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만들어보는 쑥떡
냉장고 구석에 쑥이 처박혀 있다. 지난주 온달산성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쑥을 한 줌 뜯어왔다. 쑥만 보면 채집하게 되는 못 말리는 채집 유전자 보유자에 쑥만 보면 엄마 생각이 나서 뜯어는 왔는데 양도 애매하고 마땅히 어떻게 먹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산속에서 뜯어온 쑥인데, 썩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그래, 결심했어.
쑥떡을 만들기로 했다.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은 난생처음 쑥떡.
엄마가 쑥떡을 정말 좋아한다. 채집인인 내가 쑥을 캐서 엄마에게 보내주면 엄마는 쑥버무리 해 먹고, 쑥절편을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두고 귀한 곶감 빼먹듯 하나씩 빼먹곤 했다. 귀한 거라 아무나 덥석 덥석 주지도 않고 정말 친한 친구들에게만 내어주곤 했다.
엄마는 보기보다는 입맛이 까다롭다. 형편에 비해 엥겔지수가 높고, 누가 보면 부잣집 사모님인 줄 알겠는 입맛 보유자이다. 어디 나가서 까다롭게 구는 건 아닌데 가족들과 먹을 땐 엄마만의 엄격한 기준으로 식재료를 구하고 요리를 했다:
쑥떡의 경우 쑥은 농약이나 공해에 영향을 받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자란 깨끗한 쑥이라야 하고, 떡에는 설탕이 1도 들어가면 안 된다. 그러니 시중에 파는 떡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시중의 떡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설탕이 안 들어갈 수가 없다. 그렇게 까다로운 입맛 탓에 자기 손으로 만들어 먹을 팔자인 것이다.
나도 엄마의 영향을 좀 받았다. 웬만하면 이것저것 내 손으로 해 먹는 편이지만, 그래도 떡을 만들어본 적은 없다. 떡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있으면 집어먹긴 해도 일부러 사서 먹고 그러지는 않는다. 그런 내가 한 줌의 쑥을 버리지 못해 떡갈 생각을 하다니. 나도 엄마 팔자를 닮으려나 보다.
엄마가 저러고 누워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하니 내가 기댈 곳은 유튜브밖에 없다. 집에서 쑥떡 만드는 법을 찾는다. 믹서기와 밥솥으로 떡을 만드는 방법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레시피를 고르는 것도 일이다. 개중에 왠지 손이 가는 영상을 눌러서 몇 개 본다. 그리고 대충 원리를 파악한 다음,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떡을 해보기로 한다.
찹쌀 불린 거랑 쑥 넣어서 갈고, 그 반죽을 전기밥솥에 넣어 취사를 누르면 끝. 쉽다. 바로 실행. 그런데 안 된다. 일단 뻑뻑해서 믹서기가 돌아가지 않는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빠가 물을 더 넣으라고 한다. 그건 레시피에 없었는데, 물을 더 넣으면 떡이 안 될 거 같은데, 뭐가 되긴 하려는지 걱정이다. 믹서기가 계속 힘들다고 징징대니 어쩔 수 없이 레시피 밖으로 나가 물을 붓는다. 물은 먹은 믹서기가 일 좀 해보려고 하더니 결국 나가떨어진다. 오랜만엔 시키는 일인데 이것도 못하냐며 믹서기를 계속 닦달해 본다. 앓는 소리를 하며 가는 시늉을 한다. 여전히 쌀알이 가루 형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여러 번의 버벅거림 속에 뭔가 되려나 싶을 때 에잉, 하면서 빨간불이 들어온다. 겁이 나서 믹서기를 껐다. 믹서기 본체에서 연기가 나온다. 모터가 탔다. 그놈의 쑥떡 해 먹으려다가 믹서기를 태워먹었다. 역시 사 먹는 게 싸게 먹힌다는 교훈을 얻는다. 찹쌀과 쑥이 곱게 갈리지는 않았어도 버릴 수는 없으니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반죽을 밥솥에 넣어서 취사를 누른다.
과연 떡이 될까?
예상보다 밥솥이 일찍 취사를 종료한다. 떡이 이렇게 쉽게 될 것 같지는 않은데, 이러다 밥솥도 해 먹는 거 아닌가 걱정이다. 밥솥을 열어보니 이런, 겉에만 살짝 익고 여전히 날 거다. 가전제품들이 나를 도울 생각이 없다. 다시 한번 취사를 누른다. 역시 취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밥이 다 됐다고 한다. 조금 떼서 먹어보니 생쌀이 씹히고 떡이 될 것 같지 않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아주 떡이 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 같다.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다시 한번 취사를 누른다. 총 세 번의 취사 끝에 떡의 느낌이 나는 덩어리가 완성되었다. 집에 남아있던 볶은 콩가루를 쟁반에 깔고 덩어리를 올려서 넓게 펼치고 주걱으로 대충 자른다. 우중충한 떡을 콩가루로 덮어놓으니 꽤 그럴듯하다. 하나 먹어본다. 오, 생각보다 맛있다. 설탕이 안 들어가도 이렇게 맛있구나. 유튜브에서 본 것처럼 깔끔하게 되지는 않았어도 하다 보니 재미가 있고, 떡집이나 할까, 허무맹랑한 상상도 해본다.
엄마 쑥떡 먹을래? 설탕 하나도 안 들어간 거야. 내가 만들었어.
물론 대답 없음이다. 떡 하나를 입에 넣어준다. 오물오물 잘도 씹는다. 입만 살았다. 입이 살아있으니 병들고 아프고 나서야 딸내미한테 떡을 얻어먹는다. 옆에서 아빠도 얻어먹는다. 많이 드셔.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떡.
떡 더 먹을 거야?
응, 떡 하나 더 줘.
와 배신감.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 하다가 떡 달라는 소리는 하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던 옛날이야기가 생각나서 웃음이 난다. 하루종일 웃을 일 없다가 떡 때문에 처음으로 웃는다. 떡을 엄마 입에 넣어준다. 오물오물. 엄마도, 아빠도 맛있다는 소리가 없다. 하지만 안다. 저렇게 말없이 계속 먹는 건 맛있어서라는 걸. 아빠도 속으로 제법이라는 생각을 할 거다.
엄마가 떡맛을 아는 걸까? 산속에서 뜯어온 쑥으로 만든, 설탕이 안 들어간 떡이라는 걸 아는 걸까? 엄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엄마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엄마가 아픈 와중에 떡을 해 먹고, 간병생활의 재미라면 재미다. 그래도 슬프다. 엄마에게 쑥 뜯어서 직접 내가 만든 거라고 생색내지 못해서 슬프다. 다시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슬프다. 내가 이런저런 감상에 빠져 있는 사이 엄마와 아빠가 떡을 다 먹어버렸다. 대략 밥 대여섯 공기의 쌀이었는데. 아파도 맛있는 건 알아가지고. 오늘 밥은 다 먹었다. 이걸로 오늘 점심은 퉁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