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많이 아프고 아빠가 [장을 담아왔다]
이거 한번 먹어봐라. 세상에, 짜지도 않고 깊고 깔끔하다.
집간장 한 스푼을 떠서 내 턱 밑까지 들이대며 엄마가 말했다. 아이, 싫어. 짜. 나는 고개를 뒤로 뺀다. 진간장이라면 몰라도 옛날부터 집간장 특유의 짠내가 싫었다. 하지만 엄마의 간장 숟가락은 확신의 일보전진을 한다.
아니야. 안 짜. 조금만 찍어 먹어 봐. 얼마나 맛있는데. 이번 장이 정말 잘 됐어.
뭘 강요하는 법이 없는 엄마이지만 가끔은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기어이 나에게 먹일 기세여서 이쯤에서 타협하기로 한다. 손가락으로 간장을 콕 찍어서 혀 끝에 살짝 묻혔다. 띠옹. 다시 한번 콕. 콕.
내가 아는 집간장의 맛이 아니었다. 전혀 짜지 않았다. 푸른 먹빛이 감돌았지만 맑고, 좋은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입에서는 깔끔하고 깊은 맛이 난다. 재미있는 건 장에서 약간의 점성이 느껴진달까, 바디감이 있는 발사믹 오일이 생각났다. 빵을 찍어먹고 싶을 정도의 감칠맛이 났다.
조선시대에는 집에 손님을 초대하면 씨간장을 웰컴푸드 또는 애피타이저로 올렸다는데 엄마 간장 맛은 정말 그럴 만하다. 실제로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면 엄마가 나에게 하듯 찍어 먹어보라고 간장을 들이밀고 집에 갈 때 병에 담아 들려 보내곤 했다. 지금도 모든 요리에 엄마 간장을 쓴다. 국 끓이거나 나물 무칠 때는 기본이고 모든 음식에 소금 대신 간장으로 간을 맞추곤 한다. 심지어 죽에도 간장을 넣어서 먹는다. 얼마 전에 간장을 푸는데 간장독의 바닥을 긁었다. 다 먹었다는 얘기다. 아빠는 설 지나고부터 엄마를 붙들고 장 타령을 했다.
여보, 장 담가야지. 언제 담그지?
걷지도 못하고 인지와 기억력 모두 떨어지고, 어느새 말도 잃어버린 엄마를 붙들고 말하는 것이 애처로울 정도였다. 장부심 넘치는 엄마, 좋은 메주 구하고, 좋은 날 잡아서 장 담그는데 정성을 다하고, 애 키우듯 지켜보고 기다리고, 잘 되면 나눠 먹는 것을 삶의 재미로 알던 엄마가 장 담근다고 하면 벌떡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을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아빠가 장타령을 해도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싶어서 장 담그는 법을 인터넷에 찾아보긴 했다. 재미있는 것은 장 담그기=된장 담그기=간장 만들기라는 점이다. 일단 메주로 된장을 담아서 60일 이후에 장 가르기를 하는데, 소금물을 먹은 메주를 건져내고 남은 소금물이 간장이 되는 거였다. 이거 재밌네. 하지만 포기했다. 말날(마지막 날이 아니고 십이지간지 말에 해당하는 날, 그날 물맛이 좋다나, 말이 콩을 좋아한다나 뭐라나 이유도 다양하다), 손 없는 날을 따져 담그는 날을 정하는 것부터가 머리가 아팠다. 엄마랑 장을 담그면 얼마나 좋을까. 왜 엄마에게 장 담는 것을 배울 생각을 못했을까. 무슨 자신감으로 엄마가 천년만년 나에게 발사믹 같은 장을 담가줄 거라고 생각했을까. 엄마 없이 장 담글 기분이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빠가 밖에서 장을 담가서 가져왔다.
아빠 친구 부인이 담가줬다는 것이다. 아빠가 밖에서 낳아온 자식처럼 기분이 이상했다. 그래도 우리 집에 왔으니 항아리에 옮겨 담아야겠지. 장을 항아리에 옮겨 담았다.
엄마 아빠가 영심이네서 장 담가왔는데 먹어볼래?
역시 대답이 없다. 나는 엄마가 나한테 하듯 된장을 엄지 손가락으로 콕 찍어서 엄마 입에 넣어 주었다. 엄마 인상이 일그러졌다. 엄마 왜?
에이, 짜. 맛없어.
엄마의 반응에 아빠와 나는 웃음이 터졌다. 말도 없고 표정 변화도 없던 엄마가 장에 반응하는 것도 신기하고, 맛없다고 하는 것도 웃겼다. 아프기 전 엄마는 남의 호의에 이렇게 예의 없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길래. 나도 된장을 찍어서 먹어 보았다. 너무 짜다. 숙성이 되면 맛이 좋아질지는 몰라도 우리 장맛이랑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역시 장맛은 엄마인데, 엄마는 많이 아파서 다시 장을 담글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저나 아빠가 밖에서 낳아온 저건 어쩌지. 우리 식구는 맛없는 건 먹어도 짠 것은 못 먹는다. 장을 대신 담가주신 마음은 고맙지만 큰 근심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