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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May 18. 2024

바보야 문제는 햇빛이야!

작심을 하고서 사과대추나무를 식재한 지도 어느덧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겉으로만 봐서는 우람한 몸매를 자랑하는 근육질의 청년나무들이 틀림없지만 차마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허울만 우렁찰 뿐 어찌 된 영문인지 최근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수확을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명색이 과일나무일진대 불임이라니 땔감으로 사용할 요량이라면 몰라도 과일나무로써는 한마디로 꽝이라는 애기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무를 식재하고서 처음 몇 년 동안은 제법 풍성한 수확을 한 기억이 있다.

어린나무가 벌써부터 이 정도의 수확량이라면 앞으로 성목이 되었을 때의 수확량을 상상하면서 오히려 고단한 수확 과정과 판로를 걱정할 지경이었다.     

그랬는데 행복한 고민은 딱 거기까지였다.


웬걸 그다음 해부터는 한번 태풍이 지나갈 때마다 우수수 떨어지더니 수확철에 열매구경하기가 힘들어졌다.

게으른 겸업농부가 태풍 탓을 하는 동안에도 수확철이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과대추들이 마트로 인터넷주문배송으로 마구마구 쏟아져 나왔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대부분 잎채소 생산농가인 우리 지역의 특성상 큰 고민 없이 이구동성으로 지목된 원인이 있었다.

 '퇴비가 부족해서 그래, 퇴비를 많이 주라고!'

퇴비와 비료를 만병의 통치약쯤으로 생각하는 관행농법으로서는 자연스럽게 모든 원인을 퇴비의 부족문제로 몰아갔다.

기왕에 할 거면 똑바로 하자는 슬로건 하에 드디어 트랙터가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지자 수백 포의 퇴비를 축척하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유튜브에는 '사과대추 열매구경도 못했다'는 동영상들이 여러 편 올라와 있어 여러 전문가들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동영상시청에 몰입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불임의 원인과 처방전으로 한결같이 의외의 방안을 제시했다.

‘아하 퇴비문제가 아니었구나!’


충분히 수세가 안정되어 있다면 오히려 과시비가 독이 될 수 있다면서 공통적으로 제시한 불임의 처방전은 세 가지였다.

첫째, 겨울철의 강전지.

둘째, 5월 중순 이후 새순가지의 순치기.

셋째, 6월 중순경 새순가지의 순막기였다.     


'바보야 문제는 퇴비가 아니라 햇빛이야!'라는 전문가의 질책을 받고서야 말 못 하는 과일나무의 하소연을 이해하게 되었다.

만병통치약쯤으로 생각되던 퇴비는 기본적으로 나무의 수세를 유지하는 영양성장에는 필수적이지만 오히려 과하면 열매를 달게 하는 생식성장을 방해할 수 있어 차라리 걷어내야 한다는 처방전이었다.


생식성장을 위해서는 열매가 열리는 결과지마다 두루두루 햇빛과 통풍이 원활하게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중의 핵심이었다.

그 과정이 바로 겨울철의 강전지와 봄에 시행하는 새순가지의 정리와 끝순 따주기인 순막기였다.

모든 가지들이 충분한 정도의 햇빛을 공급받을 수 있어야만 결과지에서 꽃이 피고 열매들이 튼실하게 성장하여 태풍을 이겨낼 수 있는 힘도 생겨난다.


이 세 가지의 과정을 등한시한 채 열심히 퇴비만 챙겨주었다면 주렁주렁 열매를 다는 대신 양양성장을 촉진시켜서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땔감이 되기 십상이라는 진단이었다.     

특별히 관리되지 않는 가지들은 서로 경쟁적으로 하늘로 솟아오르려는 속성들이 있다.

전문용어로는 정부우세성의 원칙이라고 하는데 햇빛을 독점하려는 가지들은 자신도 열매를 달지 않으면서 다른 가지들의 햇빛투과까지도 방해하는 도둑놈 심보다.

일명 '도장지'

잔뜩 영양분을 축척한 굵은 도장지들이 넓은 그늘을 형성하고 있다면 필시 작은 바람에도 열매가 우수수 떨어지는 추풍낙엽의 현상들이 반복될 수밖에 없었다.


수세유지를 위한 나무의 영양성장에는 퇴비라는 밥이 필수적이지만 정작 꽃을 피우고 튼실한 열매를 맺으려면 햇빛과 통풍이라는 밥을 공급해주어야 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상적으로 먹어야 하는 밥을 주지 않았으니 열매가 달리더라도 부실하여 웬만한 바람에도 낙과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던 거다.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이제 불임의 원인도 알았고 그 해결책도 찾았다.

과일나무의 속성을 깨닫고 나니 잔뜩 쌓아둔 퇴비를 천편일률적으로 살포하기보다는 수세가 빈약한 나무를 대상으로 차등적으로 살포했다.

생각보다는 퇴비의 소모량이 많지 않았던 경제적인 반전이 일어나자 새삼 과학영농의 중요성을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겨울 나름 열심히 강전정을 하면서 도장지라는 얌체가지들은 인정사정없이 잘라낸 상태지만 곧 시작되는 새순가지 정리 때를 놓친다면 또다시 순식간에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 것이다.

하늘로 치솟을 새순가지들은 E클릭을 이용하여 모조리 수평으로 눕힐 예정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신기한 것은 이 놈들의 속성이다.

가지가 꼿꼿하게 수직으로 선 놈들은 자신의 몸집을 살찌우는 영양성장에만 치중하지만 수평으로 눕히게 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생식성장으로 생각을 바꾼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는 과일나무의 가지들은 온통 도장지 투성인데 간혹 열매를 달더라도 돌사과 돌배 돌복숭아라 하여 인간의 입맛에는 한마디로 꽝이.

그런 도장지라 할지도 강제로 수평을 유지하게끔 조절해 주면 주렁주렁 탐스런 열매가 달리게 되는 그 원인이 궁금해졌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태양을 향해서 수직으로 선 가지들이 저마다 햇빛경쟁을 할 때의 마음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저출생위기와도 본질에서는 같은 맥락이 아닌가 하는 찹찹한 생각이 몰려온다.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방안이 차라리 공평하게 눕혀서 치열한 햇빛경쟁에서 구제시켜 주는 방법이다.

그제야 가지는 한숨을 돌리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생식성장으로 생각을 바꾸게 되는데 우리 사회의 저출생해법으로 일억 원의 출생지원금이 관심을 받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영양성장에서 번식을 위한 생식성장으로 생각을 바꾸는 또 다른 이유로는 놀랍게도 위기의식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베이비 붐이 시작된 것도 전쟁직후인 것 같은데 생존에 위기의식이 찾아왔을 때 자손을 퍼트리려는 생명체의 본성이 발현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제아무리 동계전정을 열심히 했을지라도 이것을 놓친다면 만사 도루묵이 되어버린다던 순치기의 계절이 다가왔다.

지난 십 년의 세월 동안 순치기가 뭐 하는 물건인지도 몰랐다면 어김없이 7,8월이면 어마무시한 량의 새순가지들이 얽히고 설퀴는 현상이 반복되었을 테다.

영양분을 독차지한 도장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잎사귀들은 제대로 된 햇빛투과와 통풍이 불가능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어린 열매들이 작은 태풍에도 우수수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오히려 고단한 수확 과정과 판로를 걱정하던 우매한 겸업농부는 애꿎은 태풍 탓만 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햇빛투과량이 부족하다면 열매 구경은 NO! NO! NO!' 


이제 늘 써먹던 핑곗거리가 사라졌으니 기왕에 하는 거 똑바로 하는 수 밖에는 없다.

관리되는 과일나무와 방치된 과일나무의 차이점은 사람의 욕심이 개입하는가 여부가 될 것이다.

하늘로 치솟으려는 나무 본래의 본성을 제압하여 강제로 눕히는 스트레스를 가중하는 것은 주렁주렁 탐스런 열매를 얻으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다.

과수원의 과일나무는 순전히 사람의 탐욕을 위해서 강제로 관리되는 숙명을 타고났으니 모든 책임은 욕심을 채우려는 그 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유튜브에서 소개된 동영상을 집중적으로 반복 시청하면서 점차 순치기의 요령을 터득하고 있다.

그런데 한두 그루도 아니고 많은 나무들을 바라보하늘이 노랗게 보인다.

벌써부터 설렁설렁 땔감이나 키우던 야매농부시절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것은 겸업농부라는 태생적인 한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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