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했다고 하여 너를 잃지 말기를

실패에 대하여

by 휴지기

잃을 실과 무너질(부서질) 패. 이 두 글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가 '실패'야. 잃고 무너지는 것. 잃고 부서지는 것. 실패.


엄마가 기억하는 엄마 최초의 실패는 초등학교 5학년때인가 6학년때인가에 일어났어. 생각해 보니 지금 너와 한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을 때였네. 엄마가 너 만할 때부터 엄마는 붓글씨를 썼었어. 쓰고 싶어 썼었던 아니고 어쩌다 보니, 붓글씨 몇백 장 쓰기 숙제를 해온 학생이 나밖에 없었어서, 그래서 그때부터 붓글씨 담당 선생님 눈에 들어 매일 하교 후에 붓글씨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지.


그때 엄마는 친구도 없었고,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들어야 하는 줄 알았던 때라 귀찮다 하기 싫다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어. 하라니까 했지. 그리고 하다 보니까 또 잘하게 됐어. 그래서 4학년때부터 다양한 붓글씨 대회에서 상을 받았고, 그때부터 나는 붓글씨를 잘쓰는 아이구나 생각하게 됐던 거 같아.


그런데 있잖아, 엄마가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엄마보다 한 살 어린 후배가 대회에 나가서 엄마보다 더 큰 상을 받게 된 거야. 그 아이가 우수상, 엄마가 장려상이었던 거 같아. 엄마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어. 내가 후배에게 지다니, 게다가 나는 한 번도 그 후배가 엄마보다 붓글씨를 잘 쓴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 그 후로 엄마는 다시는, 한 번도 붓글씨를 쓰지 않았어. 화가 났거든. 자존심도 너무 상하고 말이야.


아까 말한 것처럼 그때 엄마는 초등학생이었어. 초등학생이 자존심 상한다고 3년간 해오던 노력을 한 순간에 버리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없고 우스운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랬어. 그때는 속에서 열불이 나고 분노가 치솟고 정말 창피했어. 이상하지?


엄마는, 너무 어렸던 엄마는 그때 왜 그랬을까? 아마 실패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아. 나의 첫 실패여서, 그래서 엄마는 '실패'라는 단어의 뜻 그대로 잃고 무너져버렸어. 그때 실패를 순수하게 받아들였다면 지금쯤 멋진 서예가가 되어있거나 아니면 서예라는 고상하고 멋들어진 취미를 갖고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그 이후로도 엄마에게 실패의 역사는 꾸준히 이어져. 대학도 여러 번 떨어졌고 취업 시험에도 몇 번 떨어졌었어.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먼저 고백했다가 차인 적도 있었고 드라마 작가 공모전에도 응모했다가도 낙방했었어. 실패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지. 그 순간은 죽을 거 같아. 세상에서 딱 없어져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어.


그런데 이상하더라. 실패해도 또, 그냥저냥 시간이 가. 그러면 또 그냥저냥 살아지는 거야. 실패해서 죽을 것 같지만 실제로 죽지는 않더라구.



엄마가 일곱 살 때 혼자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적이 있어. 같은 동네에 사시는 큰 고모부가 비 오는 날 둔덕에서 주워온 노란 자전거를, 혼자서 연습해서 혼자서 탈 수 있게 됐었어. 물론 몇 번쯤 엄마의 엄마나 아빠가, 그러니까 너에게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뒤를 잡아주셨었겠지만 그건 잘 기억나지 않네.


그때 있잖아, 자전거를 배우는데 수도 없이 넘어졌어. 처음에는 무서워서 페달에 발을 올려놓지도 못하다가 조금조금씩 중심을 잡기 위해서, 땅에서 발을 떼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아주 많이 넘어지고 무릎이 깨지고 고추밭에 고꾸라지기도 했어.


근데 있잖아, 그때 일곱 살의 엄마는 넘어지는 게 마음 아프지 않았던 거 같아. 왜냐하면, 과정이니까, 어느 순간에는 엄마가 자전거를 탈 수 있으리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언젠가는,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히 믿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그때 엄마가 넘어진 건 실패가 아니라 시도였어.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한. 넘어지는 거, 그래서 손바닥이 까지고 무릎에서 피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이었어. 결국엔 자전거를 타기 위해서는 말이야.


실패는 힘들어. 어른이 되어서도 생각지도 못한 실패를 겪기도 해. 삶은 마음대로 의도대로 되지 않더라. 어쩔 수 없이 그런 일들은 일어나더라구.


나의 사랑하는 아들,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너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수많은 실패들을 경험할 거야. 그리고 아플 거야. 그 아픔이, 어쩌면 살고 싶지 않을 만큼, 연기가 되어 날아가고 싶을 만큼, 너를 집어 삼길만큼 그렇게 클 수도 있어. 그런 너를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인 나도 물론 아프겠지. 어쩌면 너보다 더.


그럴 어떤 마음으로 버틸 있을까? 실패를 실패로 담백하고 쿨하게 받아들이면 좋은데, 그게 쉽지 않을 거야.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으음... 실제로는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실패를 시도로 생각해 보는 것. 그것도 도움이 될지도 몰라.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꼭 겪어야 하는 일, 가끔은 네가 원하지 않았던 결과가 오히려 너에게 생각지도 못한 기쁨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거구.


실패는, 더구나 온몸을 다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일의 실패는 너의 세상을 무너트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고 하여 너를 잃지 말기를. 무너지고 부서진 상태로 스스로를 너무 오래 방치하지 않기를.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또 한 번 해보기를. 이게 내가 나의 귀한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알량하고 조악한 조언이야.


하지만 어쩌면 이건 엄마가 아들인 너에게가 아니고 엄마가 엄마에게 하는 응원, 아니면 주문일지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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