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편지
_조금씩이라도 움직여보자_(1)

by 희나라


6번째 편지

_조금씩이라도 움직여보자

2020.2.4. 24:58




image03.png

(떨어질 랑 말 랑, 마지막 잎새가 나 같다고 생각했었어.)





스몰에스(s)에게



스몰에스, 요즘 어떻게 지내.

혹시 너는 우울증에 걸려 본 적이 있니.


옛날에 난 우울증을 꽤 심하게 앓았었어. 어떤 사건이 교통사고처럼 쿵, 영혼에 충격을 일으키고 지나갔었지. 그 자리에 쓰러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어. 심장엔 칼이 열 개나 꽂힌 양 가슴 아팠어. 그리고 이내 검은 세상이 바다처럼 덮쳐와 날 완전히 삼켜 먹었지.


슬픔이 크면 아무 감정도 느낄 수 없어. 웃음은 사라진 지 오래, 눈물조차 메말라. 종이 인형처럼 건조해지고 무감각해져. 밥은 먹히지 않고, 살은 빠지고, 잠만 끝없이 자고 또 자고…… 컴컴한 방 안이 무덤 같았어. 산 사람도 아니고 죽은 사람도 아니고, 살아있는 시체처럼 숨을 쉬었지.


눈을 떴을 때, 창문 너머 밝아오는 아침 햇빛이 미치도록 두려웠어. 또다시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어제처럼 엊그제처럼 기나긴 하루를 견디어야 한다는 막막함에 한숨이 나왔지.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도로 눈을 감았어. 아, 그만하고 싶다. 잠자듯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


창밖 너머 밝아오는 아침이 두려웠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야. 어느 날은 충동을 느꼈어. 에이포용지에 썼다 지웠다 남몰래 유언을 적고는, 베란다로 가 발아래 허공을 내려다보았지. 한 발짝만 내디디면 1초 만에 모든 게 끝나네…… 휴. 그러나 차마 그러지는 못했어. 그 정도의 용기는 없었으니까. 정말로 죽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진심은 누구보다도 살고 싶었으니까.


그럴 만한 용기는 없었어. 진심은 누구보다도 살고 싶었으니까.


그 시절 어둠의 굴레를 어떻게 벗어났을까. 어리고 무지했던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냥 무덤 속에 파묻혀 죽은 듯 살았어.


요즘에야 우울증이 현대인의 감기라 불릴 정도로 흔하지만, 몇십 년 전에는 그것이 흔치만은 않은 병이었어. 내가 우울증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했거든. 나약하고 무기력해서 그런가 보다. 앞날에 희망이 보이지 않네. 애쓴다 해서 되는 일도 없고, 뭐를 해야 할지도 알 수 없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고 싶고. 오랜 세월을 허공처럼 멍하니 흘려보냈지. 지우고 싶은 기억은 가슴 한곳에 묻어둔 채, 시간이라는 약을 하루하루 먹으면서 말이야.

감정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울 때는 어쩔 수가 없어. 사건이 터진 직후엔 원치 않는 외부 충격에 대해 반응할 시간은 필요해서, 내 안에서 무조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감정이 흙탕물처럼 떠돌아서는 밖으로 빠져나올 겨를은 허용해야 하니까.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한동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 수밖에. 그때는 방에만 갇혀있지 말고 바람이라도 쐬라,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옆에서 하는 조언이 들리지 않아.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 감정을 추스를 적엔 누구의 간섭도 싫으니까.

그런데 그 한동안이 한동안으로 끝나지 않고, 오래 길어지면 병이 된다. 뭘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어, 일상생활과 직장 활동을 할 수 없게 돼. 내 몸이 내 몸이 아니게 돼. 나중엔 마음의 병이 신체 병으로까지 번질 수 있으니, 이게 또 문제야.

사랑하는 스몰에스야, 언제까지 어두운 방구석에서 쓸쓸히 살 수는 없잖아.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산 사람이 시체처럼 살아야 하겠니.



s가 가볍게 우울하다거나 또는 장시간 무겁게 침울했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참고해, 필요한 내용을 너의 환경에 알맞게 활용해 보아.

각자마다 어려워진 원인과 버거운 상태가 다를 거야. 문제의 깊이가 얇다면 몇 가지 행동에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상황이 나아지겠지만, 그 심지가 뿌리 깊다면 또 다른 차원의 해결책이 필요해. 후자에 대한 언급은 차차 하고, 부담 없이 시도할 방법부터 시작해 보자꾸나.





1_조금씩이라도 움직이자


힘든 감정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 몸에 기력이 없어서 드러눕고만 싶어. 이불 밖으로 나오기도, 문을 열고 화장실에 가기도, 밥을 차려 먹기도 귀찮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 뜻대로 신체가 움직여지지 않아.

악몽 속에서 가위눌릴 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그런 불가항력적인 상황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내 기운을 뺏으며 꼼짝 못 하게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아. (또는 가슴에 블랙홀 하나가 뚫려서 그 구멍으로 에너지가 끊임없이 빨려가 없어지는 듯하기도 해.)

내가 중력을 못 이겨 종일 방바닥에 종잇장처럼 누워있는 거야. 인간의 육체가 동물인지라 어쩔 수 없이, 방광이 차서 화장실을 가고, 빈속이 쓰려서 밥을 먹는 거지. 청소고 빨래고 남들은 자연스럽게 하는 일상생활이 우울한 사람에게는 온 힘을 끌어모아 해야 하는 큰일이야.

그러나! 아무리 무기력하더라도, 몸을 일으켜 걸어 다닐 힘은 있잖니. 밥솥 뚜껑 열고 숟가락으로 밥 떠먹을 기운은 남았잖니. (그 정도도 없다면, 주위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가야 해.) 아무리 꿈속일지라도, 우리의 의식은 살아서 움직여보겠다고 꾹 힘줘 생각하면, 손가락 하나를 까딱거릴 수 있잖아. 곧 눈이 떠지잖아. 그러니 꾸욱 마음먹고 뭐든 시도하자고.


─────────



우선, 이불에서 나오자.

일어나, 창문부터 열자!

공기를 바꾸기만 해도, 주위 에너지 흐름이 미세하게나마 변할 테야. 바깥의 시원한 새 바람이 방 안에 정체된 오래된 공기를 밀어내버리면서, 네 기분까지 조금은 환기될 거야.


image05.png 창문을 열기만 해도, 주위 에너지 흐름이 바뀌어.


우리가 숨 한번 쉴 때마다 수백만 개 원자들이 몸속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고 해. 자연 공기 중에는 다양한 오행의 기운을 갖는 원자들이 포함됐는데, 이것들이 호흡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와, 모든 세포와 반응하면서 신진대사가 바뀐대. 우리가 갑갑하면 한숨을 쉬잖아, 답답한 환경 안에서라도 그 공기 안에 든 원자들을 흡수하면, 나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어서 그렇다네.


자, 창문을 열고 심호흡하자. 코로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흠음음, 입으로 숨을 서서히 내뱉고 휴우우우우우. 우리가 흥분하면 호흡이 빨라지듯 감정과 호흡은 긴밀하게 관계해서, 숨쉬기를 조절해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 코로 숨을 길게 배가 나오게 들이마시고, 입을 오므리고 숨을 서서히 배가 들어가게 내뱉는 복식호흡을 하면, 심장 박동이 진정되고 근육이 이완되면서,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까지 완화한다고 해.

처음엔 숨쉬기도 연습해야 하나 귀찮기도 하고, 평소 사용하지 않는 신체 부위를 움직여야 하니 낯설기도 한데, 의도적으로 그것을 반복하다 보면 나중엔 복식호흡이 자연스러워져.

코로 숨을 길게 배가 나오게 들이마시고 흠음음, 입을 오므리고 숨을 서서히 배가 들어가게 내뱉고 휴우우우우우. 이때 내 경우, 숨을 천천히 깊게 함에 우선 집중했어. 배가 나오고 들어가게 함에 먼저 초점을 맞추면, 호흡을 느리게 하기도 전에 벌써 배에 힘이 콱 들어가서 숨쉬기가 더 불편해지더라고. 숨을 찬찬히 깊게 마시되, 그 들숨이 물 흐르듯 배까지 깊숙이 흘러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좋았어.


여기에, 내가 터득한 독특한 방법이 있긴 해. 가슴에 위치한 허파가 아랫배로 이동했다고 상상하니 편하더라고! 배꼽과 항문 중간쯤(의 뱃속 3차원 공간 어딘가쯤)에 허파가 있다. 이 허파가 숨을 흡입할 때는, 코와 항문으로 바깥공기를 서서히 들이마신다(그래서 배는 저절로 불룩 나오게 된다). 이제 들이마신 숨을 허파가 배출할 때는, 입과 항문으로 더디게 내뱉는다(배는 저절로 오목하게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배에 자리한 허파가 들숨으로 부풀어 오르고 날숨으로 쪼그라드는 형상을 이미지화하면서, 복식호흡을 하니 훨씬 수월해지더라고.

갑자기 스트레스를 확 받을 때, 심장이 빨리 뛰면서 숨이 가빠지고 눈앞이 어지러우며 손가락이 떨렸던 현상이, 가슴이 아닌 배에서 호흡을 관장한다고 의식하며 들숨과 날숨의 속도를 차분히 조절하니까, 불안정했던 몸과 마음이 긴장이 풀리면서 한결 편해짐을 체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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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해 볼까. c자 모양 애벌레처럼 쪼그렸던 전신을, X자 형태로 날개를 편 나비처럼 쫙쫙 펼치자. 기지개를 켜고, 팔도 크게 돌리고, 어깨도 으쓱으쓱, 다리도 쭉쭉 뻗자꾸나. 유튜브에서 체조 동영상을 클릭해 따라 하면 효과적인데, 너는 뭔가를 검색하기조차도 귀찮을 테니, 옛날에 학교에서 배웠던 국민체조라도 생각나는 대로 떠올려 움직거리자. 그것도 기억 안 나면, 온몸을 있는 대로 쭈욱 늘리고 돌리면서 스트레칭을 하는 거야.


우선, 요까지만 해도 성공이다! 짝짝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