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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고려연방 (41)

북경선언 3

by 맥도강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띠던 시 주석이 불쑥 내뱉은 다음 한 마디가 그의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미국의 선제공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통일논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드디어 대통령이 기다리던 의제가 시 주석의 입으로 튀어나왔다.

대통령은 의도적으로 정색한 표정으로 돌변하면서 단호하게 말했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일본이든 미국이든 그 어떤 나라든 간에!

한반도의 그 어디라도 폭격하거나 단 한 발작이라도 우리의 영토에 진입하게 된다면 남북한이 똘똘 뭉쳐서 함께 대응하게 될 것입니다!

북한의 도움으로 우리 땅 독도를 지켜내었듯이 만약 평양이 공격받는 사태가 발생한다면 즉각적으로 우리 국군은 전쟁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우리의 국토를 사수할 것입니다!”


사실 대통령의 이 말은 섬뜩한 말이었다.

성탄절폭죽놀이를 빌미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비교적 솔직하게 표현한 말이었다.

아울러서 제2의 나당전쟁에 임하는 우리 민족의 의지가 천명되는 순간이었다.


애당초 한국대통령을 만만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까지 머리를 쳐들고 맞짱까지 뜨자는 식으로 나올지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시 주석도 정신이 번쩍 들었던지 바른 자세로 고쳐 앉으며 말했다.

“그 말씀은 한국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이라도 치를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대통령은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대응했다.


이때 대통령의 눈가에서 불쑥 핏대가 솟아올랐다.

“그렇습니다! 남과 북의 그 어디라도 공격하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미국이든 일본이든 그 어떤 나라든,

단 한 치의 좌고우민도 없이 단호하게 맞서 싸울 것입니다!”

지금 대통령이 말하고 있는 그 어떤 나라는 바보가 아닌 이상 단박에 알아먹을 수 있도록 비교적 직설적으로 표현되었다.


대통령의 선전포고에 가까운 작심 발언에 내심 당황했던지 시 주석의 동공은 점차로 커졌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그의 두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고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중화제국을 통일했던 수나라,

그 앞에서 머리빴빳이 쳐들고 대어 들던 고구려에 대하여 수양제가 느꼈을법한 모멸감이었다.


그렇다고 고구려가 어디 만만한 상대였던가,

거대한 수나라마저 무너뜨린 고구려의 용맹과 저력을 천사백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다시 한번 목격하고 있었다.

중국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를 통치하고 있던 시 주석 아니 시 황제의 입장에서는 탁자를 내리치면서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지금 호통을 치는 사람은 주변국의 일개 왕 격인 한국대통령이었다.


“주석님! 중국과 우리 한민족은 오천 년 이상을 가까운 이웃나라로 지내온 형제사이입니다,

때로는 싸우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선린우호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잘 지내왔습니다,

곧 우리 남북한은 통일이 되겠지만 가급적 중국의 지지 속에서 축복받는 통일을 이루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중국과는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로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 팔천만 우리 국민들의 마음입니다”


이건 뭐 거의 얼르고 달래기였다.

시 주석으로선 한국대통령이 오천 년 이상을 지켜온 자기네 영토를 보전하면서 중국과 잘 지내고 싶다는데 딱히 화를 낼 수도,

그렇다고 지지할 수도 없는 기묘한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이제 곧 동북공정의 최종 작업인 고구려의 구토를 회복할 날이 머지않았고 어쩌면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고구려를 정복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 그야말로 G2의 연합작전인데 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주저한단 말인가.


“한국대통령의 통일의지는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각 나라들마다 저간의 사정들이 있으니 이 자리에서 가타부타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따로 한번 고민해 보겠습니다,

통일한반도가 한미동맹을 파기하면서까지 중립외교를 천명하겠다는 것은 중국의 이익을 고려한 호의로 받아들이겠습니다만 글쎄요?

약소국이 G2를 상대로 중립외교노선을 견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시 주석은 역시 노련한 정치지도자였다.

먹잇감의 경계심을 풀게 할 심산으로 호랑이의 발톱을 숨기면서 최대한 온화한 표정과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중국몽’ 이것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제의 꿈이었다.

지금 시 주석은 ‘중국몽’을 부르짖으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꿈꾸고 있다.

헌법서문에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삽입되어 실질적인 중국의 황제로 등극한 지는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십 년으로 제한된 주석의 임기 규정도 진즉에 삭제되어 영구집권도 보장되었다.

지난해 3월부터는 제4연임이 시작되어 팔십 세가 되는 2033년 3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터라 무려 이십 년 동안 중국을 통치하게 된다.

경제와 군사 부분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초강대국 미국의 경쟁상대로 떠오른 중국이 아니던가,

그 중국의 실질적인 황제가 자그마한 한반도 그것도 그 절반의 한국대통령에게 수모에 가까운 능멸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북공정의 완성을 앞둔 특수한 시점이라 이를 악물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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