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코덕, 코덕의 사전적 정의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화장품 분야에 관련된 것들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 화장품과 덕후의 합성어로 화장품과 화장법을 많이 알고 매우 좋아하는 사람을 말하는 신조어라고 한다. 내 어릴 적 취미는 아기였던 남동생을 화장시키는 일이었다. 일곱 살 터울의 동생은 하얗고 예뻐서 화장이 잘 어울렸다. 엄마는 메이크업 따위는 필요 없는 모태 미녀이긴 했지만 아마도 삶이 너무 고돼서 엄마의 화장대에는 스킨, 로션 한 병씩, 그리고 커다란 싸구려 영양크림통, 립스틱 하나가 다였다. 나는 립스틱 하나로 농도를 잘 조절해서 동생에게 연지도 찍어줘야 하고 입술도 그려줘야 하고 눈두덩이도 발라줘야 했기에 요즘 유행하는 립치크를 선도하는 셈이었다. 아가에게 립스틱 범벅을 해놓는 통에 엄마에게 등짝을 수십번 맞으면서도 동생을 곱게 단장해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그래서 남동생은 그루밍에 능한 멋진 남자로 성장했다). 쬐끔이라도 용돈을 받게 된 십 대 때는 화장품 가게를 서성이며 바깥 매대에 뽀얗게 먼지가 앉은 매니큐어 색깔을 들춰보는 게 하굣길의 낙이었다. 손가락으로 매니큐어병의 먼지를 살짝 털어내면 영롱하게 빛나는 각기 다른 펄 입자가 나를 매혹시켰다. 그 마이크로 한 빛들이 지루한 현실을 잊게 했다. 천 원짜리 한 병을 사 와서 수십 번을 손톱 언저리에 다 묻히며 발랐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면 아세톤 냄새가 집안에 진동해서 비위가 약한 모태 미녀 엄마에게 또 등짝을 맞았다. 중고등학교 때는 잡지 부록으로 끼워진 화장품을 갖고 싶어서 잡지가 나오는 날을 기다려 서점에 가서 한 달 용돈의 상당 부분을 털어 잡지를 사기도 했다. 사실 나는 학교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교복을 줄여 입거나 화장을 하고 학교에 가는 일은 없었다. 다만 그저 늘, 작은 거울 앞에 앉아서 내 얼굴에 그림을 그렸다가 조용히 지우고 잠이 들었다. 드디어 고등학교 졸업식날 나는 두꺼운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고 한껏 화장을 하고 학교에 갔다. 담임선생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여신강림급으로 변신한 건 아니었지만(만화는 만화고 현실은 또 현실이니까?) 그래도 너무 신나는 경험이었다. 교회 언니들은 미팅 소개팅 등 대소사가 있을 때 나에게 메이크업을 부탁했다. 지금 생각하면 비루하기 짝이 없는 실력이었지만 당시에 나는 거의 (내 느낌에) 우리 동네 이사배, 정샘물이였다. 파리에 런웨이 뒤에서 화려한 모델들과 함께 일하고 있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내 생각과 달리 세월이 흘러 흘러 지금의 나는 독일의 깡 시골에서 까까머리 아들, 전신에서 털을 뿜는 보더콜리 딸을 키우며 살고 있다. 화장은커녕 굳이 세수조차 안 해도 아무도 모르는, 슈퍼와 집만 오가는 파워 집순이의 삶을 산다. 집 근처엔 사방이 들판이기 때문에 말과 양이 내가 주로 만나는 친구들이다. 걔들은 샤넬 루쥬 코코플래시도, 랑콤 뗑이돌 파데도, 루나 팟 컨실러도, 키스미 아이라이너에도 관심이 없다.(우리 집에 사는 두 남자와 개 한 마리도 마찬가지다) 그것에 관심이 있는 것은 유일한 거울 속 나뿐임에도, 나는 12살 어느 날, 17살 어느 때처럼 그렇게 아직도 가끔씩 혼자 저녁 세안 전에 메이크업을 한다. (써놓고 나니 좀 미친 것 같기도) 하지만 화장할 이유가 없음에도 (심지어 화장하고 나가면 자꾸 쳐다봐서 화장하고 나가기 몹시 부끄런 시골 마을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화장품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못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내 얼굴에 자꾸만 뭔가를 찍어 바르는 나를 보며, 소진하지도 못한 화장품들을 자꾸만 사재끼는 나를 보며, 유툽이라도 찍어 올려야 이 죄책감과 자괴감을 좀 덜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성인 adhd환자인 나는 시작부터 거창하게 귀찮아져 버렸다. 카메라, 조명, 연출, 편집, 촬영장소. 그리고 이미 너무 현란한 기존의 뷰티 유투버들 사이에서 내가 먼지만 한 족적이나 남길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다가 3초 만에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리고 키보드만 가지고서 내 안에서 줄줄 흘러넘치는 이 화장품에 대한 사랑을 대충 써재끼기로 마음먹었다. 이건 영상 찍는 일보단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래 모두 화장품의 시각적인 측면을 보여줄 때 혼자 고독하게 나는 글 속에서 그것을 그려보리라 마음먹었다. 나는 김은숙 작가님을 좋아한다. 작가님의 “마음먹었어”라는 대사도 좋아한다. 줄곧 마음먹는 일이 없는 내가 마음을 먹어버렸다. (반쪽짜리)코덕의 세계를 보여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