼굴로 돌아와 웃는다.


"띠링"

선생님께 연락이 또 왔다. 쥬쥬가 물장난을 해서 혼나다가 한참을 울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마무리되어 잘 놀고 있다고 한다. 집에 가면 위로해 주라는 내용이었다. 문자를 읽고부터 마음이 불편하다. 완벽하게 쉼을 추구하고 싶은데 걱정이 밀려온다. 누워있는데도 피로가 쌓이고 있다. 


유치원 일정은 모두 끝났다. 이제 놀면서 엄마를 기다리면 된다. 이 시간에도 친구들과 선생님의 상태를 살피고 마법 도구를 만들고 있는다.


벌써 3시 30분이다.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다른 엄마들처럼 예쁘게 차려입고 나가고 싶지만 잠깐의 외출을 위해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깝다. 10분만 더 누워있다. 츄리닝 차림으로 급하게 밖으로 나간다.  


선생님께서 엄마가 왔다고 알려주신다. 가방과 겉옷을 챙겨 나갈 준비를 한다. 현관문 쪽으로 가자 열려있는 문 앞에서 엄마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엄마의 얼굴을 보자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아지지만 선생님 앞에서는 그 기분을 숨긴다. 나는 신발장에서 신발은 꺼낸 다음 오른쪽과 왼쪽의 신발이 정확한지 확인하고 신발을 신는다.  신발을 다 신고 나면 양손을 배꼽에 놓고 허리를 숙여 선생님께 인사하고 엄마에게 간다. 


쥬쥬가 유치원에서 나오고 있다. 하루 중 아이가 가장 멋져 보이는 순간이다. 스스로 의연하게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 신는 모습이 귀엽고 대견하다. 집에서 내내 걱정했던 게 우스워진다.   


"엄마!"

"쥬쥬 오늘은 유치원 어땠어?"

"나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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