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반, 다시 또 뭉치자.
달그락달그락. 지글지글.
눈이 껌뻑껌뻑. 핸드폰을 보니 아침 7시. 기름냄새가 내가 자는 방에 스르륵 코끝을 스친다.
"엄마 벌써? 오후 5시에 전 굽는다더니 언제 일어났어? 대. 박."
새벽부터 일어나 먼저 튀김거리를 준비하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시작하는 우리 엄마 뒷모습. 시집가기 전 매번 보던 모습인데 오늘따라 더 정겹다.
"생각해 보니 두부 만들러 가려면 해놓고 가야 마음이 안 급해지지. 안 해놓고 가면 안돼."
"아 알겠어. 세수하고 올게."
엄마는 큰집 맏며느리. 어릴 적 보고 온 나는 엄마를 도와 거들기 시작했다. 뚝딱뚝딱. 동그랑땡, 배추 전, 꼬치 전, 배추 전, 무전, 오징어튀김, 동태 전.
매번 음식이 남아 예전만큼 양과 종류가 반으로 줄었다. 아침 일찍 서두른 만큼 완성. 이제 설거지 뚝딱뚝딱. 엄마는 아침준비하며 촌두부 만들 채비를 하였다.
"얘들아, 엄마 할머니랑 두부 만들고 올게."
방앗간에 들려 콩을 갈기로 했다. 아침부터 손님맞이하기 위해 할아버지 할머니들 손에는 보따리 한가득. 우리 엄마도 콩자루 맡기며 대기했다.
"오늘처럼 바쁜 날, 어제 오시지 그러셨어요. 많이 기다리셔야 해요."
"어제 전화드렸는데 이 시간에 오라고 해서 왔어요. 기다릴 테니 해주세요."
후다다닥. 후다다닥. 떡에서 나오는 모락모락 김. 손으로 뚝딱뚝딱 포장대에 올려 바쁜 손들이 여럿이 떡을 포장한다. 명절에 빠질 수 없는 방앗간모습. 드디어 콩을 갈고 다시 출발하였다.
4호를 데리고 와서 혹여나 배고플까 엄마는 신경이 쓰이나 보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짐을 풀며 배고프냐고 물어본다. 라면을 먹고 싶다는 4호 말에 후다다닥.
"아이고. 내 새끼 잘 먹네. 맛있는 두부 해서 줄게."
아궁이에 불을 짚이려고 내가 나섰다.
"아빠, 토치 어떻게 키지?"
"여기를 돌려서 누르고 짚히면 되는데... 아빠가 해줄게."
"아니야, 내가 연습을 해야 우리 집도 불짚히지."
옆에서 듣던 우리 엄마가 농담을 던졌다.
"그래 지펴봐. 집 다 태워먹지 말고 연습해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콧구멍을 자극하는 매운 냄새. 우리 신랑은 얼굴을 대고 어떻게 피웠지? 우리 엄마아빠는 아궁이에 음식을 어째 이렇게 잘하지? 켁켁켁.
능숙한 손놀림으로 쓱 쓱 저어가며 우리 엄마손은 다시 바빠졌다.
드디어 완성.
"오~되네. 실패한 이유를 알았어. 간수를 물에 희석해야 됐는데, 그냥 가루를 넣으니 안 됐었구나."
"우와. 신기하다. 엄마 이제 두부 질리도록 하겠네."
옆에서 듣던 우리 아빠는 웃음반, 걱정반.
비지를 띄우겠다며 또 마음이 급해졌다. 후다닥.
뜨끈뜨끈 방바닥에 양동이에 넣어 천으로 감싼 후 이불을 덮고 덮었다. 그리고 이제 남은 순. 두. 부
"빨리 이제 놔두고 들어가서 한 그릇 하자. 얼른 와."
"아 순두부. 옛날에 엄마가 한번 해준 거 맛있었는데, 오늘 좋은 거 다 먹네."
국자로 한 컵 두 컵 세 컵 떠서 버너에 올려 보글보글. 지글지글. 김이 모락모락. 완성되어 아빠 한 그릇, 엄마 한 그릇, 딸 한 그릇, 손녀? 고개를 절레절레.
"진짜 옛날 생각나네. 맛있네 우리 엄마 손맛."
배가 채워지자, 다시 밖으로 나가 우리 엄마손은 벌써 두부판으로 갔다.
"이야. 근데 아직 단단해지진 않았네."
"엄마 맛있는데? 실패는 아닌 것 같은데.."
"조금 더 나 두고 봐야지. 애들 기다리는데 빨리 가자. 두부판 그대로 들고 가자."
이것저것 챙기고 설거지 대충 해두고 식혜 아궁이에 다시 끓여두고 시간이 30분 흘러버렸다.
결과는 실패가 아닌 성공.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간이 벌써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낙동강 저 멀리 날아가는 철새들. 어릴 적 우리 아빠는 좋지 않은 길을 따라 우리 가족을 데리고 명절이면 왔다 갔다 하던 길. 세월이 흘러 새 단장을 해서 길도 좋아지고 낙동강주변이 공원으로 잘 가꾸어져 버렸다.
집도착 후,
현관문에서 보이는 할머니. 또 버스를 타고 오셔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튀김, 전, 손두부를 잘라 상한 차림 내왔다.
"아이고, 손두부를 어째 만들었니. 대단하다. 너희 엄마는 강정도 만들고 일하면서 어째 저걸 다할 생각을 하노. 맛있네 맛있어."
손녀들도 그 자리에서 두부와 음식을 뚝딱.
'역시 우리 엄마 음식은 최고네.'
딩동딩동.
내 여동생이 일을 마치고 손에 한가득 들고 집으로 왔다. 할머니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미소를 짓는다. 고기 구워서 한잔하자는 여동생. 아들 딸 손녀들이 모인 저녁. 모두들 얼굴에는 방긋방긋 웃음꽃이 피었다.
이불자리를 펴는데 오늘따라 아이들이 잠이 안 온다고 했다. 그 덕에 아빠, 나, 동생들은 술상을 다시 폈다.
"양주? 소주? 맥주? 막냇동생 머 먹을래?"
"소. 주."
"헐, 너 맥주 아니야?"
떠들썩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아빠, 나, 동생들. 셋이서 밤이 깊어지도록 마신 술.
웃음이 가득한 집안이 행복바이러스가 뿜어져 나왔다.
아침이 되자 새벽부터 엄마와 나는 차례 지낼 준비를 했다. 딩동딩동.
"어? 우리 서방이네?"
"어서 오게. 와줘서 고맙네. 안 피곤 한가?"
옆에서 우리 할머니가 슬그머니 마중을 나와 한참을 드려다 보았다.
"아이고 손녀사위. 누군가 했네. 오랜만이네. 잘 왔고 와줘서 고마워."
새벽부터 우리 집에 와준 신랑. 아이들과 내가 없어 잠이 오질 않아 뜬눈으로 밤새며 차가 막힐까 왔다.
한 명씩 한 명씩 차례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냈다. 세월이 흐른 만큼 모든 것이 변했다. 남동생과 우리 아빠의 뒷모습. 가슴이 오늘따라 뭉클해진다. 옆에 있던 우리 할머니가 흐느적흐느적. 슬쩍 곁눈질을 하며 모르는 척 서있는데 내 마음이 아프다. 80 중반을 넘은 할머니가 20살이 되어버린 손자를 보니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고, 우리 장손. 아버지랑 절하는 모습이 든든하네."
언젠간 우리의 차례 지내는 모습이 현실에서 아닌 조상이 되어 우리를 지켜본다는 생각에 더 뭉클하셨을까. 지금은 내 옆에 할머니가 계시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 곁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 마음도 짠해졌다.
차례를 지내고 막걸리잔을 아빠, 남동생, 할머니가 들었다. 나는 주전자를 들고 내잔에 따르며 우리 할머니와 처음으로 건배를 했다.
"하하하하. 그래 짠 하자 짠."
"할머니! 많이 드시고 오래 사셔야지! 짠짠짠!"
우리 할머니 눈에 또 눈시울이 붉어져버렸다. 이웃집 90대 할머니가 갑자기 밥맛이 좋고 잠도 잘 와서 웬일인가 싶었는데 며칠 후 배가 불러왔다고 했다. 이웃집 할머니는 병원진료 후 암진단을 받으며 3일 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식에 할머니는 더 걱정이 많아지는 듯하다.
아빠와 막내동생이 할머니를 모시다 드리기 위해 음식과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손녀사위, 오늘 만나서 고맙고 사랑해. 다음에 또 놀러 와. 재밌게 놀다가"
"네. 할머니."
"그래. 손녀도 사랑해. 다음에 또 봐."
"할머니, 사랑해. 놀러 갈게."
할머니를 데려다 드리고 우린 다시 촌으로 향했다.
같이 가시면 좋을 텐데 집으로 가신다는 할머니.
'오래오래 다음 명절도 즐겁게 보냅시다.'
도착 후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건 작은집 삼촌과 작은 할머니. 나를 보며 악수를 건네는 삼촌.
"아이고 이게 누구야. 명절 보내러 왔어?"
"응. 삼촌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하얗게 시어버린 머리카락. 세월이 흐르니 모든 게 달라졌다.
"몇 살이야 이제?"
"이제 40을 달려가고 있지. 삼촌도 할아버지 되어버렸네?"
10살 정도 차이가 나는 삼촌. 어릴 적부터 명절날 우리 집으로 올 때면 잠에 취해 잠보였던 삼촌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버렸다. 옆에 있던 작은할머니 역시 예전과 많이 달랐다.
"그래. 잘 놀다 가고, 일다니며 애들 키우느라 고생이 많네. 근데 쫌 꾸미고 다녀라 이제."
"삼촌, 엄마집에서 편히 있느라 꼬질하네.ㅎㅎㅎ"
아빠, 엄마, 나, 남동생, 그리고 우리 4호.
할아버지산소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할아버지와 증조부 산소를 들렸다. 한분씩 한분씩 성묘가 늘어나니 마음이 이상해진다. 술을 따르고 절을 하는데 4호의 모습에 빵 터졌다.
"4호 한번 더 해봐."
찰칵찰칵. 그러더니 막내동생이 자리를 옮기니 뒷따라 후다닥 갔다.
"왜? 뭐라고? 가자고?"
삼촌과 조카가 졸졸졸 오는 모습에 나는 찰칵찰칵.
'너희도 크면 어릴 적 기억이 남겠구나. 잘 지내렴.'
어느덧 시간이 헤어질 시간이 돼버렸다.
"장인어른, 장모님. 조만간 다시 봄나물 뜯으러 올게요. **아, 대학생활 잘하고 또 보자. 파이팅!"
한 보따리 가득 싣고 아이들과 웃으며 헤어지는 시간.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명절을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