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맥모닝

by eee

(앞머리 자른 거 후회돼서 쓴 거 아님. 아무튼 아님.)

오늘은 진짜로 일찍 일어나서 맥모닝을 먹으려 했다. 아이폰은 몇 번이고 울렸고 나는 몇 번이고 다시 눕고 싶었다. 오늘도 선데이 맥모닝 실패.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 아니 맥모닝을 먹는다.


느지막이 일어났다.

발레공연을 예매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지만 포스터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다

전혀 필요 없지만 묘하게 끌리는 오브제.

결제 완료되었습니다.

근데 내가 이걸 왜 샀더라.

이게 내 취향이었나.

어차피 그런 질문은 오래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질문은 결제 완료와 함께 사라지니까.


염색하러 미용실에 갔다.

“앞머리도 잘라볼까요?”

나는 내 생각보다 빨리 대답했다.

좋아요.


앞머리라니. 열네 살 이후 처음이다. 내게 앞머리는 맥모닝 같은 것이었다. 해볼까 싶다가도 끝내 지나쳐버리는 것. 대개 그런 것들은 타이밍을 놓치거나 혹은 타이밍에 밀려서 결정된다.

가위가 슥삭 눈앞을 지나갔다. 머리카락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 시야는 조금 짧아졌고 내 생각은 조금 길어졌다.

아.. 내가 무슨 짓을


후회는 늘 예상보다 빠르다.

동시에 찾아온 건,

단정해진 머리칼,

어쩐지 낯설어진 거울 속 얼굴,

낯설음 속에 희미하게 섞인 기대.


그런데 이 모든 충동들이 정말 내 자유로운 선택이었을까?

벤자민 리벳의 실험을 보면 피험자가 손을 움직이기로 결정하기 전에 뇌의 준비 신호가 먼저 발생한다는 결과가 있다.

우리가 ‘이제 해야지’라고 느끼는 그 순간, 뇌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 우리는 그 결정을 마치 우리가 내린 것처럼 느낄 뿐이라는 것이다.


리벳은 말한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의 주체라고 느끼지만, 정작 우리의 행동을 주도하는 것은 뇌의 무의식적인 과정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매일같이 자유롭게 골랐다고 믿었던 수많은 순간들이 뇌의 반응에 뒤늦게 줄 서는 행동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대니얼 웨그너는 이렇게 말했다.

‘의지의 착각(illusion of conscious will)’

우리가 "해야겠다"라고 느낀 그 순간조차 무의식은 이미 결론을 내린 후이고, 의식적 의지란 사후적으로 정당화하는 느낌에 더 가깝다.

내가 이걸 하고 싶다고 느낀 건, 사실 뇌가 먼저 해놓고 뒤늦게 "네가 한 거야”라고 써준 각본일 뿐이라는 것이다.


혼자 집에서 대충 때우려다가 결국 친구를 만나, 파스타에 이어, 한 잔만 하자는 말에 술자리로 넘어간 어제 저녁도 마찬가지다.

이건 너무 뻔한데. 안 봐도 비디오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 생각까지 포함해 나는 뻔한 패턴이 된다.

한 잔은 절대 한 잔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원해서 마셨으니 숙취는 내 몫이다.

이상하게도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이 나를 편하게 만든다.

벌이 아니고, ‘내가 했다’는 말이 남긴 결과.

결과는 원인보다 덜 흔들린다.


하지만 정말 이게 ‘내가 원한 선택’일까?

그저 작고도 강력한 조건들의, 예견된 합은 아니었을까?

배고픔.

따뜻한 오뎅탕 냄새.

친구의 웃음소리.

오늘 춥다는 생각과,

따뜻한 국물이 좋겠다는 기분.

그런 것들이 내 무의식의 무대 뒤에서 천천히, 느리지만 분명하게, 나를 밀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해서 왔다는 말은 어쩌면 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일지도.

내가 선택했다고 믿는 바로 그 순간이 어쩌면 내 삶을 통제한다는 환상을 지탱해 주는 장치일지도 모른다.


여러 실험과 문헌들을 보면 자유의지는 ‘착각‘에 가깝다는 증거가 적지 않다. 벤자민 리벳의 실험, 대니얼 웨그너의 주장. 나는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서 내가 가진 선택이라는 것이 결국은 이미 짜인 각본의 한 장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 삶을 내가 끌어가는 게 아니라, 뇌와 환경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누군지조차 흔들리는 기분.

이런 주장들을 곱씹다 보면,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선택하고 있는 걸까?’

‘그럼 나는 대체 누구일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닌다.


자유의지는 착각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도 생각한다. 착각이라 해도 그건 내 것이니까, 선택했다고 믿었던 순간이 나를 조금 더 앞으로 밀어주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착각을 기꺼이 내 것으로 삼기로 한다.

착각이라도 좋다.

그 착각 덕분에 나는 내가 되고, 어딘가에 닿는다.


모든 걸 뇌 신호나 환경 탓으로 치부해버린다면 — 선택에서 오는 작은 기쁨도, 때론 어이없는 후회도, 모두 덧없고 허무해질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실제보다 더 소중한, 어쩌면 필수 불가결한 환상이 아닐까.

잠들기 전 ‘완전히 자유롭지 않아도 자유롭다고 믿는 그 순간에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역설을 떠올려본다.

책임감이든 선택의 즐거움이든, 인간이라면 놓치고 싶지 않은 어떤 가치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은 없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마저도 내 자유의지였다고 믿고 싶다. 설령 환상일지라도 그 믿음이 오늘의 나를 움직였으니까 말이다.

아마 다음주도 선데이 맥모닝은 실패하겠지.

그래도 괜찮다.

어쩌면 실패한 선택들이 내 삶을 만들어가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또 선택할 거다. 그 선택들이 나를 어딘가로 데려갈 테니까.

(2025.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