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y'n magazine | 정읍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합니다
정읍의 북부에 위치한 신태인은 근대의 서글픈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벼가 호수에 이르다'라는 뜻의 화호리는 드넓은 곡창지대였습니다. 1912년 신태인역이 건설되면서 화호리에는 쌀을 욕심내는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철도는 김제, 부안, 정읍을 연결하여 점령과 수탈에 좋은 조건을 제공했기 때문이죠. 일본인은 화호리의 쌀을 기차에 실어 군산으로, 그리고 다시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화호리의 마을들은 오랫동안 ‘숙구지(宿拘地)’라 불렸습니다. 마치 개가 편안하게 잠을 자는 모양과 비슷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습니다. 그중에서 마을 명당은 개의 주둥이 부분이었는데요. 안타깝게도 명당의 주인은 일본인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구마모토 리헤이는 가장 악명 높은 지주였습니다. 궁핍한 조선의 소작농에게 고리로 돈을 빌려주고 갚지 못하면 토지를 빼앗아 자신의 부를 늘려갔습니다. 일본식으로 지어진 구마모토 가옥은 언덕을 깎아 높은 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저택 뒤로도 언덕이 상당히 높아 함부로 그의 집을 들여다보거나 감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제 화호리는 '정읍 근대 역사관'에서 시작됩니다. 지붕을 자세히 보니 기와의 색이 다릅니다. 보수 과정에서 철거한 기와의 수가 부족해 새 기와를 얹었기 때문이라는데요.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 766-2
구마모토는 화호리에 거둬들인 쌀을 저장하기 위해 다섯 동의 창고를 만들었습니다. 남은 한 동은 광복 이후 1947년 ‘화호 중앙병원’, 1961년에는 ‘화호여자중학교’로 사용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픔의 공간이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와 교육의 공간으로 활용된 것이죠. 이 공간은 이제 역사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화호리는 역사관에서부터 시작이라는 택시 기사님의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역사관에서 만난 사진 속의 장소들을 찾아볼까 합니다.
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 2길 16
당산나무가 있는 언덕이 어디지?
마을 입구에서 오르막을 조금 오르니 골목 사이로 일본식 건물이 보입니다. 악덕 지주 구마모토 리헤이의 집이었습니다. 이곳엔 엄청난 굵기의 나무가 있습니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입니다. 화호리 사람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찾았을 이곳은 구마모토 리헤이의 집 마당이 됩니다.
역사관에서 봤던 다른 장소들도 아직도 남아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습니다. 흔적이 세월에 씻긴 것일 겁니다. 하지만 화호리를 걸으며 1920년대 화호리를, 화호리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동안 몰랐던 정읍과 화호리의 이야기를 나누러 다시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
글 · 사진 | 올어바웃 @allabout
편집 | 언더독스 @underdogs