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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중 Jul 18. 2024

여행회상



여행은 여행이라는 말만으로 묘한 설렘이 있다.

예약하고 일정 짜고 짐 싸고 이것저것 챙기고 공항 수속 마치고 라운지에서 커피 한잔 마시노라면 잔잔하게 설레는 느낌이 특별하다.

비행 중 기내식 나올 때도 뭔가 색다른 기대감이 좋고 도착한 도시의 냄새와 낯섦 그리고 호기심에 들뜬 마음과 조심스러운 생각들도 설렘이 들어있다.


관광지의 이국적 풍경과 역사를 배우고 거기에 더해 중요한 것은 음식이 입맛에 맞으면 오길 잘했어 정말 잘했지 하며 만족해한다.

특히 풍경과 사람은 여행의 백미 일뿐더러 인상적인 장면은 세월 지나도 시간을 넘는 시간 여행으로 회상된다.

사실 여행은 다시 그리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25년 전쯤 어떤 계기로 러시아 과학대학 총장 특별 초청을 받아 노보시리 비스크라는 도시에 세계과학 학술대회손님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다.

과학은 알지 못해도 그냥 재미있었다.

몇 번 세미나에 참석해서 특별 감사패도 받고 파티에 초대 받아 춤도 추고...

우리 일행이 묵은 호텔 라운지에서 내가 호스트가 되어 답례 파티 개최한 날은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로 초대하신 분 모두 참석해 주셨고 연주하시는 분들도 아리랑과 한국 가요로 분위기를 도와주셨다.


일정을 마치고 관광을 한 곳이 우랄알타이 산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과학자들이 군용 헬기를 타고 우랄알타이 산 정상 부근 삼만오천 년 전 우리 조상이 살았다는 동굴 견학을 하는 여행이었다

그때까지 인간은 동굴에 사는 동물 중 아래 계급에 속했으나 돌도끼 돌칼 등을 이용하게 되면서 신분상승이 되었고 불을 발견해 지배자가 되었다는 설명을 듣고 인간의 위대한 진화 과정을 감명 깊게 들었다


휴식시간에 근처 산책 중 분지 옆 숲길에서 여학생 몇 명이 피크닉 중이고 그중 한 명이 이젤 앞에서 수채화로 푸른 나무를 그리고 있었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서 가만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불청객을 보며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순간 움찔하며 당황했다

난생처음 보는 회색 눈이었는데

무언가 아주 깊었고 고요했었다

마치 심연에 빠질 것 같은 짙은 회색 눈빛에 조금은 당황해서 머뭇 거리다가 따뜻한 미소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망설이다 겨우 한다는 말이 당신의 멋진 그림 속에 나를 넣어주면 어떻겠냐고 농담 겸 말을 걸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하얀 이 보일만큼 큰 웃음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내 얼굴을 잠시 보다 그리려 하는데 하필 그때 일행들이 들이닥쳐 분위기가 떠들썩 해졌다.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데 괜히 미안해졌다. 수선스럽고 어색한 분위기가 부담을 주는 것 같아 그냥 발길을 돌리는데

나를 보는 그녀의 눈이 그려요 말아요?

표정으로 묻길래 일행을 가리키며 애매하게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 학생들은 러시아 과학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로 우리 일행을 안내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3일 전에 걸어서 출발해 그날 도착해 휴식 중이었다고 나중에 알게 됐다


여행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나라 관광지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과 음식 등인데  내 경우에는 사람이 있는 풍경이었다.

사실 내가 제일 못하는 게 춤인데 파티에서 어울려 춤추던 기억과 그림 그리던 학생의 생소하지만 깊었던 회색눈 미소였다

마치 꽃잎 진 후에도 향기 맴돌듯...

퇴색한 시간이 액자에 담긴 그림처럼 회상된다

그 회색 눈 속 깊은 심연에 빠져들 것 같은 느낌과 미소 그리고 그림 속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쉬운 상상을 해본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추억되는 우랄산맥이 그림 속 풍경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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