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새겨져 있다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중략) 어머니는 칼 하나를 이십오 년 넘게 써 왔다. 얼추 내 나이와 비슷한 세월이다.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 씹고, 삼키고, 우물거리는 동안 내 창자와 내 간, 심장과 콩팥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나는 어머니가 해 주는 음식과 함께 그 재료에 난 칼자국도 함께 삼켰다. 어두운 내 몸속에는 실로 무수한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해가 져서 놀러 온 아낙들도 다 떠나고 혼자 긴 잠에 빠져들어 있을 때면, 어디선가 어렴풋이 도마질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날 서울로 떠나는 나를 위해 어머니가 뭔가를 만들고 포장하는 소리였다. 잘 다듬은 갈치와 조기, 얼린 바지락, 어금니 동부, 강낭콩, 한 끼씩 데워 먹기 좋게 포장한 돼지갈비, 달래, 똥을 딴 멸치, 얼린 소족, 열무김치, 햇된장, 멸치볶음, 돌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