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저는 인생을 적적히 걸어오면서 늘 무교로 살아왔고,
지독한 수학과 과학이라는 학문에 빠져 살아온 이공계 학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신이 제 옆에서,
또는 저희를 쳐다보면서,
저희와 함께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삶과 죽음..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망각하고 하루를 살아갑니다.
죽음이 늘 옆에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바빠서,
고단해서,
즐거워서,
다양한 이유 속에 저희는
죽음을 망각하거나,
외면하거나,
아직 찾아오지 않을 미래로 받아들이며
잊은 채로 살아갑니다.
오지 않을 듯한 미래를 생각하고, 걱정하기보단,
하루를 충실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게 저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저도 늘 죽음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 사실을 그렇게 깊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습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면,
언젠가 찾아올 죽음이라는 사실을 기억함에도 불구하고,
저와 당신은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답이 내려질 거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죽음을 망각한 채로 살아간다면,
언젠가 혹독한 후회와 씁쓸한 시름을 맛보며
이야기의 종지부를 지을지도 모릅니다.
천국과 지옥..
사실 천국과 지옥은 죽어서야만 알 수 있는지,
죽어서야만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저희는 살아가면서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사실 신은,
천국과 지옥을 사람이 죽어서가 아닌,
현실에서 느낄 수 있게 하고,
현실에서 지내게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또,
저희가 가진 보편적인 생각의 틀과는 다르게,
신께선 천국과 지옥은 현실에 있다는 역설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살아가는 게 불만이 가득하고,
얻지 못한 것에 괴롭고,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원망하고..
그 결과
저희는 증오와 분노를 마음속에 담아둡니다.
자신을 과신하고,
교만하고.
오만해질 때,
판단을 흐리게 되고..
그 결과
저희는 비통함과 절망을 마음속에 담아둡니다.
예전의 일을 자책하고,
괴로워하고,
곱씹을 때..
그 결과
저희는 우울함과 괴로움을 마음속에 담아둡니다.
신은
저희들에게 이럴 때 지옥을 살아가게 하는 것 아닐까요?
오늘 살아가는 하루를,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자신의 이웃과 동료에게 한 줌의 친절을 베풀고,
이웃과 동료의 억울함과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가슴 한편 따스한 봄이 피어오르고,
평온하고 천국 같은 삶을 보내게 되는 건 아닐까요?
저는,
천국과 지옥은 죽어서 없다고,
사실은 마음속에 늘 공존하고 있었다고,
신이 저희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욕망과 번뇌..
저희는,
우리 인간은,
더 가지려고 탐욕스러우며,
더 지배하려고 권력을 욕망하며..
그러한 비릿한 본능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흔히 의학계에선 이걸 행동-보상체계,
즉, 도파민적 사고-행동 체계이며,
어쩌면 당연한 본능적인 동물적 습성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지성을 가진 동물인 인간이,
동물과 인간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인 지성을 가지고도,
여전히 이러한 점에서
인간이 동물과는 무엇이 다른지 의문입니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며,
저 또한 본능에 이끌리며 살아갑니다.
당연히,
본능이 없다면 저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지상에 있는 생물이 진화와 적자생존을 위해
이러한 보상체계와 본능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러한 것들이,
동물의 왕의,
자연계의 피라미드 꼭대기의,
지성체라고 자칭하는 것들의,
궁극적인 삶의 행복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당신은,
짐승과 같은 삶을 산다면,
혹은 살고 있었다면,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하며,
삶이 풍요롭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본능만 좇는 짐승 같은 삶,
도덕성과 윤리성에 배반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부러트리는 삶,
권력과 욕망을 끊임없이 탐닉하며 늪에 빠져 사는 삶,
배신과 거짓말로 가면 속에 살아가는 삶,
생식과 번식만을 위해 바퀴벌레처섬 살아가는 삶..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더 가지려면 가질수록,
더 원하려면 원할수록,
그것이 지성체의 궁극적인 행복이자,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습니까?
그 삶에는 그러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이야기의 종지부를 지을 때,
당신은 만족스럽게 지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는 도대체,
짐승이란 말입니까?
아니면,
인간이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