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에 대하여
열심(熱心), '더울(태울) 열'과 '마음심'으로 이루어진 단어.
어떤 일에 마음을 덥게 할 만큼 힘쓰는 것. 또는 마음을 태우며 힘쓰는 것.
'열심'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씀. 또는 그런 마음'이라고 나와있어.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쓰다 보면 마음이 더워진다는 뜻일까? 마음을 태울만큼 골똘히 정성을 쏟는다는 뜻일까?
우리는 보통 '열심'이라는 명사보다 '열심히'라는 부사를 더 많이 쓰지. '열심히'라는 부사는 대부분 '공부'라는 명사와 함께 쓰이고. '공부를 열심히 해라,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다'처럼 말이야.
마흔 중반까지 살아보니 무언가에 '열심'이라는 건 참 중요한 일 같아. 마음이 더워질 만큼 정성을 쏟지 않고는 원하는 것을 얻기가 참 힘들다는 걸 깨달았어. 그리고 정성을 쏟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시간도 함께 쏟는다는 것을 의미할 테니 내가 무언가에 '열심'인 그 시간 동안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엄마가 아주 좋아하는 배우가 한 명 있어. 그 배우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것으로 유명해. 1950년대 소리 천재를 연기하기 위해 배역이 결정된 순간부터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해 내리 3년을 꾸준히 판소리 공부를 하고, 고등학교 펜싱선수 역할을 하기 위해 6개월간 매일 두어 시간씩 펜싱 훈련을 했다고 해.
배역 하나를 위해 3년 동안 판소리를 공부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3년이면 초등학교 4학년인 네가 중학교 1학년이 되는 건데, 그 오랜 시간을 판소리 공부를 놓지 않은다는 건 참 대단한 성실성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실력이 아주 늘어날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또한 그 드라마가 성공할 거라는 보장이 없는데, 아무런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런 '열심'을 쏟을 수 있는 건 일종의 뚝심이 아니었을까 싶어.
그 성실성 덕분인지 드라마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배우도 여러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받았어. 아무런 보장 없는 '열심'이 빛을 본 거지.
말하기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엄마는 최근까지도 '열심'의 가치를 조금 폄하했던 것 같아. 이유가 뭐냐고? 글쎄.... 음.... 솔직히 말하면 열심히 하지 않아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이고 싶었던 거 같아.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성실하게 열심히 하지는 못했어. 왜냐하면 엄마는 감정 기복이 아주 심했거든. 공부를 하고 싶은 순간과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너무 급격하게 엄마를 찾아왔어. 어떤 날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어서 막 하다가도 그다음 날은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고 모든 게 지겨운 거야. 그래서 또 아무것도 안 하고 시간을 흘려보내고. 이런 날들의 반복이었어. 그러니 진득하게 앉아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지.
그리고 시험 전날 공부를 나름 열심히 해놓고도 친구들에게는 티브이 보고 노느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엄살을 피웠던 적도 많았던 것 같아. 왜냐하면, 공부를 안 해서 시험을 잘 보지 못한 건 엄마의 능력이 아니라 노력의 부족에서 기인하는 결과니까.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보다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덜 부끄러우니까. 노력은 언제든 하면 되는 거니까, 못하는 아이보다 안 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야.
근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열심'도 능력이더라. 뭔가에 열심이지 못했던 사람은 다른 것들에도 열심이기 힘들더라구. 그리고 아무것에도 열심이지 못하면 원하는 것을 성취하가 힘들지.
아들아, 나는 네가 정말 사랑스럽고 자랑스러운데 딱 한 가지 불안한 게 있어. 그게 뭐냐면, 엄마 닮아서 뭐든 대충대충 하고 귀찮아하는 거야. 엄마는 네가 하는 '귀찮다'는 말을 듣고 엄마가 얼마나 그 단어를 많이 쓰는지 깨달았어.
그런데 '귀찮다'는 '귀하지 않다'가 줄어든 말이란다. 네가 많은 것을 귀찮아하는 것은 다시 말해, 네가 많은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야. 그런데 아들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정성을 쏟지 않으면 네가 얻을 수 없는 게 별로 없어.
뭐든 귀하게 여기고 골똘하고 정성스럽게 힘써야지 네 것이 될 수 있는 거야. 엄마가, 누구보다 감정기복이 심하고 귀찮아하고 대충대충인 엄마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조금 아이러니이기는 하지만, 엄마도 변하려고 노력할게.
많은 순간을 귀하게 여기고 정성을 쏟는 방향으로 말이야. 너도 그렇게 해줘.
그래서 엄마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러니까 40대 중반쯤, 어른의 한가운데 있을 때 너의 삶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