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ONO Jul 05. 2022

익선동은 더 이상 힙하지 않다

힙한 동네의 비밀

한때 서울에서 가장 힙한 곳 중 하나였던 익선동, 요즘에 익선동을 가시나요?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일부로 그 길을 통해 지나갈 정도로 좋아했지만 최근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구글 트렌드에서 확인해 봐도 19년 4월에 정점을 찍고 하락 중인 것을 보아 저만 익선동이 이제는 힙하지 않다고 느끼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익선동은 왜 힙했는가?

익선동이 왜 이제는 힙하지 않은가를 알기 위해서는 익선동이 힙했던 이유를 알아야 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2017년 방영된 알쓸신잡 2의 유현준 교수님의 설명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힙한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속도가 느린 공간이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조건이 중요합니다.


'차가 없거나 도로 폭이 좁은 곳'

이전에 힙했던 공간을 생각해 보시면 신사동 가로수길에는 차선이 적고, 삼청동 길 꼬불꼬불해 차가 속도를 내기에는 어려웠으며 경리단길은 계단으로 속도가 느렸습니다. 빠르게 달리는 차가 없기 때문에 길에서의 긴장감이 적어 공간을 경험하기에 좋은 환경이 됩니다.


'건물의 필지가 작은 곳'

건물의 필지가 작으면 자본이 작은 사업자가 들어올 수 있어 거리의 다양성이 증가합니다. 길의 다양성이 증가한다는 것은 길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증가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거리의 단위 길이 대비 들어가거나, 구매를 하거나, 구경을 하거나 보행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져 속도가 느린 공간을 만든다고 해요.


이전 종로의 피맛골을 생각해 보시면 간단합니다. 종로의 큰길에는 말이 다녀 속도가 빨랐고 그 말을 피해 종로의 뒷길에 작은 상인들이 모여 피맛골이라는 먹자골목이 만들어진 것과 같이 좁고 느린 공간으로 사람들은 모이게 됩니다. 익선동은 이 두 가지 조건을 극단적으로 충족된 공간이었어요. 우선 차가 진입할 수 없고 어깨가 부딪힐 정도 폭의 길과, 골목골목 길의 다양한 가짓수와 작은 규모의 사업장들이 익선동을 힙하게 만들었죠.




익선동은 왜 이제는 힙하지 않는가


자본의 유입, 큰 규모 매장의 증가

익선동의 작은 필지를 바탕으로 다양한 소규모 사업자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 생겨나는 점포를 보면 소규모의 사업자는 이제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마 더 이상 높아진 임대료로 인해 들어올 수 없겠죠. 또한 몇몇의 자본을 앞세운 사업자들이 공간을 통합해 큰 규모의 점포를 오픈했고 그만큼 공간의 내부는 좋더라도 거리에서는 단위 길이당 거리의 경험의 수는 줄었습니다. 사람들이 길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줄어든 것이죠. 콘텐츠가 줄어든 만큼 거리의 사람들의 속도는 이전보다 빨라지고 힙함과는 멀어졌습니다.


거리의 브랜딩

익선동에는 스토리텔링이나 거리의 콘텐츠가 없습니다. 익선동의 하드웨어는 큰 규모의 사업자들의 증가로 북촌보다는 전통적인 부분이 부족하고 강남보다는 현대적이지 못한 애매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소프트웨어, 스토리는 남았을까요?


여러분은 익선동이 종로 한가운데, 그것도 역에서 가깝고 평지에 있는 노른자 땅이 작은 필지의 소규모 사업자들이 모일 수 있을 만큼 낙후되었다는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으신가요? 익선동은 한 개인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자본을 가진 일본인들이 청계천 이남에서 종로로 올라오자 당시 '건축 왕'이라 불리던 도시개발업자 정세권이 이 근방의 토지를 사들여 대규모 한옥단지를 만들게 됩니다. '일본인들이 종로에 발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라고 생각한 정세권이 당시 생활에 맞는 도시한옥 단지를 건설하고,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해 익선동의 배경을 만들었으며, 해방과 전쟁 이후 서울이 한참 개발을 할 시기에는 한옥 보호와 관련된 법률로 인해 동네의 개발이 어려웠습니다. 이후 2014년 지역 주민들의 재개발마저 포기하며 지금의 익선동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스토리를 알고 계시는 분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서울의 노른자 땅이 개발이 안되고 남아있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기 전까지는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최근 언급되는 힙한 장소들은 각자의 콘셉트에 대한 이해도와 표현력이 강한 장소들이었습니다. 익선동도 반드시 역사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더라도 익선동스러움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획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였다면 좀 더 오해 힙한 공간으로 남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떡볶이의 CX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