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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앤 Aug 30. 2022

소북소북의 발자국

책, 이야기가 소복이 쌓이다

독서 동아리 ‘소북소북’의 흔적이 담긴 서랍을 열고 칸칸이 들여다본다. 서랍 안에는 2019년 8월, 한여름의 무더위만큼이나 뜨거웠던 이야기들을 시작으로 사 년 여 간 함께 한 시간들이 뽀얀 먼지처럼 앉아 있다. 소북소북이 지나온 수많은 발자국 속에는 매 월 나누었던 책 이야기, 하루하루 지나온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우리가 지나온 발자국을 따라간다는 건 어릴 적 소풍날에 맛본 빛깔 고운 솜사탕만큼이나 달콤한 행복이자 즐거운 추억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내가 가보지 않은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이지만, 누군가와 책을 나눈다는 건 그보다 훨씬 더 큰 세계를 만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세상과 만나고 서로가 빛날 수 있도록 따뜻하게 안아준 고마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복이 쌓아온 우리의 빛나는 시간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2019, 소북소북 첫 발자국을 내딛다     


그림책을 나누고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어주는 봉사를 하며 그림책 세계에 푹 빠져있던 우리는 어른들이 읽는 책모임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게 되었다. 다양한 책 읽기와 나눔을 통해 너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독서 모임은 201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물건이 제법 높게 쌓여 있거나 담겨 있다'라는 뜻을 가진 소복하다와 북(book)을 합하여 책과 이야기가 가득 쌓여가는 책모임을 만들자는 의미를 담아 ‘소북소북’ 이라는 모임명을 지었다. 책모임이 주는 즐거움이 나날이 더해갈수록 모임 횟수도 월 1회에서 2회로 늘어났고, 지금은 11명의 회원이 매주 금요일마다 좋은 책으로 만나고 있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라고 말한 어린 왕자 속 여우처럼 우리에게는 소북소북을 만나는 금요일이 바로 행복한 기다림의 시간이다.      


골고루 맛있게 독서하는 법을 배우다     


책을 읽고 나누는 시간들이 매주, 매 월, 해마다 차곡차곡 쌓여갔다. 100여 권이 넘는 나눔 책이 쌓여간 시간만큼 저마다의 속도로 성장했고 우리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갔다. 좋아하는 한 장르의 책만 보며 편식해왔던 누군가는 서로가 추천해주는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며 골고루 맛있게 독서하는 법을 배웠다.


책모임을 하기 전까지 나는 공상과학소설 SF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 내가 김초엽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책을 나누게 되면서 국내 SF작가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요즘은 SF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책 한 권에서 뻗어나간 이야기는 영화, 미술, 정치와 경제, 역사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로 뻗어 나간다. 거기에 저마다 걸어온 삶의 경험치까지 더해져 뜻하지 않게 요즘 독서 트렌트가 되어가고 있는 융합 독서까지 하고 있다.


우리의 책 나눔은 저마다의 색깔과 맛을 가진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져 잘 섞이고 비벼지며 더욱 맛있어지는 비빔밥과도 같다. 개인의 독서 취향이 하나로 모여 서로 주고받는 과정에서 독서의 폭이 넓어지고 내가 가보지 않은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회원들이 쏟아내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한 상 가득 맛있게 먹고 나면 지적 포만감과 함께 한 뼘 더 성장한 나를 발견한다. 지치고 흔들리던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하게 여물기도 하고 때론 진심이 담긴 위로와 응원으로 흐려진 마음이 맑게 개이기도 한다. 회원들의 따뜻한 마음은 눈물을 닦고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된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으로 나아가다   

  

나는 생각의 폭이 좁고 고정관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 홀로 독서를 할 때는 사고의 틀에 갇혀 다양한 생각을 하는 것이 참 어려웠다. 하지만 독서 모임을 통해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책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같은 책 안에서도 서로 다르게 느끼는 이야기와 감정, 인물을 바라보는 저마다의 독특한 시선이 좋다. 책을 나누다 보면 종교와 정치적 성향, 살아온 환경의 다름으로 인해 의견 차이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종교와 정치는 예민해질 수 있는 부분이기에 자칫 감정이 상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속적인 대화와 상호교류를 통해 너와 나의 다름을, 서로의 차이를 조금씩 인정해가고 있다.


함께한 시간이 쌓여갈수록 책을 통해 나누는 이야기들은 더욱 풍성해지고 나를 드러냄으로써 서로를 더 알아가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소설이라는 장르는 나에게서 벗어나 타인의 정서에 다가가고 누군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이 세상 누구든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정서가 가득했던 나는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과 같은 다양한 퀴어 소설들을 함께 읽고 나누면서 그런 편견들을 많이 버릴 수 있었다. 지금은 동성애도 사랑의 한 종류이며 그들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독서 모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나와 다른 누군가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우리 사회가 다양성으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소북소북 아름다운 꽃들로 피어오르다     


나 하나 꽃 되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물들고 나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의 시 <나 하나 꽃 되어>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서로를 더욱 빛나게 하는 소북소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시작은 꽃잎 하나였을지 모르나 작은 꽃잎 하나하나가 모여 이제는 소북만의 어여쁜 꽃밭을 일구어 놓았다. 모두가 아리따운 꽃으로 피어오를 수 있도록 서로에게 햇빛이 되어주고, 양분이 되어주고, 바람이 되어 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앞으로도 더 좋은 책들과 세상의 온갖 이야기들로 소북만의 다채로운 꽃밭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어느 꽃밭에서 어떤 색깔과 어떤 향기를 머금은 꽃들과 노닐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한 계절 한 계절, 지나온 시간의 길이만큼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추억들이 켜켜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소북소북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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