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에 대하여
너는 지금 초등학교 4학년, 본격적으로 비교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시기이지. 비교와 경쟁, 성공과 좌절, 합격과 불합격의 세계로 말이야.
의연하고 허용적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엄마지만, 엄마도 네가 수학 문제를 잘 풀어내지 못할 때, 엄마가 보기에는 너무 쉽고 단순하고 당연한 문제를 붙잡고 네가 끙끙대고 있을 때 약간 불안한 마음이 들어. 엄마는 그럴 때 너에게
"이런 기본적인 문제도 못 풀면 네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어."
라고 말하곤 하지. '네가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없어'가 아니라 '네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어'라고. 대학에 입학하는 건 아주 치열한 비교와 경쟁의 결과이니까. 그 대학에서 원하는 학생이 되려면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네가 어떤 면에서는 아주 훌륭해야 하니까. 그 훌륭함의 기준은 대부분 성적, 특히 이과 계열 학과에서는 수학 성적이니까 말이야.
엄마가 처음으로 비교와 경쟁의 의식하기 시작한 건 전에 말한 대로 초등학교 때 나갔던 붓글씨 대회였었고, 그 이후 성적에 대한 비교, 성적에 대한 경쟁으로 힘들었던 건 중학교 때부터였던 거 같아.
시골에 살아 또래 아이들도 별로 없었고 '친구'라는 개념 자체도 가지고 있지 않던 엄마는 중학교 때 처음으로 친구를 갖게 되었어. 중학교 들어가 자연스럽게 친구가 생긴 건 아니고, 엄마 나름대로 노력했지.
그 친구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훌륭했어. 예쁘고 착하고 공부를 잘하고 심지어, 가난했어. 이상하게 그때는 그 친구의 가난도 그 친구를 빛나게 해주는 어떤 배경 같아서, 가난한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가난이 티 나지 않고 입성이 깔끔한 것도 부러웠어.
엄마에게 처음 생긴 친구가 누가 봐도 너무 완벽한 아이여서, 엄마는 그게 좀 힘들었어. 항상 옆에 있는 내가 비교당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당시 내가 좋아하고 있던 과학 선생님도 그 아이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고 우리 반에 있는 다른 아이들도 항상 내 옆에 있는 그 친구에게 더 친절한 것 같았어. 성적도 그 아이가 나보다 조금씩 잘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그래서 엄마는 어떻게 했냐구? 뭐 어쩔 수 없었지. 그냥 있었지. 그냥 견뎠지. 대부분의 시간들은 말이야. 근데 좀 못된 짓들도 했었어.
중학교 때 그 친구와 엄마를 포함한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방과 후에 남아 과학반 활동을 했었어. 과학실에서 선생님 수업을 듣거나 실험을 하거나 공부를 한두 시간쯤 더 하다가 집으로 돌아갔지.
그날은 엄마와 그 친구가 뒷정리를 하고 가기로 한 날이었어. 그날 엄마는 그 친구를 놀려주고 싶었던 거 같아. 그래서 과학실 열쇠를 가져와서 과학실 문을 밖에서 잠갔어. 물론 엄마는 그 앞에 있었고. 그 친구는 문이 잠긴 걸, 그러니까 자기가 과학실에 갇힌 걸 알고 갑자기 울기 시작했어. 무서웠나 봐. 하긴, 그 옆에 개구리나 잠자리 같은 것들을 알코올에 담아둔 유리병 같은 것들이 줄지어 있었으니까.
엄마는 문 앞에서 그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고 당황을 해 바로 문을 열었어. 당연히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그 아이가 괜찮다고 했는지 아니면 토라져서 갔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엄마는 그때는 장난이었다고 생각했고 그 아이가 그렇게 무서워할 줄은 몰랐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했지만, 어쨌든 나쁜 행동이었지.
엄마는 왜 그랬을까? 왜 그 아이에게 이런 장난을 했을까? 시샘과 질투, 얄미움 이런 감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를 언제나 조연으로 만들었던 친구에 대한, 의도하지 않았지만 항상 나보다 비교우위에 서 있던 친구에 대한 일종의 복수 말이야.
그 후로도 그 친구와는 친하게 지냈지만 엄마는 내면에서 그 친구와 비교하는 걸 멈출 수 없어 힘들었어. 만약 엄마가 어렸을 적부터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었더라면, 그래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고 각자가 가진 가치가 다르다는 걸 알았다면 그 친구와 비교하면서 엄마 내면의 황폐해지는 일 따위는 없었겠지.
근데 또 쉽지 않은 일이야. 누군가와 비교하는 걸 멈춘다는 게 말이야. 우리는 상대평가의 대상이고 상대평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한 '나'에 대한 평가이니까. 비교를 바탕으로 등수가 세워지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 등수를 가지고 등급을 매기고 등급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니까.
사실 우리는 대학 입학 말고도 온 평생 비교당하며 살게 되어 있어. 누가 어떤 성적을 받았는지 누가 어떤 고등학교, 대학교에 다니는지, 누가 연봉이 더 높은지 누가 더 빨리 집을 구매하는지, 누가 어떤 차를 타는지, 누가 자식의 성적이 더 높은지.... 끊임없는 비교에 노출되어 있어.
엄마가 대학교에 가보니까 그 친구보다 훨씬 더 훌륭한 아이들이 많이 있더라. 그 아이와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내 가치를 끊임없이 깎아내린 건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엄마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그 친구는 엄마가 예상했던 대로 살지 않더라구. 엄마는 그 친구가 세상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아주 안전하고 안온하게 일종의 기득권층이 되어 살 줄 알았는데, 그러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치열하게 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 그 친구는 안전보다는 자유를 즐기는 사람이었어.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걸 몰라서 그냥 주변에서, 그러니까 부모님이, 학교 선생님들이, 하라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산 거였고.
우리는 언제나 비교당하며 살게 되어있어. 우리나라같이 남들의 시선이 중요한 곳에서는 더더욱. 그러니 아들아, 너를 비교의 틀에 가두어 스스로 황폐해지지 말았으면 해. 너는 너고 남은 남이니까. 남들의 시선이 너를 잡아먹지 않으니까. 어떤 것의 비교우위에 서지 못한다고 하여 인생이 망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야.
너무 뻔한 말이지만 너는 너 자체로, 그냥 너로 이미 훌륭해. 그걸 잊지 말았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