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시산책가 Oct 17. 2023

때론 잠시 멈추고, 마음을 열어라.

치열한 입시전선에서 힘겨워하는 아이와 엄마의 공간산책

"아이야. 

네가 원하는 것에만 너무 몰입하지 마라. 

그러면 하늘이 너를 위해 준비해 둔 것들을 놓칠 수 있단다.

하늘은 너의 내면 깊은 곳에서 새 일을 행함으로 너를 새롭게 하고, 너를 변화시키고 있단다.

네가 기대하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다 내려놓을 수 있을 만큼 하늘이 주신 것을 신뢰해 보렴.

잠시 멈춰 서서 마음을 열고, 너를 비추는 하늘을 바라보렴."


고등학생인 제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저희 딸은 한평생 예체능만 하다 예고입시를 준비하였으나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일반고를 전향했습니다.)

한 곳만 보고 달려오다 교통사고 나듯 모든 것이 멈추어져 버린 날, 

단 하루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인생방향을 바꾸어 다시 정진하기 시작했습니다. 

힘들어할 시간도 없이, 고민할 시간도 없이 말입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둠의 감정에 휩싸여 괴로워할 것이 너무나 두려워서였을지도 모릅니다.

멈추는 일은 정진하는 것보다 어려웠습니다. 


멈추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은 나의 생각을 더 좁게 만듭니다. 

멈춤이 필요한 순간임을 깨닫습니다. 



뮤지엄 산을 걷습니다.

지평의 공간이 나를 인도하고, 비워진 공간 속에서 단단한 힘을 느낍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이렇게 위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힘을 주지 않아도 힘이 느껴지는 이곳에 점점 빠져듭니다.

걸으며 기도할 수 있는 거룩의 공간입니다.


스스로 많은 것으로 채우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생각했는데, 

어느새 욕심과 복잡한 생각들로 꽉 찬 시간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숨 가쁘게 움직이는 것이 남는 장사라도 되듯, 부지런하게 움직였습니다. 

앞만 보는 성실함은 언젠가 우리에게 배신감을 줄 수 있습니다.


안도다다오는 비워낸 공간에서 거룩함을 느끼게 하는 공간의 마법사 같습니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꽉 채워진 무언가를 원하는 것은 하수입니다.

허전함과 텅 빈 공간에서 여유를 가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유 속에서 강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모든 공간적 사유를 딸아이와 함께 함고 나눕니다. 

멈춤이 필요할 때, 뮤지엄 산을 걷습니다.


주름지고 옹졸해진 마음까지 다림질하여 다시금 여유 있게 시작할 수 있게 말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