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많이 아프고 나는 [엄마와 말하고 싶다]
어제까지 불러도 눈도 못 뜨던 엄마가 눈을 떴다.
소처럼 순하게 생긴, 나는 닮지 않은 엄마 눈의 한 가운데 까만 눈동자가 제대로 자리 잡았다.
엄마, 일어날까?
모기같은 소리로 응!이라고 대답한다. 잘 잤어?라는 물음에 대답이 없다. 어제까지 팔에 힘이 들어가 뻗치는 강직이 있었는데, 오늘은 팔이 부드럽다. 손에 깍지를 껴보라고 하니 서서히 양손의 손가락을 맞댄다.
화장실 갈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응!이라고 한다. 앞에서 잡고 뒤에서 잡고 엄마를 화장실에 데려간다.
배 고프지? 밥 먹을래?
입맛을 다시며 응!이라고 한다. 그래도 먹을 궁리는 하네. 계란국 먹을래? 곰국 먹을래?라는 질문에는 답변이 없다. 곰국에 밥을 말아서 입에 넣어준다. 오물오물 부지런히 움직이며 씹는다. 엄마의 입 속에는 생명의 에너지가 넘친다.
엄마가 다시 살아났다. 어제만 해도 엄마가 죽는 줄 알았다.
얼마 전처럼 이럴 바에는 빨리 떠나던가, 생각했다. 지금은 그건 아니다. 하지만 언제고 올 상황이니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엄마가 죽게 되면 제일 먼저 뭘 해야 하지? 또 한 명의 보호자 동생에게 연락해야겠지. 남편도 깨워야 할 거고. 언제 나가게 될지 모르니까 지금 씻고 가방을 먼저 싸놓을까? 가족끼리 조용한 장례를 치르고 싶지만 안 되겠지. 화장하면 우리집으로 데려가서 감나무 아래에 묻어주고 싶은데 친척들이 뭐라고 하면 어쩌지. 우리 집이 장지면 친척들이 우리집까지 따라오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까무룩 잠이 들었다. 하룻밤 사이에 죽음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오늘은 생명의 에너지가 넘친다. 엄마가 눈만 꿈뻑, 입만 벙긋해도 나는 세상을 긍정의 단어들로 묘사할 수 있다. 세상은 살 만 하고, 인생은 아름답고, 모든 것이 희망적이고, 마음은 잔잔한 호수를 보듯 편안하고 평화롭다. 더 바랄 게 없이 행복하다. 유효기간이 1시간 정도라서 그렇지.
1시간쯤 지나니까 엄마의 죽음을 상상하면서 숨죽이거나 포기했던 욕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지금 서는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영영 서기 힘들어요, 의사의 말이 귓가를 울린다. 성급하게 엄마를 일으켜 세운다. 엄마가 불안하게 서 있다. 몸이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좌우로 기울고, 무릎이 휘청거리고, 허리가 서서히 앞으로 숙여진다. 1분도 서 있지 못하고 의자에 주저앉는다. 나는 휴식시간에 링에 올라간 코치처럼 핫팩으로 몸을 덮고, 따뜻한 차를 대령하고, 아로마 오일로 무릎 마사지를 한다. 이건 순전히 다시 링에 올리려고 제공하는 서비스다. 잠시 서 있는 듯 하더니 다시 주저 앉는다. 영조가 마셨다는 강계다음(계피, 생강, 대추, 귤껍질을 우린 약차)이나 통증을 완화시켜준다는 비싼 아로마 오일도 엄마의 몸에선 무력하다. 죽었다 살아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했는데, 1시간 안에 엄마를 일으켜 세우고 싶고, 걷게 하고 싶고, 일방형, 단답형, 기능성 응답이 아닌 쌍방향 소통, 잉여로운 대화를 나누고 싶다.
갑자기 신이 묻는다.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걷는 것과 말하는 것,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뭘 선택할 거냐고.
쓸데 없는 생각인 줄 알지만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상상 속인데도 선택하기가 힘들어서 괴롭다. 엄마는 걷는 것도 좋아하고, 말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나도 그러니까. 어느날은 엄마 손을 잡고 나가서 걷고 싶고, 어느날은 누워서 대화라도 하고 싶고. 만약 신이 오늘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대화를 선택할 것이다. 오늘 유난히 엄마와의 대화가 그립다. 날도 좋아지고, 먹거리도 풍부해지고, 특별한 날도 많고, 이야기거리가 많은 계절이어서 그런가 보다. 엄마 벌써 5월이야, 이렇게 한 마디만 하면, 엄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게 벌써 5월이네. 5월이라고 벌써 햇빛도 다르고, 공기도 다르고. 산책하기 좋은 계절이다. 가만 보자, 내일 아버님 제사네. 우리 아버님은 자식들 고생 안 시키려고 참 날 좋을 때 돌아가셨어. 장사 지내던 날도 오늘처럼 날이 그랬다니까. 나도 좋은 날 가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려나. 그것도 복이야 복. 그러니까 우리가 부모님 복이 있었던 거지.
이번 제삿날에는 쑥떡을 해서 가져가야지. 제사상에 올릴 건 아니고 우리 형님 드시게. 형님이 내가 만든 쑥떡을 그렇게 좋아해. 쌀도 좋은 걸 쓰고 설탕도 안 넣고 쑥이 많이 들어가거든. 봄은 참 좋은 계절이야. 냉이에 쑥에 지청구에 미나리에 땅에서 나는 것들을 먹을 수 있잖아. 세상에 땅이 얼마나 신기하니. 이렇게 맛있는 걸 막 내어주고 말이야. 쑥떡을 해서 여기저기 나눠 먹는 것도 재밌잖아. 그렇다고 아무나 주기는 아깝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주는 거지 뭐. 띠동갑나는 동서지간인데 이제 갈이 늙어가니 친구 같아. 형님도 나를 의지하고, 나도 형님을 챙기게 되고. 서로 의지가 되니 든든하고.
참 이번 어버이날 올 필요 없다. 형님이랑 흑염소 먹으러 가기로 했다. 형님 입맛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닌데 거긴 참 좋아해. 흑염소가 여자들한테 그렇게 좋다잖아. 너도 한번 먹어야 하는데. 흑염소가 여자들에게 좋다지만 아빠도 끼워줘야지. 기사도 필요하니까. 형님도 아들보다 시동생을 더 편하게 생각하고.
먹고 날 좋으면 바람 쐬러 갔다와야지. 형님이 멀미가 있어서 멀리 모시고 가지는 못해. 그냥 가까이. 나이 들면 먼 여행도 별로고 가까운 데, 조용한 곳이 최고야. 형님이 저렇게 건강하니까 너무 고맙지. 애들 걱정도 안 하고. 건강하시니까 오래 사실거야.
참 어린이날 지원이 선물해줘야지. 지원이도 이제 다 컸다. 직장 다니면서 지원이 키우느라고 너도 고생했다. 이제 다 키워놨으니 실컷 놀러 다녀라. 나는 이제 늙어서 못 가지만 너네 많이 놀러 다닌다고 하면 좋더라. 젊을 때, 날 좋을 때 많이 다녀. 나중에는 가고 싶어도 못 가니. 인생이 뭐 별 거 있나. 좋은 거 먹고, 놀러 다니고 그러면서 사는 거지.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니까 너무 아끼려고 하지 말고. 돈 쓰러 다니기 얼마나 좋은 계절이니.
엄마의 말은 화수분 같다.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의 정체성, 삶의 의미, 행복의 정의, 잘 사는 기술을 길어낼 수 있다.
엄마는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에 서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보여주었다. 사랑은 어떻게 하고, 행복은 어떻게 가꿔야 하는지, 사랑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엄마에게서 듣는 사람 이야기, 먹는 이야기, 계절 감각, 그리고 유머와 다정함은 나를 생기있고 풍요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엄마와 마지막 대화는 작년 초겨울에 멈춰 있다. 김장 담글 때만 하더라도 엄마는 기운이 없었지, 말은 살아있었다. 김장을 담근 후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고, 병원에서 섬망이라는 것을 경험한 이후 엄마의 인지와 기억력은 급격하게 떨어졌고 극기야는 엄마만의 다정하고 섬세한 말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저렇게 삶을 밀도 높은 행복으로 채워가던 우리 엄마는 어디 간 걸까? 도대체 어디서 방황하고 있는 건가. 알려주면 내가 갈텐데. 가서 엄마를 데려오거나 거기서 엄마랑 머물텐데. 엄마와의 대화가 사라지니 견고해보였던 정체성이 휘청거리고 삶의 기술과 의미가 혼란스럽고 머리는 멍하고 마음이 허하고 정신이 빈곤하다. 엄마의 말이 돌아올 수 있을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엄마의 말이 무척이나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